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집은 어떤 집일까? 많은 집을 설계해 보았지만 여전히 이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 질문에는 단순히 집이라는 건물의 형태와 공간에 대한 대답만으로는 만족하기 어려운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보통 ‘누구네 집은 참 좋은 집이야.’라고 말을 할 때 그 좋은 집은 사물로서의 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족의 행복지수를 평가해서 하는 말이다.
집을 설계하는 건축사의 마음에는 그런 행복함을 설계하고 싶다는 꿈이 들어있다. 물론 그것은 건축사의 영역을 벗어난 또 하나의 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집을 설계하는 것이 꿈과 같은 것이라면 집을 설계하는 과정도 꿈을 꾸듯 즐거운 경험이 되었으면 좋겠다. 건축주에게 집을 구상하는 과정에 같이 해 보자고 하는 것도 그 꿈을 같이 즐겨보자는 것이다.
어떤 집을 좋은 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좋은 집이라면 최소한 어떤 요건을 갖추고 있어야 할까?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다양하고 넓음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좋은 집이 되기 위해서는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그러한 질문은 우리에게 집이 왜 필요할까라고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집을 구상하면서 이 질문에 대해 반복해서 자문하게 된다. 집을 지으려는 의뢰인에게도 자꾸 상기시켜보는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말에 초가삼간이라는 말이 있다. ‘초가삼간’이라는 것은 세 개의 칸으로 이루어진 단촐한 집이라는 의미이다. 세 칸의 집은 [방-마루-부엌]이라는 공간구성을 기본으로 한다. 최근에 선호되는 아파트의 공간구성을 말할 때 ‘방 세 개 거실 하나’라는 구성이 매우 보편적인 모습으로 회자된다. 가족은 점점 핵가족이 되어서 조부모가 없이 부모와 자녀 둘 정도의 가정이 대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주거공간의 크기는 더욱 커졌고 방의 개수는 더 많이 요구된다.
주거공간의 크기가 더 커지고 방의 개수가 많아졌다는 것이 더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이라는 증거가 된다고 하면 주거문제에 대한 해법은 간단하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주거공간의 크기와 편안하고 행복한 가정의 모습과는 별로 관련이 없어 보인다. 소위 고래등 같은 집을 짓고 사는 부자라고 해도 가족 간 불화가 깊어 큰소리가 끊이지 않는 집이 있는가하면 남의 집을 빌어 살면서도 매일같이 웃음이 끊이지 않는 화목한 가정도 있다. 그렇다면 집의 크기와 화려함은 좋은 집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은 아닌 듯 하다.
제주도의 전통적인 살림집은 부모와 자식이 별동의 집에서 살림을 따로 하는 세대분가형 구조를 기본으로 한다. 혹자는 이렇게 부모와 자식세대가 따로 살림하는 것을 두고 부모 자식 사이의 관계가 소원하다고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지어진 안팎거리집은 항상 마당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게 배치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조망이나 채광보다도 가족간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꽤 오래전의 일이었다. 젊은 남녀가 찾아와서 몇 달 후에 결혼할 사이인데 신혼살림을 꾸릴 수 있는 집을 설계해 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예전에 집을 구상하고 짓는 과정에서 사이좋던 부부가 심한 갈등에 빠지는 경우를 본 적이 있어서 순간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아직 부부가 아닌 경우에 집을 구상하다가 서로 생각이 달라서 서로 결혼을 못하겠다고 한다면 어찌할지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솔직히 이 설계를 맡기가 매우 두렵다고 말하고 만약 내가 설계를 해야 한다면 설계하는 동안 절대로 서로 다투지 않겠다고 약속 해 달라고 요구를 했다. 그 젊은 연인은 흔쾌히 그러겠다고 하였고 실제 집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다행히 아무런 갈등 없이 잘 진행이 되어서 설계가 끝나고 안도의 숨을 쉰 기억이 난다.
그렇게 걱정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집을 구상하는 것은 제각기 자기가 원하는 가정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당시 예비신부는 자신이 갖고 싶은 주방은 설거지를 하면서 거실의 TV를 볼 수 있는 구조였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녀의 바람은 남편의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을 때 그들끼리만 담소를 나누고 자기는 설거지나 하면서 그들의 대화에 끼지 못하는 것이 매우 싫다는 것이었다.
만약에 남편의 경우에 남자들끼리의 대화에 부인이 이 말 저 말 참견을 하는 것이 싫다고 했다면 그때부터 설계는 난항을 겪었을 것이다. 다행히 이 점에 서로 동의를 하였고 설계는 순조롭게 진행 할 수 있었다. 보통은 고집이 별로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이러한 삶의 방식에 대해서 의견이 안 맞을 때에는 좀체로 자신의 생각을 접지 못한다. 그래서 좋은 살림집의 설계가 어려운 것이다.
집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한 번쯤은 좋은 가정이 어떤 모습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집을 주제로 가족간에 즐거운 대화를 나누어보는 것도 흥미롭고 의미가 있다. 집을 설계하면서 가족을 돌아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일전에 설계를 하는 후배에게서 집이라는 것은 어떻게 설계를 하든지 결국에는 그 주인을 닮아버리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맞는 말이다. 집은 건축사가 어떻게 디자인을 하든지 결국 그 주인을 닮게 마련이다. 처음에는 건축사의 손길이 느껴지던 디자인도 주인이 좋아하는 책과 가구와 그림으로 채워지고 집안에 애완동물이 돌아다니기 시작하면 금세 집은 주인의 색깔로 변해버린다. 건축사는 단지 처음에 약간의 밑그림을 그려주는 것 뿐이고 그 그림을 완성시키는 것은 결국 주인인 셈이다.
좋은 집을 꿈꾸는 과정은 즐거운 경험이다. 누군가는 여행을 가는 것보다 여행을 준비하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고 하였다. 어쩌면 짓는 모든 과정에서 집을 구상하는 그 시간이 가장 즐거운 시간일지도 모른다. 건축사와 함께하는 그 즐거운 여정을 놓치지 않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