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설계방법론으로의 대화

08. 설계방법론으로의 대화 ‘less is more’는 위대한 근대건축가인 미스반데로에가 자신의 건축디자인을 설명하기위해서 했던 말입니다. 가변적인 공간개념으로 유명한 그는 형태뿐 아니라 공간을 구상함에 있어서도 많은 것을 넣으려 하기 보다는 함축적인 디자인을 추구하였고 공간을 다양한 기능으로 세분하려 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하나의 공간에 담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미스의 선언은 장식이 하나도 없이 간결한 그의 디자인을 설명하는 아주 적절한 표현으로도 알려져 있지요.
포스터모던 건축가로 알려진 로버트 벤추리는 미스의 선언에 대응하여 ‘less is bore’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미스반데로에 뿐만 아니라 근대건축가들이 추구 해온 장식 없는 모던한 디자인이 재미도 없고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식의 비판을 하기위한 말이었지요. 자신의 디자인과 철학을 이렇게 하나의 명쾌한 선언으로 설명 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입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건축이 무엇인지 이렇게 선언적으로 말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리고 그게 건축을 설명하는 올바른 태도일까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건축사의 작품도 그게 자신의 집은 아니지요. 그런데 건축사가 일방적으로 이게 좋다 저게 좋다하고 선언적으로 말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나요? 흔히 하는 말로 ‘내 집 갖고 네가 왜 그래?’라고 의뢰인은 말 할 수도 있어요. 그렇습니다. 사람마다 다 취향이 다르듯이 건축사도 의뢰인도 제각기의 취향이 다른 사람이지요. 건축사와 의뢰인의 취향이 다르다는 것은 앞으로의 문제를 풀어나갈 가장 큰 난관입니다.
이 난관을 풀어나갈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의뢰인이 자신과 취향이 비슷한 건축사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건축사가 자신의 취향과 비슷한 의뢰인을 찾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집안을 고풍한 장식으로 꾸미기를 원하는 의뢰인이 미스반데로에와 같이 모던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건축사를 만나면 자신이 원하는 집을 요구하기가 얼마나 어렵겠어요. 반대로 말끔한 모던디자인을 선호하는 사람이 로버트벤추리와 같이 장식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건축사를 찾아가도 힘이 들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자기가 어떤 디자인을 추구하는지를 공개하는 것은 건축사의 최소한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건축사의 능력도 소비자를 기다리는 하나의 상품이니까요. 건축사를 선택할 의뢰인은 건축사가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집을 잘 디자인 할 수 있을지를 알 수 있어야 하니까요. 어쩌면 집을 지을 때 의뢰인이 해야 할 일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자기 집을 같이 고민하고 구상하여 줄 건축사를 선택하는 일이 아닐까요.
물론 디자인이 훌륭한 건축사를 선택하였다고 해도 모든 문제가 저절로 다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건축사는 의뢰인의 생각이 좋은 집을 짓는데 적절한 것이었는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아무리 의뢰인이 정말 좋은 집을 갖고 싶어서 오랫동안 자기 집에 대해 고민을 하였다고 해도 몇 십 년을 공간계획을 하는 것을 직업으로 해온 건축사처럼 생각을 구체화하는데 익숙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도면을 그리는 기술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구체적인 사물로 그려내기 위해선 단순히 도면을 그리는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생각을 합리적으로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햇빛이 잘 들고 전망이 좋은 화장실을 갖고 싶다고 했는데 설계를 하면서 다른 공간을 배치하다보면 정작 화장실은 외기에 조차 면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어떤 꿈을 포기하고 어떤 꿈을 유지할 것인가를 판단해야 합니다. 건축사는 도면으로 그려가면서 그 꿈을 성취거나 혹은 포기해야만 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게 됩니다.
그럼 건축설계를 선언적으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조금은 이해 하셨는지요. 물론 디자인에 대한 중요한 가치는 있습니다. 저도 아주 싫어하는 디자인과 해보고 싶은 디자인이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좋은 집은 건축사의 취향이나 의뢰인의 결정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좋은 집을 디자인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건축사의 훌륭한 철학과 일방적인 선언과 같은 것이 아니라, 의뢰인과 건축사간의 진솔한 대화입니다.
