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민가관련 용어와 일반적 특징

제주민가관련 용어와 일반적 특징 – 제주민가 관련 용어의 정의는 김왕직(2007), 증보제주어사전(2009), 양상호(2015)에서 인용하거나, 참고하여 정리하고 부연 설명을 하였다. 물론 때로는 육지부와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용어도 있으나 많은 부분에서 제주만의 톡자적인 용어도 적지 않다. 용어가 타 지역과 다르다는 것은 단순히 지역어로서의 차이라는 의미 이상으로 그 지역인들이 사물을 이해하는 관점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관심가지고 확인할 필요가 있다.

(1) 고팡

주로 곡물을 저장하는 수장 공간으로 흙바닥이거나 우물마루의 바닥을 하기도 한다. 영호남지역에서 창고의 기능을 갖는 공간을 ‘고방’이라고 하여 제주의 고팡도 이와 연관된 공간이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만 제주도의 고팡은 거의 예외 없이 큰 구들의 뒤에 설치된다는 점에서 타 지역의 고방과는 위치적으로도 다른 특징이 있다. 또한 추자도를 포함한 호남지방에서는 제주도의 고팡처럼 곡식만을 보관하는 곳을 ‘말래’라고 하는데, 위패를 같이 모시면서 제사공간의 기능을 겸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주의 고팡과 기능적 차이가 있다. 제주도의 남서부지역인 대정과 가파도에서는 고팡을 ‘안방’이라고 부른다.

(2) 구들

① 방구들의 준말, ② 사람이 거처하기 위하여 구들을 놓고 불을 때게 만든 칸

육지에서는 보통 구들장이라고 하면, 방의 바닥에 난방을 위해 고래 위를 덮는 넓적한 돌을 말한다. 제주에서는 어른이 기거하는 방을 큰 구들이라고 하고, 자녀가 기거하는 방을 작은 구들이라고 한다. 큰 구들이라는 것은 작은 구들보다 크다는 것이 아니라, 격(格)이 높다는 의미이다.

(3) 굴묵

구들에 난방을 하기 위해 불을 때는 공간으로, 전면 툇마루 옆으로 출입하거나, 측면에 출입구를 만들어 불을 때었다. 불을 지피기 위한 굴묵 주변 공간은 어떤 경우에도 바람이 들이치지 않도록 폐쇄된 구조를 하였다.

제주의 초가에는 본래 굴뚝이 없다. 이는 제주의 난방방식에 고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제주민가에는 난방을 위한 굴묵이 있었지만, 사실은 불을 지피는 곳에만 1제곱미터 남짓한 공간만이 있을 뿐 뜨거운 연기가 바닥으로 흘러들어가는 고래구조가 없었고, 때문에 연기를 빼내는 굴뚝이 없었던 것이다. 제주의 민가에 굴뚝도 생기고 고래구조가 생겨난 것은 난방과 취사를 겸하는 근대화과정 속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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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묵의 구조: 신석하(1996) 인용

(4) 낭간

툇마루, 마당과 상방의 중간 매개공간.

발음상 ‘난간’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으나, 안전손잡이를 의미하는 ‘난간’과는 관련이 없으며, 낭(나무)가 깔려있는 곳이라는 의미가 설득력이 있다. 구들이나 마루라는 것도 바닥에 깔려있는 재료와 관련된 호칭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공간의 이름을 붙이는 것과 그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재료와의 연관성은 차후 논의해 볼 만한 소재일 것이다.

(5) 눌굽

탈곡하기 전의 농작물을 단으로 묶어 쌓아두거나 탈곡하고 난 짚을 낫가리로 씌워 쌓아 놓은 조영물을 ‘눌’이라 하고, 눌을 누는 자리는 우천시 침수를 피하기 위하여 마당 바닥면으로부터 40~50cm 높게 돌로 단을 놓고 평평하게 했다. 이것을 ‘눌굽’이라 한다.

(6) 문간, 이문간

주택의 울타리 경계에 설치된 대문시설, 또는 그 공간

(7) 물팡

물허벅을 내려놓기 위한 시설로 보통 정지 앞에 만들어진다.

