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좋은 집

12. 좋은 집 건축사는 좋은 집을 짓기 위해서 공부도 하고 오랜 시간을 들여서 구상을 합니다. 안방은 어디에 있는 것이 좋을까, 화장실은 어떻게 만들까, 거실은 천정을 높게 할까 아니면 나지막하게 하는 것이 좋을까.

그 어떤 형태도 한가지의 고정된 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요. 설계를 한다는 것은 어떤 답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선택을 하는 것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설계를 하기전에 우리가 하는 짓 -여기서는 조금 비하해서 말을 해보겠습니다.- 이 무엇을 하기 위한 것인지를 잊고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작 좋은 집이 어떤 집인가를 생각해 보았는지 반성해보면 매일같이 집을 구상해 왔으면서도 딱히 어떤 집이 좋은 집인가하는 판단기준을 고민해 본 적이 없는 듯 합니다.

제 컴퓨터에는 무수하게 많은 좋은 디자인의 집들 사진이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이 많은 집들의 장점만을 뽑아서 설계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때로는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갖고 싶은 공간에 대한 욕심으로 구상하게 되는 공간도 있으며, 때로는 화장실을 밝게 하고 싶어서 침실을 어둡고 칙칙하게 해야하는 경우도 있게됩니다.

어느 장점을 선택하고 어느 단점을 수용할 것인가는 사람마다 선택이 다릅니다.

12. 좋은 집

그렇다면 좋은 집이라면 최소한 어떤 요건을 갖추고 있어야 할까요?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다양하고 넓음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좋은 집이 되기 위해서는 포기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집이 왜 필요할까라고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저는 가끔 집을 구상하면서 이 질문에 대해 반복해서 물어보게 됩니다.

또 종종 집을 지으려는 의뢰인에게도 자꾸 상기시켜보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말에 ‘명철이네 집은 참 좋은 집이야.’라는 이야기에는 명철이네 집이 대단히 부럽고 탐나는 집이라는 의미이기도 하겠지만 오히려 대개는 명철이가 살고 있는 집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명철이네 가정이 참으로 화목하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뛰어난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상식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좋은 집은 좋은 가정을 의미한다는 이야기는 굳이 첨언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상식이지요.

하지만 좋은 집을 짓기위한 어떤 이론이나 어떤 자료보다도 꼭 가슴에 간직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이 상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상식이 중요한 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이미 진리로 인정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상식에 위배된다면 그것은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멋있고 화려한 집에 산다고 해도 그 집에 사는 가족들이 서로 미워하고 매일같이 다투고 대화를 하지 않고 지낸다고 한다면 그 멋있고 화려한 집이라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요.

때문에 멋있고 화려한 집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것이 화목한 가족관계라는 것이며, 우리가 사용하는 ‘집’이라는 용어에는 그러한 의미가 이미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당신은 좋은 집에 살고 계신가요? 혹시 아침에 바쁜 출근시간으로 인해 가족과 식사도 같이 못하고 먼저 집을 나서지는 않으셨나요?

혹시 아드님은 학원에서 늦게까지 공부하느라고 밤늦게야 귀가하고 있지는 않나요? 혹시 은행에서 빌린 돈을 갚느라 맞벌이를 하면서 일주일에 한번 얼굴을 보고 있지는 않나요?

현대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이런 악조건 속에서 어떻게 디자인 하는 것이 좋은 집을 설계하는 걸까 고민하게 됩니다.

가끔 뉴스에서 성적을 비관해서 자살했다는 청소년이나 보험금을 노리고 가족을 살해했다는 끔찍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좋은 집을 설계한다는 게 불가능한 꿈이 아닌가하는 절망감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건축사가 설계하는 집이라는 것은 가정을 이루는 물리적 환경에 불과합니다.