그런데 선언은 지향하는 바와 답이 있지만 대화는 정해놓은 답이 없지요. 지루하지만 답이 나올 때 까지 대화하는 것, 저는 그게 가장 좋은 설계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때로는 장식이 없는 모던한 집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이런 저런 장식이 붙은 고전적인 집이 되기도 하지요. 의뢰인과 건축사가 대화하는 과정 속에서 둘 다 예상치 못했던 결과가 나오기도 합니다. 건축물이 예술작품이라고 한다면 이렇게 해서 탄생한 건축물은 누구의 작품일까요. 글쎄요. 누구의 작품이라는 게 중요할까요. 정말 내가 살 집이 예술작품이 되는 게 중요한 걸까요. 집이라는 것은 작가에 의해서 창작되는 것이 아니라 건축주와 의뢰인 사이의 대화 속에서 스스로 태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저는 건축을 통해서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냥 좋은 집을 짓고 싶어요. 좋은 집이 될 수 있다면 남의 생각을 빌리기도 하고 의뢰인의 생각을 엿보기도 하고 과거의 지혜를 탐닉할 수도 있어요. 예술작업에는 독창적이어야 하는 것이 필수적이지만, 좋은 집을 짓기 위해서 반드시 독창적이라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삼을 필요는 없어요. 저는 세계의 아름다운 도시들이 비슷한 집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독창적인 건축물로 가득해서 혼란스러워져 버린 서울이나 헤이리 같은 도시보다는 베니스와 로마 같은 도시가 더 아름답고 양동마을이 더 편안했습니다. 그럴 때면 건축에서 독창적이고 뛰어난 작품이라는 것이 좋은 건축의 필수조건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의뢰인 역시 훌륭한 건축사를 만나서 설계를 의뢰하였다고 그냥 방치하면 안 되겠지요. 저는 설계를 건축사와 같이 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집을 정리해서 요구를 해보기도 하고 갖고 싶은 집의 이미지도 찾아가면서 건축사와 같이 설계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건축사와 진지한 대화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인터넷에서 제공하고 있는 표면적이고 시각적인 건축 이야기에서 멈추지 말고 정말 갖고 싶은 집에 대해서 건축사와 대화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건축사도 추구해야 하고 고민해야 할 조건이 분명할 때 의뢰인이 원하는 좋은 집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래도 건축설계를 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건축법을 어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것도 당연히 건축사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지만 그래도 건축사라는 직업의 주 업무는 행복을 디자인하는 게 맞으니까요. 물론 행복이라는 것이 집을 잘 설계하고 또 그런 집을 갖는다고 해서 보장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안방과 화장실과 마당과 서재를 그릴 때는 그 안에서 이루어질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미소를 짓게 되는 것이 당연하지요.
그런 즐거운 일을 하면서도 가끔은 의뢰인과 건축사가 의견 충돌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치 어린아이 둘이서 같이 블럭쌓기 놀이를 하다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쌓지를 않는다고 서로 투정부리듯이 말이지요. 그럴 때 어른들은 서로 양보하면 싸울 일이 없을 거라고 말을 하시지요. 하지만 세상일들이 그렇게 양보가 쉽나요. 설계하는 과정에서의 양보도 그렇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닙니다. 의뢰인과 건축사는 설계를 하는 과정에서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의 정당성은 너무도 분명하고 확고한 것이어서 그 시시비비를 가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런 갈등이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당사자들도 그 옳고 그름의 판단이 애매하기도 합니다.
저는 그것을 ‘소유권’과 ‘저작권’의 갈등이라고 생각 해 봅니다. 물론 저는 그 갈등의 법적인 해석이 어떻게 되는지를 따지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문제는 법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사실은 도덕적인 문제에 더 가깝습니다. 그 이유는 조금 나중에 제 생각을 말씀드리지요. 이 갈등의 본질에는 건축물의 형태와 공간을 구상하고 디자인한 것은 건축사이므로 이 건축물의 디자인에 대해서는 남이 함부로 손대서는 안된다는 건축사의 주장과 자기가 원하는 건축물을 디자인해 달라고 적절한 대가를 주고 일을 시킨 것인데, 그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의뢰인의 마음에 들게 고쳐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는 의뢰인의 주장이 있습니다. 두 입장은 제각기 정당성을 가지고 있는 주장이어서 대립상황이 심각한 수준일 때에는 정말 법정으로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먼저 건축사의 저작권에 관한 입장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건축사가 저작권을 주장하며 소송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건축디자인이 건축사의 창작활동에 의한 저작물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훼손한 것에 대해서 소송으로 대개 이어지지 않는 것은 제품디자인처럼 반복해서 디자인을 재생산하고 그 이득을 취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건축물의 디자인을 반복해서 재생산하고 그에 대한 저작권을 건축사에게 지급하여 준 예는 시저펠리가 설계한 교보빌딩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입니다. 교보생명에서는 서울의 교보빌딩을 설계한 시저페리에게 지방에 유사하게 생긴 교보생명 사옥을 지을 때마다 도면을 국내의 설계사무소가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설계의 저작권 비용을 시저페리에게 지급하였다고 합니다. 정말 흔치 않은 경우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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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앞 교보빌딩은 전국에 세워지는 교보지점 건물의 모델로 삼아 유사한 디자인의 건물을 양산하였다.
저작권이라는 것은 창작물의 독창적인 부분을 그 작가의 고유한 무형의 지적소유물이라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제주도의 모 기업에서도 일본의 구마겐코라는 유명 건축가의 설계도면이 공사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이유로 변경을 요구하였더니, ‘변경하는 것은 좋지만, 그럴 경우에는 제가 설계한 작품이라는 타이틀을 빼 주기 바랍니다.’라는 답변을 듣고, 변경을 하지 않고 그대로 진행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건축사에게는 흐믓한 미담이겠지요? 하지만 건축사가 열심히 디자인한 것을 의뢰인이 공사하는 중간에 마음대로 바꾸어서 속상했다는 이야기와 설계하는 과정에서 의뢰인이 자기 맘에 들지 않는다고 이리 저리 바꿔달라고 해서 마지못해 맘에 들지는 않지만 디자인을 바꿀 수 밖에 없었다는 푸념을 심심찮게 듣게 됩니다. 의뢰인과 건축사간의 의견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지요. 귓속에서 이런 말이 들리는 듯 합니다. ‘당신이 구마겐코야?’