(8) 무뚱

처마 밑에 신발 따위를 벗어 둘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으로 보통 마당보다 조금 높게 되어있다. 육지부에서는 목조로 집을 지었던 시절에 보통 집을 지을 때에는 습기 등이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고, 건물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서 마당보다 집 지을 자리를 단을 만들어 높게 하고 이를 기단이라고 했다. 제주의 민가에서는 이러한 기단을 특별히 높게 하지 않고 돌 한줄 정도의 높이로 하고 흙을 다져서 살짝 높이는 정도로 하였는데, 마당과 낭간(툇마루)사이의 높이 차이가 생기는 부위를 무뚱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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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팡과 무뚱(하가리)

(9) 봉덕

부섶이라고도 부른다. 상방 또는 부엌에 설치된 것. 나무를 때서 겨울에는 공기를 덮히는 채난(採暖)용도로 자주 쓰이고, 큰일 때에는 생선이나 고기적 등을 구워내는데 쓰기도 하였다. 봉덕은 주로 동쪽지역에서 많이 시설되었으며, 난산리에서는 거의 모든 집에 봉덕이 있었다고 하였다.

난산리 오00씨(여,1939년생)는 1959년 사라호 태풍이 불어서 초가지붕을 걷어내고 스레트집으로 개량을 하였다. 그때 당시의 초가집의 가운데 상방은 마루가 깔려있는 것이 아니라, 맨 흙바닥이었다. 흙바닥에 초석을 깔고 거기서 식사를 하였는데, 이렇게 흙바닥으로 된 방을 상방이든, 구들이었든 그것을 ‘북덕방’이라고 불렀다. 보통 상방이 북덕방인 경우에는 돌화로인 ‘부섭’을 두었었다.

북덕방이엔 헌거는 옛날에 흙돌집에 살적에 짚을 깔었거덩. 짚을 깔어서 거기서 앉아서 밥 먹고, 거기서 거의 생활을 했거덩. 부엌에 한쪽에 검질깔고, 한쪽에 솥걸어서 아궁이 해가지고. 거기 돌아앉아 먹었어. 그 자리보고 북덕방이라고 해서. [그러면 북덕방은 부엌 한켠에 있는 거군요.] 그리고 마루가 없는 집에는 짚을 다 깔었거덩. 그 짚을 제주도말로는… 마루를 못놓으며는 거기에 검질 깔며는 그거보고도 북덕방이라. 검질깔은 방을 보고 북덕방.<김영송(남,69세) 2012년 채록>

그렇게 북덕방 생활을 한 것이 난산리 사람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지 않은 가호에서 그리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특히 상방이 북덕방이었던 경우에는 가운데 부섭을 설치해서 습기를 보완하였다. 부섭은 마루를 설치한 경우에도 마루를 파서 돌화로인 부섭을 넣기도 하였지만, 대개는 북덕방인 경우에 돌화로를 방 가운데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01_봉덕(양금석)

봉덕(신례리 양금석가옥 안거리)

(10) 불치통

솥덕에서 나온 재를 모아두기 위한 공간으로 통상 솥덕의 뒤에 마련한다.

(11) 벡장 (=벽장)

아궁이 혹은 굴묵의 윗 공간을 방에서 이불 등을 보관할 수 있도록 벽을 후퇴하여 만든 공간이며, 건축화 된 수장공간이다.

(12) 상방(=삼방)

육지부의 대청에 해당하는 목재마루가 깔려있는 공간을 말한다. 주로 집의 중앙에 위치하며 담소와 휴게의 공간이기도 하면서 동선의 중심이 되기도 한다. 상방(삼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의미를 숫자 3과 연관 짓기도 하고, 마루라는 의미의 한자 상(床)과 연관 짓기도 하지만 아직 정설은 없다. 다만, 제주의 남동부지역에서는 상방이라는 용어보다는 ‘마루’ 혹은 ‘마리’라는 용어를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다.

