07. 참여를 통한 건축설계

07. 참여를 통한 건축설계 옛 말에 ‘자수성가(自手成家)’라는 말이 있듯이 집을 갖는다는 것이 꿈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여기에서의 가(家)라는 것은 주택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집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 자기 집을 가졌을 때의 그 느낌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감회가 분명히 있습니다. 이미 지어진 집을 매입할 때에도 그럴 진데 자신과 가족이 살 집을 직접 구상하고 짓는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설레어서 잠도 못 이룰 지경이 됩니다.
자신과 가족이 살 집을 마련해보자고 결심을 하고 자금계획을 세우고 나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이 어떤 집을 지을까하는 구상입니다. 바로 그 구상이라는 것이 건축설계라고 하는 것이지요. 이런 오랜 숙원이었던 집을 짓는데 건축사에게 알아서 설계해 달라고 아예 맡겨버리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제가 만난 대개의 의뢰인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이 생각했던 집에 대한 생각을 그려서 가지고 옵니다. 저는 아무리 서툰 그림이라고 하여도 그 그림 속에 반드시 건축사가 참고해야 할 중요한 정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집을 원하는지 잘 표현해서 건축사에게 알려주는 것은 의뢰인의 의무입니다. 그렇다고 평면을 그리고 입면을 그리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도면으로 그리는 테크니컬한 작업이야 당연히 건축사에게 맡겨야 하겠지요. 의뢰인은 건축사에게 설계를 의뢰하기 전에 자기가 원하는 집이 어떤 것인지를 스스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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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주택을 지르려는 건축주가 그린 구상안. 지금 가지고 있는 가구의 치수를 모두 메모해서 새로 지을 집에 들어갈 수 있도록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먼저 집에 대한 구상은 자기가 처한 입장과 상황을 먼저 정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서 나이든 노모를 모시고 살아야 하는데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걱정이 된다든가, 지금 땅의 위치가 차로와 가까워서 애들 안전이 걱정이 된다든가, 또는 우리 집 주방은 거실에서 잘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든가 하는 염려와 바램을 정리하는 것이지요. 건축사가 설계하려고 할 때 만약 이러한 내용을 알지 못한다면 점쟁이가 아닌 바에 의뢰인이 원하는 집을 설계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집을 최대한 정리해서 알려주는 것은 아무리 힘들고 피곤해도 의뢰인 스스로가 하지 않으면 건축사가 대신 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해 예쁜 집을 쉽게 검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종종 인터넷에서 맘에 드는 집의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설계를 그와 같이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개 집의 외관사진을 보여주면서 그와 같이 설계해 달라고 할 때는 매우 곤란한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외관이라는 것은 내부공간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주택을 설계 할 때에는 외형을 먼저 고민하기 보다는 평면구성을 먼저 고민해야 합니다. 평면을 고민한다는 것은 자신과 가족의 형편에 따라 필요한 공간이 달라지는데 그 형편에 맞는 공간구성을 인터넷으로 찾는 것은 어렵습니다. 집을 설계하는 것이 창의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제각기 삶의 패턴과 가족구성 그리고 취향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다 건축사의 취향도 다 다르다는 점도 한 몫을 더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스스로 자기 집을 그려보겠다고 마음을 먹을 때에는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집은 방과 거실 그리고 욕실과 같은 단위공간을 조합한 결합체입니다. 때문에 처음에는 자기에게 필요한 단위공간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가를 체크해야 합니다. 그것을 스페이스 프로그램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보기 좋은 공간이어도 필요이상 크게 만들어서 비용발생이 과다해진다면 안되겠지요. 때문에 처음에는 공간에 대한 어떤 환상을 고려하지 말고 필요한 단위 공간의 최소한의 크기를 체크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공간의 크기는 몇 평이면 좋겠다고 면적으로 고려하는 방식보다는 가로 몇 미터에 세로 몇 미터였으면 좋겠다는 식의 생각이 좋습니다. 면적이라는 것은 그 필요한 폭과 깊이에 의해서 결정이 되는 것이니까요.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을 체크하였다면, 이들을 조합하는 과정에서 복도나 계단과 같은 공간들이 덧붙으면서 실제의 공간은 더 커지게 됩니다. 공간을 세부적으로 디자인하다보면 초기의 스페이스프로그램보다 넓어지는 경우는 흔히 있습니다. 이러한 세부적인 계획은 건축사와 같이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건축사가 도면을 그리는 것은 생각을 수치화하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기호 중에서 숫자처럼 객관적인 약속은 없을 것입니다. 건축사는 건물의 모든 부분을 숫자로 표현하게 됩니다. 숫자로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자유곡선도 그것을 정확하게 의도된 대로 만들게 하려면 결국 수치화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아주 피곤한 일이지요. 그런 피곤한 일까지 의뢰인이 익혀나갈 필요는 없겠지요.

