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강행생 선생님
어제는 오랜만에 술 한잔을 하였습니다. 오가며 언제든지 들러서 점심을 같이 하자던 그 말씀이 왜 이제와서 자꾸 떠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 한번이라도 더 식사를 같이하고 한번이라도 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볼 것을 이제 와서 후회를 하는 제 자신이 원망스럽습니다.
선생님은 가장 건축가다운 삶을 살으셨습니다. 또 가장 제주인다운 삶을 살으셨습니다. 제주인으로서 제주건축을 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를 가장 몸소 보여주시면서 살으셨습니다. 건축이야기만 나오면 마치 먼 길을 떠났다가 돌아온 아들이 돌아온 것 같은 눈망울을 하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건축인가를 온 몸으로 이야기 하셨습니다. 이제 그 이야기를 다시 들을 수 없다는 생각에 저의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해지는 것은 저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제주에서 건축을 한다는 모든 이들에게는 큰 마음의 기둥을 잃었다는 슬픔을 아니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일전에 보목리의 선생님 댁을 찾아가서 건축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평소에 늘 이야기하셨던 ‘관계성의 건축’이라는 것이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그 집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까이 있는 작은 공간을 사랑하고, 평소에 살아가는 곳에서의 마당과 햇살을 손으로 쓰다듬듯이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진심으로 건축하며 살아온 선생님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단지 말로써 이야기하는 올레의 기하학적 구성이 아닌 맨살을 부딪치며 온 몸으로 느끼어서 본인과 하나가 되어버린 올렛길의 이야기를 하면서 어린아이처럼 들떠 있는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건축을 사랑하고 건축함을 사랑하는 모습을 늘 몸소 보여주셨던 선생님의 건축은 본인의 성품을 그대로 닮아있었습니다. 늘 민가와 제주건축에 대한 애착을 보여주셨던 선생님의 건축을 한번은 ‘파랑새건축론’으로 말씀해주셨습니다. 건축 이상의 건축을 이야기하셨던 선생님의 건축은 아마도 보목리의 편안함을 건축공간으로 옮겨놓고 싶었던 꿈은 아니었는가 생각을 해 봅니다.
누구나 만남과 헤어짐이 있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런 이별 통보에 잠을 설치고 나니 너무나 큰 과제를 우리에게 남겨두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 무거운 짐을 어떻게 짊어지고 가야 할지 걱정이 막막합니다. 선생님께서 보여주셨던 건축가로서의 모습이 너무나도 크고 웅대한 것이어서 그 이상에 부끄럽지 않은 제자가 되기 위해서, 또한 후배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당황스럽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선생님이 남겨주신 진정성 있는 건축가로서의 삶이라는 과제가 저희들에게는 큰 힘이 되어줄 것입니다.
선생님, 이제 이별이 시간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마치 파랑새처럼 이곳으로 와서 건축가로서의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고는 새로운 곳으로 떠나셨습니다. 저희도 부끄럽지 않은 후배가 되겠다는 약속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작은 제주에서 큰 이상을 꿈 꾸었던 선생님의 삶이 아주 훌륭하였고 아름다웠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운 선생님.
선생님과의 인연을 마무리해야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너무 늦게 찾아온 저희를 용서해주십시오. 그리고 너무도 감사합니다. 이별의 슬픔은 짧게하고 남겨진 추억은 길게 간직하겠습니다. 이제 선생님께서도 편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오셨던 그곳으로 돌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