육지의 민가에서는 가운데에 있는 마루공간을 ‘청’이라 부른다. 대청은 통상 개방된 공간으로 되어있으며, 살창이 설치되어있는 경우에도 들어서 개방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반면 제주민가의 상방은 널문으로 해서 완전히 폐쇄된 구조를 하고 있다. 상방의 마당쪽에 달려있는 널문을 ‘대문’이라고 한다. 대문을 닫으면 상방은 채광이 전혀 되지 않는 완전히 폐쇄된 공간이 되는데, 이러한 공간적 특징이 ‘청’이라고 하기 보다는 ‘방’이라고 한 이유로 여겨진다.

(13) 정낭

주거공간 출입부에 설치한 가로목재, 정낭을 걸어두는 지주를 정주목이라고 한다.

제주에서는 3무의 하나로 대문이 없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었다. 그만큼 인심이 좋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한 것이기는 하지만, 정낭을 대문으로 여기지 않는 타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제주에서도 성안지역과 산북지역에서는 대문을 포함한 이문간이 시설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대문이 없다는 것은 문화상대적인 입장에서의 표현이며, 실제로는 정낭과 올레목 그리고 이문간 등을 통해서 경계를 구획하는 대문의 형태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14) 안뒤 (=안튀)

안채가 앉은 자리에서 뒤쪽에 있는 뜰이나 작은 텃밭이며, 안뒤에 장독대를 두고 정지에서 출입하는 경우가 많아서 주로 여성공간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모슬포지역에서는 ‘안뒤’공간은 있지만 ‘안뒤’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고, 그냥 ‘뒤’라고 하기도 한다.

(15) 올레(=올래)

거릿길쪽에서 대문까지의 집으로 드나드는 아주 좁은 개인적인 길이다. 올래는 대개 집을 곧바로 바라보면서 진입하면 좋지 않다는 풍속이 있어서 완만하게 휘어지거나 꺽인 형태를 하는 게 일반적이다. 또한 수개의 집이 긴 막다른 골목을 공유하는 경우에도 올래라고 부른다. 이 경우는 개인적인 길이 아니라 공동체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16) 장방

상방의 뒷문의 퇴에 뒷문 통로를 제외한 양쪽공간에 반침을 만들어 놓은 것.

(17) 정지(=부엌)

부엌을 가리키는 말로 정지는 ‘정재’라고 부르기도 한다. 육지의 대개의 지방에서도 부엌을 ‘정지’이라고 불렀으며, 정지는 제주만의 용어가 아니라 예전에는 보편적으로 사용됐던 용어로 보인다. 게다가 이북 함경도지역에서는 부엌 안에 난방이 되는 높은 바닥을 만들어 ‘정주간’이라고 부엌과 구분하였다. 제주의 북동부지역에서는 정지만을 모커리로 따로 짓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정지 혹은 정짓간으로 부르기도 한다. 통상 육지부에서는 취사하는 아궁이를 통해 난방을 겸하는데, 제주에서는 취사하는 솥덕을 구들과는 반대편으로 하여서 난방을 하지 않는다. 지금 볼 수 있는 난방과 취사를 겸한 아궁이 시설은 근대화과정을 통해 개량된 것이다.

공싯간이라는 것은 정지를 안거리에 시설하지 않고, 별동으로 해서 정지를 시설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으로, 그냥 부엌, 혹은 정제라고 부르기도 하고, 정짓거리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난산리에 공싯간이 흔히 있었는지, 아니면 드믈게 있었던 유형이었는지 판단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기본적으로 공싯간이라는 것이 있었음을 이해하는 비율은 상당히 높았다. 다만, 그것이 흔히 있었다고 하는 이들도 있었고, 그게 좀 살만한 사람들이 그렇게 했다는 이들도 있었다.