실명

면적(가로x세로)

용도

비고

현관

1.6*3.0

신발장. 깔끔한 이미지

거실

3.6*4.5

천정이 높았으면 좋겠다

주방

3.3*3

거실에서 보이지 않도록.

합계

스페이스 프로그램 작성의 예. 필요한 실의 면적을 가늠하기 위해서는 개별로 그려가면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 수치는 가능하면 중심선치수로 생각하되, 그러지 못할 때는 안목으로 생각했음을 건축사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종종 직접 도면을 그려서 건축사를 찾아오시는 분들도 있었고, 가끔은 드믈지만 모형까지 만들어 오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을 도면으로 그리거나 모형을 만들어보면 오히려 풍부하게 가지고 있던 공간에 대한 꿈들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생각을 구체화하는 과정은 좀 재미없을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이 과정에서는 건축사와 같이 고민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처음으로 건축에 대해 고민하는 경우에 도면과 모형과 같은 테크닉에 관심을 가지다 보면 정작 중요한 공간에 대한 느낌이나 질감에 대한 생각 그리고 필요한 공간을 유용하게 얻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잘못된 판단을 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설계하는 과정에서 의뢰인이 스스로 할 수 있거나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건축사에게 주문할 자기만의 꿈을 꾸는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다. 부엌은 어떤 느낌이면 좋을까. 좀 따뜻한 분위기? 아니면 소란스럽게 떠들 수 있는 곳이면 좋을까? 아니면 남에게 방해받지 않고 요리에 집중할 수 있는 곳이면 좋을까? 안방에 대해서도 생각해 봅시다. 창문을 열었을 때 무엇이 보이면 좋을까? 침대를 쓸 것인가? 안방에는 서재를 만들까? 내가 꼭 갖고 싶은 특이한 공간은 뭘까? 이런 저런 생각을 메모하듯이 글을 써 보십시다. 자신이 갖고 싶은 공간과 가족들이 갖고 싶어 하는 공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봅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지금의 어린 아이가 자랐을 때 어떤 공간이 또 필요할지도 생각해 봅시다. 이런 저런 생각들을 도면으로 그리려 하지 말고 수필을 쓰듯이 차분히 적어보면 좋겠습니다.
집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섣불리 다른 집의 평면을 카피하려고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자신이 원하는 공간을 스스로 그리지 않고, 무의미하게 인상적이고 좋아 보이는 공간의 사진을 잔뜩 가지고 오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맘에 드는 이성이 아무리 많아도 결혼은 선택한 단 한사람하고 하듯이 마음에 드는 모든 분위기를 다 누릴 수는 없습니다. 정말 자신이 취하고 싶은 단 하나의 공간의 느낌이 무엇인지는 숙고해서 선택해야하는 것입니다. 마트에서 쇼핑하는 마음으로 인터넷을 뒤지고 잡지책을 오려서는 결코 원하는 집을 그려나갈 수 없습니다. 세상에 널려있는 여러 가지의 좋은 집의 평면구성을 참고하고 멋있는 입면들을 분석하는 일들은 건축사가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늘 그런 일을 해 왔거든요. 의뢰인은 다른 사람의 집을 기웃거리기 보다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집을 관찰하고 그것을 건축사에게 고백하듯이 요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건축설계의 방법입니다.
“내가 살 집인데, 왜 내가 원하는 대로 그려주지 않는가요?”라는 말을 들을 때도 있습니다. 물론 건축사는 사실 의뢰인에게 있어서 도구와 같은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집을 대신 그려주는 도구이지요. 하지만 절대 간과해서 안되는 것은 건축사는 그야말로 ‘생각하는 도구’입니다. 그저 시키는 대로 그려주지 못할 때에는 분명 차마 그러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건축사가 그려주지 않을 때는 그 이유를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설계는 결코 의뢰인 혼자서 완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건축사가 항상 올바른 판단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그의 직업은 최소 십 수 년을 집을 그리는 일로 살아온 전문가입니다. 