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인문학과 건축설계

06. 인문학과 건축설계 우리나라에서 건축설계를 하는 사람이 인문학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참으로 곤혹스럽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건축디자인을 전공한 사람들이 고등학교 때 이과 지망생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어릴적에 자연계열의 학문을 공부하겠다고 선택했었고, 때문에 역사와 문학 그리고 철학 등에 대해서 깊이 있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건축디자인을 전공하겠다고 대학에게 결심한 그 순간부터 그들의 사고는 자연과학적인 방식이 아니라 인문학적인 물음에 익숙해지게 됩니다.

글자 그대로 자연과학은 자연계를 관찰하고 연구하는 학문이고, 인문학은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그러면 자연계를 연구하는 것과 인간을 연구하는 것이 다른 방식이라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특히 생명과 관련이 없는 물리와 화학 같은 자연과학과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은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한때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처럼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문과학이라는 용어도 만들어졌지요. 자연과학의 업적이 매우 활발히 발표되던 즈음에 과학이라는 것이 온 우주의 비밀을 다 풀어줄 것 처럼 신뢰받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과학적 사유의 바탕이라고 할 수 있는 ‘객관성’과 ‘명증성’은 모든 학문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과학에 힘을 입은 산업혁명과 제국주의의 시대를 거치고 나서 과학이 가져온 것에 대해 회의를 갖기 시작하면서 인간을 연구하는 것은 자연을 연구하는 과학과는 다른 문제임을 깨닫게 됩니다. 통상 인문학이라고 하면 문학, 사회학과 사학, 철학을 이야기 합니다. 이러한 분야에서는 과학적 증명의 방법으로 학문을 논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이 객관적인 대상이 아니라 주관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점도 깨닫게 됩니다.

저 역시도 고교시절 자연계열을 선택하였고, 공과대학에 속한 건축공학과에서 건축설계를 배웠습니다. 당연히 설계를 공부하는 동안이야 인간이 어떻게 사는게 좋을까하는 질문도 하고 토론도 하였지만, 인문학에 대한 기초 소양이 없는 상태에서의 토론이 매우 공허한 이야기인 경우가 많았지요.

사실 인류가 만들어낸 모든 문화적 산물들은 인문학과 관련이 있습니다. 음식도 그렇고 옷도 그렇지요. 요리를 한다는 것이 단순히 파를 어떻게 썰고 물을 얼마나 부어서 끓이고 하는 것만으로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아니지요. 결혼식 때 먹는 음식, 그리고 장례식 때 먹는 음식 또한 음식의 종류뿐만 아니라, 음식을 같이 먹는 방식 그리고 먹는 시간과 같은 것 속에는 그 공동체가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유지해온 문화적인 이유가 있게 마련인 것입니다.

제주도에는 여름에 특히 물회라는 것이 인기있는 음식입니다. 냉수에 된장을 풀고, 식초를 적당히 넣고 자리를 썰어서 먹는게 ‘자리물회’라는 음식입니다. 보통 회라고 하면 익히지 않은 생선을 얇게 썰어서 장에 찍어먹는 것을 말하는데, 자리는 뼈를 제거하고 얇게 써는 게 어려워서 뼈채로 썰어서 먹게 됩니다. 예전에 선배가 제주도에 놀러왔다가 자리물회를 먹어보고는 ‘제주도 사람들은 된장국을 끓이지도 않고 먹더라.’고 우스개로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자리물회가 제주음식이 된 이유에는 농사짓는 전주에서 비빔밥을 즐겨먹는 것처럼 바다생활을 하는 시간이 많은 사람들이 현장에서 쉽게 음식을 장만하는 요령에 의한 것이 배경이 되었을 것입니다.

집이라는 것은 어떤 문화적 산물보다도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집을 디자인하는 사람이 삶의 문제를 깊이있게 고민해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다시 강조해서 말하자면 집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집을 짓는 기술적인 것을 말한다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을 공간을 통해서 구체화한다는 것입니다. 조금 어려운가요? 사실은 어려운 말은 아닌데, 달리 쉽게 쓸 방법이 없어서요.