[정짓거리가 많이 있었나요?] 아니, 없어. 드믈어서. 안커리에 다 이슨거. [할머니: 공싯간 있는 집이 아주 치레허는 집이나 공싯간 있주] [아, 그걸 공싯간이라고 하는 구나 예.] 응. 공싯간. [공싯간을 따로 하는 경우는 왜 그랬을까요?][할머니: 연기 나가난 안거리 치레 허느라고 그랬주] 일개마을에 혼 4~5동 빼끼 어서. <김인수(남, 80), 2011년 채록>

[난산리는 정지가 따로 있는 집이 많이 있던데요.] 응. 거의. 90%. <김영송(남, 69세), 2012년 채록>

난산리에서 1970년 이전에 초가집이 대부분인 시절에 공싯간이 보편적이었는지 판단하는 것은 좀 난해하다. 김인수씨에 의하면, 공싯간이라는 것이 잘사는 집에서 간혹 하는 것이라고 하였고, 김영송씨는 거의 대부분 공시간을 하였다고 말을 하였다. 이러한 구술의 불일치는 각자 자신의 본 바에 의해서 말을 하였다고 할 수 있는데, 10년 정도의 나이차에서 이러한 의견 불일치를 보는 것은 이례적인 상황이다. 필자는 현장에서 조사하는 과정에서 공싯간이 있었다는 구술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오00씨(여,67세)의 경우에도, 초가집일때는 부엌이 안거리에 있었는데, 초가집을 헐고 새로이 집을 지을 때에 부엌을 딴집에 지었다고 했다. 김석주씨의 경우에도 1970년대에 집을 지으면서 공싯간을 따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공싯간이라는 것은 제주의 북동부지역에서는 매우 보편적인 주거형식이었다. 하지만, 난산리에서 공싯간이라는 것은 여유 있는 집에서나 갖출 수 있는 주거형식이었으며, 대개는 안거리에 정지가 있는 3칸집이 보편적이었다.

난산리에 공싯간이 널리 유포된 것은 오히려 초가집의 형태를 버리고 돌과 블록을 이용한 집을 짓기 시작한 1970년대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공싯간을 따로 만든 것은 연기가 많이 나는 부엌을 따로 만드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농촌경제가 좋아지고 새로이 집을 짓는 일이 많아지면서 공싯간을 따로 짓는 경우가 늘어간 것이다.

새로 만든 공싯간 중에는 일부 불칫통을 덧달아 만드는 경우들이 생겨났다. 조리를 하면서 생겨난 부산물인 재는 정지에 그냥 놔두면 공중에 날려 비위생적이기도 했지만, 재는 잘 모아두면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초집일 때는 보통 취사용 솥덕 뒤로 재를 모아두는 불칫통이 있었다. 돌로 새로이 지은 정짓거리는 보다 더 위생적이고 편리한 방법을 고안해 내었다. 건물 외벽으로 구멍을 내어 재를 밖으로 밀어낼 수 있도록 하고, 정짓거리 외벽에 재를 모아두는 공간을 만들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굳이 재를 모아두기 위해 밖으로 들락거리지 않아도 되지만, 또 밖에서 재를 수거하기 위해서 정지를 들락거리지 않아도 되었다. 이렇게 해서 재는 한 달에 한번 정도 수거를 해서 주로 보리밭에 거름으로 사용하였다. 초집에서 개량된 정짓거리를 만들때는 대부분 이러한 불칫통을 만들었다. 생태적이고 효율적인 새로운 양식의 불칫통이 생겨난 것이다.

(18) 제창문, 호령창, 생기문

상방대문 옆에 설치한 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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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방대문과 호령창(감산리)

(19) 좌향

집이 앉아있는 방향을 좌향이라고 한다. 육지의 집의 배치에서는 북쪽에 산을 두고, 남쪽으로 좌향을 하면서 배산임수의 배치를 하는것이 풍수의 일반적인 형태이다. 제주도의 민가의 배치의 특징은 산북지역의 경우 남서향 배치를 하는 경우가 많고, 산남의 경우는 정남향배치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겨울의 북서풍을 피하기 위한 산북지역 사람들의 고민을 보여주는 것인데, 집이 남서향을 하였을 경우에는 북서쪽으로 집의 측면을 향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추위를 피할수 있는 구조가 된다. 이에 비해 북서풍의 피해가 적은 산남지역의 경우는 일조를 중시한 남향배치를 주로 하게 되는 것이다.