집을 디자인하고 지을 때 발생했던 많은 문제들에 대한 경험을 아무래도 일반인들보다는 많이 가지고 있지요. 그 경험을 존중하면서 자신이 바라는 집을 요구하기 바랍니다. 집을 그리는 과정은 항상 건축사와 의뢰인이 같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물론 같이 그리는 것은 혼자만의 판단으로 그리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왜 상대방이 내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을까 화가 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얻어진 도면이 후회하지 않을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자기가 살 집을 자기가 그려보는 것은 아주 즐거운 일이지만 혼자서 그리다보면 아주 나중에 발견된 단 하나의 실수로 서 넉 달을 고민해온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합니다. 흔하게 발생하는 실수 중 하나는 이층집을 구상하면서 계단의 면적을 감안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결국 계단이 면적이 포함되는 것을 나중에 알고 나서 법규에 맞게 면적을 조정하다보면 멋있게 꾸미고 싶었던 특별한 공간을 없애야 하는 상황이 되기도 합니다. 또 다른 흔히 하는 실수는 자기가 살고 있는 화장실을 재어보니 1.5미터 폭이면 되더라 하고 그렇게 계획을 잡는 경우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줄자로 직접 재었던 1.5미터의 폭은 벽체 중심으로 따지면 1.7~1.8미터의 폭으로 벽을 세워야 가능한 치수였던 것입니다. 도면으로 작성 할 때에는 벽체 두께를 감안해야 하는데, 벽 두께가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인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몇 달을 고민해서 그린 도면이라는 것이 의미 없는 휴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에는 본인이 원했던 집이 20평 정도면 되는 줄 알았는데 25평정도의 면적이 필요한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 저러한 단순한 이유가 처음으로 도면을 그려보는 일반인들에게는 대단히 낯선 작업일수 있으며, 또 그런 단순한 오류가 결국 계획을 전부 다시 해야 하는 상황으로 변하게 됩니다.
설계를 하다보면 의뢰인이 원하는 많은 꿈들이 포기되어지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공사비와 같은 현실적인 이유로 포기되어지는 경우도 있고 필요한 공간의 합은 30평인데 집의 총면적은 25평 이내였으면 좋겠다는 식의 정리되지 않은 계획 때문에 포기되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건축사는 어쩌면 그런 꿈들을 냉정하게 포기시키는 일을 많이 하게 됩니다. 대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금보다 더 많은 것을 꿈꾸게 됩니다. 그래서 꿈이라고 하는 것이겠지요. 그 중에 포기하지 않고 실현할 만한 가치가 있는 바램 과 여건상 포기하는 게 나을듯한 일장춘몽을 선별하는 것도 건축사가 하는 주된 일 중 하나입니다.
건축사가 포기하기를 권유하는 꿈이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그 꿈 중에는 분명 조금씩 다듬어 가면 만들어 낼 수 있는 자신만의 집의 모습이 있습니다. 하지만 집을 짓는 것은 매우 냉정한 작업입니다. 인터넷에서 보았던 예쁜 벽을 만들려면 비용부담이 어느 정도인지 혹은 여기서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 또한 사진으로 본 이미지가 실제로는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여러가지 부정적이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도 건축사의 역할입니다.
직접 자기 집을 그려보고 싶다는 의뢰인에게 제가 할 수 있는 조언은 이렇습니다. 인터넷을 먼저 뒤지기 보다는 자기가 처한 조건을 먼저 확인하고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혼자 그것을 그리려고 하지 말고 건축사와 함께 그리시기 바랍니다. 건축사는 도면을 대신 그려주는 생각하는 도구입니다.

Archi Jeju
옛말에 '배는 짓고, 집은 사라'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집을 짓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저희는 홈페이지를 통해서 건축설계와 관련한 정보를 최대한 제공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집을 만드는데 저희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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