아마 좋은 가정이라는 것은 물리적 환경인 집보다는 교육과 같은 것을 통한 정신적인 문제에 해당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만드는 모든 산물에는 그것을 만들기 위한 정신적인 배경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을 보통 문화라고 말을 합니다.

저는 그래서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사물들을 문화적산물이라고 지칭하곤 합니다. 건축사가 설계하는 집이라는 사물 역시 문화적산물이라고 할 수 있으며, 집에는 그것을 만들게 된 정신적인 배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전에 우리의 전통주거건축을 설명하는 이론 중에는 우리의 조상들은 우주의 중심은 비어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집의 중심에는 텅 비어있는 마당을 두고, 그 마당을 중심으로 집을 짓는 중정형 주택을 만들게 되었다는 해석이 있었습니다.

사실 주거공간의 중심에 마당을 두는 주거형식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많은 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고대로마의 도시였던 폼페이의 유적에서도 흔하게 있었던 형식이며, 중국의 사합원과 같은 형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형태입니다.

많은 주거의 형태에서 주거공간의 내부에 마당을 갖는 형태가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선택하였다는 것은 그 형태를 만들기가 기술적으로 용이하지 않다는 점을 고려할 때는 매우 특이하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제주도에서도 가운데에는 마당을 두고 안거리와 밖거리, 그리고 모커리를 두는 형태의 주거공간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중앙에 마당을 두고 사방으로 집을 짓는 제주도의 주거형태를 저는 가족관계를 중심으로 설명하는 것이 거창한 우주관에 빗대어 설명하는 것보다 좀 더 인과관계가 구체적일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우리말에 초가삼간이라는 말이 있지요. ‘초가삼간’이라는 것은 세 개의 칸으로 이루어진 단촐한 집이라는 의미입니다.

아흔아홉칸의 고래등같은 기와집이라고 하는 임금이 서민생활을 체험하기 위해 거처하던 집과과 대비되는 집이지요.

이 초가삼간이라는 말에는 우리가 집이라고 하는 형태가 갖추기를 바라는 가장 최소한의 구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집이라면 으당 갖추어야할 소박한 모습은 어떤 집이었을까요?

제주도의 초가집을 보면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개의 집들이 세칸집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세칸 집의 기본 구성은 가운데에 대청과 같은 역할을 하는 상방을 두과 한쪽에는 방이라고 할 수 있는 구들과 다른 한쪽에는 부엌이라고 할 수 있는 정지를 두고 있는 형태입니다.

지금의 용어로 비슷하게 정의한다면 [침실/거실/주방]으로 이루어진 공간이 세칸집의 기본 구성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화장실이 없지는 않겠지요. 지금의 화장실과 같은 공간은 통시라고 해서 외부에 따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이 세칸집의 기본구성에서 조금 더 발달한 형태가 구들 뒤에는 고팡이라는 저장시설이 붙어있고, 정지 쪽에는 작은구들이 하나 더 만들어져 있는 형태입니다.

이 구성이 제주의 주거공간에서는 일종의 보편적으로 이어져온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주 초가집의 구들의 크기를 실측해보면 대개 2.4미터에서 2.7미터 정도 되는 매우 작은 크기입니다. 폭이 3미터를 넘는 초가의 구들은 아직 제 경험으로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작은 방에서 어떻게 살았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기고는 했습니다. 저는 아버님이 열형제인 가족이었습니다.

예전에 초가집이었던 할아버지 집을 생각하면 그런 집에서 어떻게 열명의 자녀와 같이 살수 있었을까하고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대개 자녀들이 5~6명 정도는 되었으니까, 대개들 그렇게 구들이 두 개뿐인 집에서 부모와 자식이 각각 한방을 차지하고 살았을 것입니다.

상상만으로도 복잡한 풍경이지요.

아마 이런 이야기를 하면,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어떻게 그것을 정상적인 가정이라고 할 수 있겠냐고 반문을 할 것입니다.