누구나 아는 옛집을 통해서 이야기를 해 볼께요. 예전 초가집을 짓고 살던 시절에는 제주사람들이 한 마당 안에 안거리와 밖거리라는 두채의 살림집을 짓고서는 안거리는 부모세대가 살고 밖거리는 조부모세대가 살았습니다. 자식세대가 더 큰 집에 살았다는 것에 육지사람들은 깜짝 놀라기도 하거니와, 부모와 자식이 각각 안거리와 밖거리에서 따로 식사를 하였다는 이야기에는 더욱 놀라고 맙니다. 부모를 깍듯이 모셔야 하는 유교적 관점에 이해하기 어렵지요.

이렇게 안거리와 밖거리로 집을 짓는 것은 자연과학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제주인의 삶의 방식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무엇때문이다라고 규정해서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 않은 부분은 자연과학에서처럼 인과관계로 명확히 증명하듯이 말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제주인들은 분명히 부모와 자식세대간의 의존적인 관계가 육지보다는 훨씬 덜 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저는 그게 해양적 삶의 형태가 반영된 것이 아닐까 추정은 합니다.

예전에 난산리에는 육지부의 대청에 해당하는 상방 가운데에 돌화로를 설치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것을 봉덕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하례리 양금석가옥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난산리에서 들은 이야기로는 추운 겨울이 되면 봉덕에 모여앉아서 대나무 가공품을 만드는게 그 동네의 중요한 수입원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집집마다 주위로 대나무를 많이 심기도 하였고, 집에는 으레껏 봉덕이 있었다고 하네요. 이처럼 봉덕 뿐만이 아니라 정낭이나 똥돼지라고 하는 것이나 다 제주인들의 삶의 모습이 반영되어진 결과인 것이지요.

이러한 제주의 민가의 형태와 육지의 민가의 형태가 다른 것은 제주인의 삶의 모습과 육지인들의 삶의 모습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유명한 한 건축가는 집을 짓는다는 것은 글을 짓는 것처럼 문학적인 것이라고 하더군요. 저 역시도 집은 어떤 사물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삶을 표현하는 이야기형태, 즉 문학의 구체적인 모습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건축이란 인문학을 통해서 이야기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1959년에 사라호라는 엄청나게 강한 태풍이 불었습니다. 초가집에서 살던 제주의 대부분의 민가들도 죄다 쓰러지는 등 피해가 막심했지요. 난산리의 마을조사를 하였을 때, 어르신들이 그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그 태풍이 불고난 후로 새로이 집을 지을 때는 튼튼하게 지어야 하겠다는 생각들을 다들 하였고, 1970년 새마을 운동이 있기 전부터 새로이 짓는집은 흙으로 짓기보다는 외벽은 돌을 쌓고 안벽은 블록으로 쌓는 방법으로 집을 짓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원래 초가집을 지을 때는 땅의 흙을 파내어 흙질을 하고, 많은 물을 떠와야 하고, 새를 구해다고 지붕을 엮고 하는 등의 일들을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도와주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수눌음과 같은 형태의 노동력의 제공이었지요. 그런데 블록으로 집을 짓고, 슬레이트로 지붕을 얹게 되면서는 그런 일반인들이 도와줄 일이 아주 줄어들게 된거지요. 그러면서 수눌음 형태의 공동체의 협력관계가 깨어지게 됩니다. 집을 짓는 과정에서도 사회적 관계와 기술적인 관계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거기에서 살고 있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매우 중요합니다. 과거에는 개인보다는 공동체의 가치가 더욱 중요하게 여겨졌기 때문에 집들도 독특한 개성을 드러내기 보다는 서로가 비슷한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건축이 제각기 다른 디자인을 하고 있는 것은 지금 사회에서는 개인의 가치와 개성을 더욱 중시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인간에 대한 이해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것일까요? 저는 아주 학문적으로 깊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대체적으로 두가지의 관점과 그로 인한 방법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전체적인 맥락을 따져보는 태도입니다. 그것은 역사적일 수도 있고 사회적일 수도 있는데, 전체적인 공동체가 지향해온 바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인류학에서는 그것을 구조주의라는 이름으로 설명하였습니다. 전체를 오랫동안 지배해온 시스템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연구하려는 것으로, 구조주의자들은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구조체계 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건축에서는 ‘유형’과 같은 것이 그러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강원도 민가의 형태과 전라도 민가의 형태 그리고 제주민가의 형태가 다르다는 것을 비교하고 설명할 때에는 무언가 대표적인 유형을 정의하고 나서 그것을 비교하게 되지요. 그러한 비교 가능한 공통적인 속성을 유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속성 속에는 공동체의 문화와 세계관이 투영되어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개인적인 속성과 개성, 그리고 가치관을 들여다보는 태도입니다. 과거의 공동체적 가치가 중요하였던 시기에서는 건축물도 비슷 비슷하게 지어졌고, 공통적인 속성을 갖는 대표성이 있는 유형이 있어왔습니다. 그래서 신라시대의 건축물, 조선시대의 건축물을 비교하여 특징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고, 강원도의 건축물과 제주도의 건축물의 특징을 비교하여 설명할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지금은 강원도의 집과 제주도의 집을 특성을 구분하여 설명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것은 한 지역에서 공통적인 특징을 대표하여 말 할수 있는 건축의 유형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경우에 개인적인 가치를 들여다볼 수 있는 미시적인 접근 태도가 필요한데, 이를 현상학적 접근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축공간에 대한 현상학적 접근방법은 주로 C.N.슐츠의 주장이 잘 거론됩니다. 통상 장소라는 개념으로 말하기도 하는 C.N.슐츠의 현상학적인 공간해석의 방식에는 인간의 상징에 대한 이야기와 공간지도에 대한 이야기들로 설명이 됩니다. 그러한 내용은 5장에서 이미 거론하였습니다. 다만 저는 후설이 말하는 개인의 생활세계를 들여다보고 이해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상징과 같은 표현을 이해하는 방법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개인의 사고를 탐구하는 방법으로 ‘대화’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방법론이 다르겠지만, 이 두 가지의 방법은 제가 선호하는 건축설계를 위한 중요한 인문사회의 연구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대화는 개인주택을 설계할 때 중요한 설계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건축디자인을 개인의 작품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 집을 구상하기 위해서 나의 의지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집은 항상 건축주와 건축사의 공동작업입니다. 그리고 그 공동작업의 방법은 대화를 전제로 합니다.