(20) 집줄

지붕을 덮은 재료를 누르는 지붕줄. 제주에는 바람이 거세어 지붕재료가 바람에 불려가지 않도록 새를 꼬은 줄로 지붕를 촘촘히 묶었다. 지붕의 경사물매도 다른 지역보다 낮아서, 외형적으로는 30도 정도의 경사각을 가지게 된다. 이는 바람에 의한 풍압을 적게 받으려는 의도이다. 새로 집줄을 만들 여유가 없을 때에는 나뭇가지로 지붕을 잡아매기도 하였는데, 이를 ‘옥개기지붕’이라고 하였다.

(21) 챗-방

정지와 상방 사이에 식사를 주로 하는 마루가 깔린 공간을 가리키는데, 제주도의 서부지역의 네 칸집에서 독립된 형태로 나타난다. 일부에서는 ‘청방’, 혹은 ‘찬방’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분화되지 않고, 정지 안에 보리낭(짚)을 깔고 식사하던 공간을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22) 칠량구조

육지부의 일반 민가의 경우는 대부분 오량구조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주민가의 지붕구조틀은 안거리의 경우 거의 대부분 칠량구조를 하고 있다. 공간의 크기가 크지 않음에도 칠량구조를 하는 것은 그만큼 만들기가 복잡하다는 것인데, 이는 바람에 의한 횡력을 효과적으로 버티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집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 기본 뼈대의 틀이 어떤 형태로 되어있는 지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제주민가는 앞뒤로 공간를 배열한 겹집구조이며, 강원도 지역을 제외한 육지의 대부분지역의 민가는 공간을 일렬로 배열한 홑집구조이다. 홑집구조의 경우에는 7량의 구조틀을 하면 공간을 자유롭게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부재가 길어지더라도 5량의 구조를 하게 된다. 제주의 민가가 겹집구조를 하게 되는 것은 통풍에는 불리할 수 있으나, 7량의 지붕구조의 역할과 마찬가지로 횡력에 저항하는 매우 강한 구조체를 만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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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민가의 7량식 뼈대구조, 김홍식(1992),p.597

또한 제주민가에서는 육지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꺽인 형태의 평면을 거의 볼 수가 없다. 때문에 민가의 평면형태는 돌출된 부분이 없이 직사각형의 반듯한 모양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육지의 민가를 둘러본다면 이렇게 돌출부가 없는 형태가 전 도에 걸쳐 보편적이라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특징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이는 구조를 단순하게 하여 쉽게 건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지붕골을 만들지 않게 하여 빗물처리를 용이하게 하려는 의도가 중요한 원인으로 생각된다.

(23) 칸

일반적으로 한옥에서는 규모를 이야기 할 때 대개 몇 칸집 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칸을 면적을 나타내는 기본단위로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정면3칸이고 측면 2칸인 집은 ‘3×2=6칸집’이라고 한다. 칸은 또 길이 단위이기도 한데, 정면5칸이라면 기둥이 6개 있는 주칸이 5칸인 것을 말한다.

다음에 설명하게 될 제주민가의 평면유형에서 세 칸 집이라는 것은 정면에서 집의 칸수가 세 칸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면적으로 칸을 말한 것이 아니라, 오른쪽 그림의 아래처럼 대표적인 길이단위로 집의 규모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24) 통시 (=변소)

돼지를 기르는 막을 겸한 통시를 특히 톳통시라 하여 제주인의 특별한 생활문화로 여겨왔다. ‘문전본풀이’의 내용을 보면 남선비의 안주인인 여산부인은 조왕신이 되고, 첩인 노일저대귀일의 딸은 변소에서 죽어서 칙도부인이 된다. 위생적인 이유를 겹해 그런 신화의 내용은 정지와 통시는 가까이 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25) 풍채

안.밖거리의 낭간 앞에 설치하여 바람 또는 햇볕을 막기 위한 차양시설. 맑은 날에는 들어내어 그늘을 깊게 하였고, 비가 오는 날에는 풍채를 내려서 낭간안으로는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하였다. 본래 새를 엮어서 만들었는데, 근대화과정에서는 양철을 사용한 풍채가 많이 이용되었다.

02_풍채(조일훈)

성읍 조일훈 가옥 풍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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