아마 세칸의 조그만 초가에서 부모와 5~6명의 자녀가 같이 사는 모습은 ‘좋은 집에 산다.’고 말할 수 있는 그 사례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아마도 초가삼간 집을 짓고 님과 함께 살고싶다는 소박한 꿈도 자녀가 한명이나 두명 정도의 가정이라야 하지 않겠냐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물리적 환경이 좋은 집이 될 수 있는지 아닌지를 판가름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 아니라는 것을 그 세칸의 자그마한 초가 덕에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까지 우리 조상들은 대가족을 이루면서도 그런 집이 작다고 여기지 않고 살아왔거든요.

제주의 오랜역사속에서 민가의 그런 집이 작아서 문제가 되었다면, 분명히 제주의 집은 구들이 서너개가 되는 큰 규모의 집으로 진화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제주민가에서 한집에 방이 세 개 이상 있는 경우를 쉽게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최근에 선호되는 주거공간의 모습을 보면 소위 ‘방세개 거실하나’라는 형태의 평면구성이 가장 보편적인 모습으로 자리잡아 있습니다.

가족구성은 핵가족화 되어서 조부모가 없이 부모와 자녀 둘 정도의 가정이 대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주거공간의 크기는 더욱 커졌고, 방의 개수는 더 많이 요구되어지고 있습니다.

주거공간의 크기가 더 커지고 방의 개수가 많아졌다고 해서 더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이라는 증거가 된다고 하면 문제는 간단합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주거공간의 크기와 편안하고 행복한 가정의 모습과는 별로 관련이 없어보입니다.

소위 고래등 같은 집을 짓고 사는 부자라고 해도 가족간 불화가 깊어 큰소리가 끊이지 않는 집이 있는가하면 남의 집을 빌어살면서도 매일같이 웃음이 끊이지 않는 화목한 가정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집의 크기와 화려함은 좋은 집이 되기위한 필수 조건이 아닌듯 합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집을 설계해달라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건축사에게는 정작 자기가 생각하는 좋은집이 어떤 모습인지를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단지 자기가 좋아하는 디자인, 좋아하는 배치, 좋아하는 색깔과 재료들을 이야기 할 뿐입니다. 그러한 요청은 가끔 저를 우울하고 슬프게 합니다.

저는 아름다운집을 설계하는 건축사가 아니라 좋은 집을 설계하는 건축사가 되고 싶으니까요.

좀 오래되긴 하였는데, 젊은 남녀가 저를 찾아와서 몇 달 후에 결혼할 사이인데 신혼살림을 꾸릴 수 있는 집을 설계해 달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순간 저는 매우 두려웠습니다. 저는 집을 구상하고 짓는 과정에서 사이좋던 부부가 심한 갈등에 빠지는 경우를 간혹 본 적이 있었거든요.

하물며 아직 부부가 아닌 경우에 집을 구상하다가 서로 생각이 달라서 서로 결혼을 못하겠다고 나선다면 어찌합니까.

저는 솔직히 이 설계를 맡기가 매우 두렵다고 했고, 만약 꼭 내가 설계를 해야한다면 설계하는 동안 절대로 서로 다투지 않겠다고 내게 약속해달라고 했습니다.

그 젊은 연인은 흔쾌히 그러겠다고 하였고, 실제 집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다행히 아무런 갈등없이 잘 진행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집을 짓는 동안에 있었던 시공자와의 갈등은 둘의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하여주는 것 같아서 참 다행이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염려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집을 구상하는 것은 자기가 생각하는 가정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게 되어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예비신부는 자신이 갖고 싶은 주방은 설거지를 하면서 거실의 TV를 볼 수 있는 구조였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녀의 바람은 남편의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을 때, 그들끼리만 담소를 나누고 자기는 설거지나 하면서 이야기에 끼지 못하는 것이 매우 싫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에 남편의 경우에 남자들끼리 이야기하는 동안에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는 부인이 이말 저말 참견을 하는 것이 싫다고 말이라고 한다면 어찌 설계를 진행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단지 공간구성의 문제가 아니라 좋은 가정의 모습에 대한 둘 사이의 갈등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사회에서의 주거공간의 구조와 현대의 주거공간의 구조가 매우 다른 것은 이러한 가족관계에 대한 생각의 전환에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하면 새로운 재료의 개발이나 첨단 기술의 적용과 같은 것은 주거공간을 변화시키는 데에는 아주 조그만 변화를 주었을 뿐입니다.