건축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는 이들은 훌륭한 건축사는 대충 몇 평정도의 집을 원한다고만 해도 아주 훌륭하고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만들어서 보여줄 것으로 기대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렇게 훌륭한 이미지를 만들어서 사람을 감동시키는 작업을 잘 하는 건축사들도 있습니다. 어쨋거나 저는 그런 부류의 건축사는 아닌 듯 합니다. 보여줄 만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릴 뿐만 아니라, 의뢰인의 생각이 무엇인지 확신이 들지 않으면 설계를 진행하지를 못합니다.

대화가 중요한 것은 서로의 마음을 볼 수 있는 방법으로 유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마음은 귀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자꾸 무엇을 원하는지 건축사에게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합니다. 또 반대로 건축사가 자꾸 안된다고 하면 왜 안된다고 하는지를 잘 들어야 합니다. 일방적인 ‘요구’나 ‘요청’이 아니라 ‘대화’라고 말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건축사는 어떤 요구든지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신기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마 갖고 싶은 수많은 공간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대개의 경우 ‘그런 집은 제가 디자인 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야 할 것입니다. 건축사는 의뢰인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할 의무가 당연히 있지만, 건축주 역시 건축사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애정이 식어버린 연인처럼 둘 간의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차라리 감정이 상하기 전에 헤어지는 것이 바람직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대개의 성인들은 잘 이해를 합니다. 삶의 과정 속에서 이미 친구에게 배신도 당해보고, 연인과 이별도 해 보고, 낯선 이에게 모욕을 당하는 일도 겪어보았기 때문입니다. 집을 구상한다는 것이 집이라는 사물을 구상하는 것이 아니라, 의뢰인의 삶과 가치관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화들짝 놀랄 일입니다. 또한 의뢰인 역시 그냥 단순히 몇 평의 집을 디자인 해 주세요 하고 끝날 일이 아니라, 건축사의 의도와 성향을 이해하고 부단하게 대화를 통해 살고 싶은 집에 대해 말해야 한다면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도 정확한 처방이 아닌 잘못된 처방을 할 수 있는 것이 집을 디자인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정말 다 다른 형태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집을 설계하는 것이 매우 흥미로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집을 설계한다는 것은 이런 다른 삶을 만난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대개의 사람들이 자신의 살 집의 디자인을 의뢰하기 위해서 건축사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훌륭한 건축사가 훌륭한 디자인을 하리라고 기대합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살 집이 어떤 모습인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마치 환다의 고통을 잘 아는 사람은 의사가 아니라 환자 자신인 것처럼 말입니다.

