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중섭

아.. 이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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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귀포는 원래는 제주에서 그리 주목받지 못하는 작은 어촌 마을에 불과하였다. 서귀포에 사람들이 많이 살고 발전하게 된것은 강점기를 통해 일본인들이 고래공장과 전분공장 등을 세우고 일인들이 드나들면서 마을이 점차 커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항구도시로는 모슬포와 한림이 그러한 예일 것이다.
. 한국 근대화단의 거장인 이중섭이 서귀포에 온 것도 한국전쟁중에 피난오게 된 것이었다. 지금 복원한 이중섭생가는 이중섭이 살았었다는 이유로 박물관과 더불어 서귀포를 특화시키는 과정에서 오광협 전시장의 착안으로 생가를 복원하게 된것이다.
. 그런 이유에서일까, 이중섭생가는 이중섭이라는 작가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고증없이 만들어진 초가라는 이야기가 돌기도 하였다. 그런 이유가 있다. 이중섭생가의 좌측에 보이는 정지의 입구와 우측에 보이는 이중섭이 사용했다는 굴묵의 입구가 거의 같은 크기로 보이기도 하거니와 거의 한칸의 크기를 차지한다. 전면에서 기둥칸을 세어보면 다섯칸의 살림집인 것이다.
. 제주살림집에서 다섯칸의 형식은 매우 드믄 특수한 형태에 속한다. 게다가 하필 이중섭이 살았다는 살림집을 복원한 것이 다섯칸이라고 하니, 잘못된 복원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게다가 유감스럽지만, 복원전 가옥에 대한 실측자료가 없이 정비를 해 놓았으니, 그런 오해는 당연한 것이다.
. 이중섭생가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던 원 주인과 인터뷰를 하면서, 나의 어린시절에 살았던 살림집이 생각이 났다. 서귀포에서 작지않은 규모의 살림집이었는데, 역시 나무가지로 밥을 해먹던 정지와 마루가 깔린 상방이 있는 전통적 느낌의 살림집이었다. 잠시 빌어살았던 그 집 지붕이 초가였는지 기와였는지 슬레트였는지조차 희미하지만, 분명한것은 그 집도 양쪽으로 정지가 번듯하게 있는 집이었다. 정지-방-상방-방-정지 의 구성을 하고 있는 분명한 다섯칸의 공간구조를 갖고 있는 집이였고, 양쪽 정지가 다 앞으로 출입하는 정지였다.
. 이중섭생가를 다녀오고나서 어머니에게 궁금한 것을 여쭤보았더니, 어머니의 이야기도 우리가 살던집이 정지가 양쪽으로 있는 집이었고, 서귀포에는 외지에서 와서 집을 빌어사는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 일부러 두살림이 가능한 구조로 집을 짓는 경우들이 있었다고 하는 것이었다.
. 이중섭생가는 1948년에 지었다고 한다. 당시 초가로 지은 집이고, 새마을운동 당시에 슬레이트로 지붕개량을 하고 살기는 하였으나, 집의 규모가 늘거나 달라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아마 맞을 것이다. 그것은 내부의 부재를 확인해보면 알 수 있다.
. 중요한 것은 살림집의 중요한 변형이 외부의 건축양식이 아니라, 내부적인 필요 즉 사회적인 요구에 의해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아, 안타깝게도 발빠른 서귀포에서는 이제 초가라고 할 수 있는 민가가 없다. 이중섭가옥을 제외하고 단 한채만 남아있다. 서귀포의 근대적 변화를 이야기할 수 있는 건축물이 벌써 거의 사라졌다는 것이다. 가장 변화의 몸살을 심하게 앓았던 서귀포, 그 흔적을 찾기가 너무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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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이중섭생가의 초가집이었을 당시의 사진.
. 양쪽 정지를 제외한 가운데의 세칸을 느낄 수 있다.

아키제주/ 제주건축/ Archijeju Architects / Archi-Je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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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 Je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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