우리의 주거공간에 심한 변화를 가져다 준것은 전등과 TV 그리고 에어컨과 같은 기술이 아니라, 타일과 합판 그리고 석고보드와 같은 재료의 변화가 아니라, 노모를 어떻게 모실까?

그리고 애들은 어떻게 가르치고 기를까? 그리고 부부관계는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는가와 같은 삶의 철학의 변화입니다.

그러한 변화가 방 두개뿐인 초가에서도 7~8명의 가족구성원이 단란하게 살았다면, 지금은 방이 셋이 되어도 4~5명의 가족구성원이 방이 부족하다고 불평하게 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방이 몇 개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가정이 어떤 모습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어떤 형태가 옳고 어떤 형태가 그르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적절할지 모르지만 제주민가의 형태를 들어 한가지의 예를 더 말해보겠습니다.

제주의 민가는 안거리와 밖거리를 두이(二)자 형태로 나란히 배치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물론 기역자 형태로 배치되어있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서로 마주보는 이(二)자 형태가 많은 편입니다.

이렇게 하나의 주거공간에 두채의 집을 짓고는 안거리에는 부모세대가 살고, 밖거리는 자녀세대가 살다가 부모세대가 경제력이 약해지게 되면 안거리에 다시 자녀세대가 살게 되고 밖거리는 부모세대가 살게 된다는 것이 일반화된 제주의 주생활을 설명하는 보편적인 이야기입니다.

이때 부모와 자식이 살림을 따로 하는 것이 특징이고 때문에 제주사람들은 예전부터 핵가족형태의 삶을 살았다고도 말을 합니다.

저는 이 설명의 근거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라, 안거리와 밖거리의 가옥배치에서 두 집이 마주하는 방식에 대해서 매우 상식적이면서 중요한 점을 지적하려고 합니다.

세계의 다양한 전통주거건축의 형태를 설명함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배경으로 많이 거론되는 것이 환경에 의해 주거건축의 모습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나무가 많은 곳에는 목조건축이 발달하고, 돌이 많은 곳에서는 석조건축이 발달한다는 식의 설명이지요.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남향선호사상이 매우 강하여서 최대한 집을 남향 혹은 동남향을 한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최근까지도 모든 건설회사들이 아파트를 지을 때는 동서방향으로 길게 하여 모든 집들이 남향을 할 수 있도록 배치하는 것이 기본이었습니다.

집을 지을 때 남쪽 조망을 중시하는 것은 지금의 제주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는 모습입니다. 건강을 위해서도 일조를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아주 과학적인 선택이기도 하구요.

이런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제주의 전통적인 민가가 두이(二)자 형태로 배치되었다면 어떻게 배치되는 것이 옳았을까요? 당연히 안거리와 마찬가지로 밖거리도 살림집이기 때문에 남향배치를 하여야 옳겠지요.

하지만 밖거리의 구들을 보면 남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김없이 마당을 향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거리가 남향집이라면 밖거리는 북향집이 되는 것이지요. 왜 그럴까요? 당연히 일조를 위한 향(向)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마당을 향하고 있으니, 일조를 위한 향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마당이었을까요? 저는 이것을 가족관계였다고 생각합니다.