정확한 의사의 처방을 원한다면 환자는 자신의 증세를 잘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자신의 고통을 알려줄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자세한 설명밖에 없습니다. 종종 의사는 환자의 통증을 이해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질문을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건축사와 의뢰인간의 대화에서도 똑 같습니다. 이러한 대화를 통해서 건축사는 의뢰인의 심성과 가족관계, 그리고 중요하게 여기는 바와 소홀히 다루어도 문제가 되지 않을 부분 등을 이해하게 됩니다. 건축사가 그것을 잘 이해하면 할수록 마치 옷을 맞추어 입은 것 처럼 정교하게 설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대화의 방법과 비슷한 것을 사회조사방법으로는 ‘인터뷰’라고 합니다. 인터뷰에 의한 조사방법은 주로 뉴스를 추적하고 사건을 밝히는 ‘기자’들이 많이 사용합니다. 하지만 인터뷰가 대화와 다른 것은 인터뷰는 정보의 수집이 일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에 비해서 대화는 정보의 수집이 양방향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정확히 구분하면 인터뷰는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고, 대화는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기사를 정리해야 하는 사람은 오로지 기자 자신이지만, 집을 설계하는 것은 건축사 혼자하는 것이 아니라, 의뢰인과 건축사가 같이 해야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의뢰인은 정보 제공자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설계에 직접 관여하는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대화를 통해서 건축사가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단순히 의뢰인이 좋아하는 디자인, 성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화 속에서는 개인만이 갖고 있는 가치와 철학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 있습니다. 그러면 집을 구상하기 위해서는 철학과 가치관이 바로 서야 한다는 말인가요? 맞습니다. 좀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좋은 집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삶과 인생에 대한 진지한 대화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층 위

내용

문제의식

분야

표 층

What?

어떤 집이 필요한가?

건축사

중간층

방법론

How?

어떻게 사는가?

부모, 선생

기 층

철학, 가치관

Why?

왜 사는가?

성인, 철인

저는 그런 수준이 되지는 못하지만, 어찌되었건 집의 형태 속에서는 거주자의 가치와 철학이 배어져서 나오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감히 그렇게 대 놓고 말을 못하는 것은 건축사가 어찌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 디자인 할 수 있겠습니까? 어쩌면 건축사의 디자인이 북촌 한옥마을에 있는 기와집이나 성읍 민속마을에 있는 초가집을 뛰어넘지 못하는 이유가 삶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구체화하는 과정에 소홀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설계를 하면서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참으로 현대인들이 대화하는 데에 매우 익숙해 있지 않구나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대화는 자신의 주장을 상대방에게 설득하는 작업이 아닙니다. 대화는 주장을 펼치는 토론과 다르지요. 대화는 주장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픔과 애로사항을 털어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털어놓는 애로사항을 귀담아 잘 듣는 게 대화입니다.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말하는 것보다 들어주는 것입니다. 건축사에게 자기가 생각하는 멋진 집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이러 저렇게 해주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요청을 하는 것이고 주장을 하는 것이지요. 대개의 경우 건축사에게 이러저러하게 해달라고 하면서 보여주는 사진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많은 문제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뢰인의 생각을 건축사가 들어야하듯이 건축사가 의뢰인이 요청한 디자인에 대해서 문제점을 이야기를 한다면 그것을 경청하는 것이 대화의 과정이지요.

건축설계의 과정이 인문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은 그 과정 자체가 인간과 인간의 만남을 전제로 하고, 그 만남 속에서 공동작업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결코 콘크리트와 나무로 된 죽어있는 조형물을 만드는 것이 건축설계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저는 집을 구상하는데 중요한 것은 공간이 아니라, 거기에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공간의 존재 이유가 바로 그 사람 때문이거든요. 사람이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연애를 해 본 사람은 다 알지요. 너무나도 잘 알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하나도 아는 것이 없구나라고 깨닫게 되는 것이 사람 아니던가요.

 

양성필https://www.archijeju.com/
옛말에 '배는 짓고, 집은 사라'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집을 짓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집을 짓는 것은 단순히 어떤 물건 을 만드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자금이 들어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개인적인 감정과 사회적인 요구, 그 리고 법적인 규제 등 고민해야 할 문제가 많습니다. 저희는 아키제주 건축사사무소 홈페이지를 통해서 건축설계와 관련한 정보를 최대한 제공하려고 합니다. 건축설계와 관련된 궁금한점은 회원가입후 건축상담게시판에 올려주시면 답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집을 만드는데 저희 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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