부모와 자식의 집을 한 울타리안에 배치하면서 등을 돌려 앉은 모습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기본적인 이유인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부를 때 얼른 대답할 수 있고, 자식이 부모를 찾을 때 금방 확인할 수 있는 배치가 따스한 일조를 얻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최근에 임대사업으로 인기를 얻는 주거의 형태로 원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의 공간에 구획이 없이 침대와 주방기구와 세탁기와 식탁이 배치되어있는 형태이지요.

단 한가지 구획되어있는 공간이 있다면 화장실정도만 구획이 되어있습니다. 만약에 화장실도 불쾌한 냄새를 없앨수만 있다면 구획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형태의 주거공간이 선호되는 것은 현대사회의 가족의 모습의 변화와 관련이 깊습니다.

경제력은 있지만 금방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아가는 젊은 층이 늘어가기도 하고, 결혼을 하더라도 자녀계획을 미루는 젊은 부부들이 늘어가고 있는 모습, 그리고 노년에 자녀들을 독립시키고 은퇴한 부부만의 가족구성원으로 사는 경우들도 점차 늘어가고 있습니다.

과거에 생각하던 가족구성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지요. 그러고 보면 초가삼간도 이제는 작지가 않은 집이 되었습니다.

지금의 원룸을 예전에는 단칸방이라고 부르지 않았는가요? 가족구성원의 형태가 바뀌면서 주거공간의 모습도 바뀌어버리는 것이지요.

최근에 설계를 하는 후배가 집은 결국에는 어떻게 설계를 하던지 그 주인을 닮아버리더라고 말을 하더군요. 그렇습니다.

건축사가 어떻게 디자인을 하던지 집은 결국 그 주인을 닮게 마련입니다.

처음에는 건축사의 손길이 느껴지던 디자인도 주인이 좋아하는 책과 가구와 그림이 채워져가고 좋아하는 음식과 애완동물이 돌아다니기 시작하면 금새 그 집은 주인의 색깔로 변해버립니다.

단지 건축사는 처음에 약간의 밑그림을 그려주는 것 뿐이고 그 그림을 완성시키는 것은 결국 주인인 셈이지요.

때문에 집을 디자인 함에 있어서 가족구성원이 어떻게 되어있는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 가족구성원에 따라서 필요한 공간들이 구상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만약에 가족구성원이 없이 혼자 살 집이라면 저는 주저없이 원룸과 같은 형태에서 사시라고 권할 것입니다.

형편이 어렵다면 좀 작은 규모의 원룸이고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좀 너른 공간을 가진 원룸일 뿐 혼자 살면서 굳이 방과 거실과 주방을 구분하면서 들락날락 거릴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원룸에서 사는 경우를 저는 좋은 집에 산다고 말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직은 혼자 사는 모습을 좋은 가정의 형태라고 말하지는 못할 것 같아서입니다.

가족은 두 명이건 세 명이건 한 공간에서 같이 잠을 자고, 같이 식사를 하고 궂은 일 좋은 일을 함께하는 모습이어야 할 것입니다.

개인을 가족이라고 할 수는 없지요. 아주 편리하긴 하지만 원룸을 좋은 집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은 가족을 수용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좋은 집을 구상하기 위해서는 좋은 가족관계에 대한 성찰이 먼저 필요할 듯 합니다. 최근에 가정폭력과 같은 뉴스를 접하면서, 좋은 가정을 이루지 못하는데 어떻게 설계를 잘 하든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화려하고 멋있는 씽크대, 대형 텔레비전, 넓은 잔디마당 등등을 갖춘다고 하여도 그게 가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포장된 무대세트에 불과하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집의 구상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돌아보아야 할 것은 가족입니다.

내 자식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내 아내가 혹은 남편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부모님은 무엇이 필요할까? 우리가족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집을 구상하기 위한 질문은 이러한 것으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봅시다. 좋은 집에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Archi Jeju
옛말에 '배는 짓고, 집은 사라'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집을 짓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저희는 홈페이지를 통해서 건축설계와 관련한 정보를 최대한 제공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집을 만드는데 저희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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