하지만 의뢰인도 설계를 요청할 때 저작권과 관련해서 꼭 주의해야 할 점이 있어요. 아무리 마음에 드는 집이라고 해도, ‘이 집과 똑 같이 설계해주세요.’라는 요청은 위험하다는 것이지요. 그게 그 집을 설계한 건축사나 그 집을 모사해서 디자인하는 건축사에게나 심각한 문제를 유발 할 수 있는 요청이라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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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문제로 디자인 카피 의혹을 제기했다는 두 건물. 위 건축물의 건축주는 아래의 건물을 보고 카피한 것이 아니라 외장재의 홍보자료를 보고 제품의 가능한 패턴의 한가지로 이해했다고 설명하였다 한다. 디자인을 참고한 것과 카피한 것은 저작권문제에서 다른 결과가 나오지만, 작가를 오해하게 만드는 행위는 건축사에게도 심적 상처를 준다.

한라일보, 2014년 8월 5일 기사 참고.
참고하는 것과 똑 같이 베끼는 것과는 다른 것이니까요. 물론 남의 집과 똑 같은 집을 짓기를 원하는 경우가 매우 드믄 일이어서 크게 문제되는 경우가 없었지만 아주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법적인 문제보다도 저작권과 관련해서는 설계자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힐 수 있는 문제라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건축사의 창작노력에 대한 배려는 문화적 삶을 중시하는 현대사회에서는 기본적인 소양이 아닐까요.
통상 음악과 미술 같은 예술분야에서는 이 저작권이라는 것이 중요하게 다루어지지만 건축에서는 아직 저작권이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되진 않았습니다. 저는 저작권에 대한 법적인 것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창작활동에 대한 의뢰인의 배려와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비슷하게 생긴 많은 건축물들이 있지만 결코 똑 같은 건축물은 없습니다. 마치 사람들이 비슷하게 생겼어도 똑 같이 생긴 사람이 없듯이 말이지요. 건축물을 디자인하는 건축사의 작업은 그야말로 머리를 쥐어짜는 산고의 고통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이 고통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그 디자인에 애착을 가지게 되는 이유가 되며 의뢰인이 디자인을 변경하고자 할 때 의견 충돌이 일어나는 이유라고 생각이 들어요. 이러한 과정이 없이 건축사의 도면이라는 것이 기계적으로 그린 것에 불과하다면 의뢰인의 요구에도 아무런 미련 없이 디자인을 변경할 수도 있겠지요. 어쩌면 의뢰인과 디자인 때문에 의견충돌을 자꾸 하는 건축사는 그 만큼 그 건축물이 잘 지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러면 의뢰인의 입장에서 건축설계를 바라볼까요. 건축사가 자기 디자인을 유지하지 않는다는 푸념을 하거나 혹은 왜 허락 없이 자기 디자인을 바꾸려고 하느냐는 항의가 의뢰인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이상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살 집을 자기 맘에 들도록 설계해 달라는데 건축사가 왜 된다 안된다 그러면서 속상해하고 따질 일이 무어 있냐고 생각하게 됩니다. 마트에 물건을 사러갔는데, 내가 맘에 들어서 고른 물건을 마트 사장이 ‘그건 안 좋으니 이걸 쓰세요.’라고 하면서 다른 물건을 사라고 강요한다면 기분이 퍽 상하겠지요. 마치 소비자의 선택권을 침해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입니다.
저도 최근에 의뢰인으로 부터 이런 항변을 들었습니다. 의뢰인이 원하는 디자인이 제 맘에 영 내키지 않는다고 하였더니, ‘이게 잘 못 돼도 제가 잘못 한 거고, 손해를 봐도 제가 손해를 보는데, 건축사님이 왜 이렇게 하면 안된다고 합니까?’라고 의뢰인이 화를 내었습니다. 맞는 말이지요. 돈이 들어도 의뢰인의 돈이 들 것이고, 불편해도 의뢰인이 불편할 것이고, 집이 무너져도 일차적으로는 의뢰인이 피해를 보게 되니까요. 바로 그 점 때문에 건축사는 의뢰인의 요구를 거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제가 건축사는 좋은 집을 설계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집을 지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의뢰인이 설계에 참여를 해야 하고, 좋은 집을 갖기 위해서 의뢰인도 어느 정도 건축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알아서 다 해주세요.’라고 하는 것은 건축사들이 좋아하는 의뢰인의 모습일지 모르지만, 글쎄요 그렇게 건축사인 저를 믿을 수 있을까요. 건축사의 창작의지와 실력을 존중해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어떤 의뢰인도 결국에는 자신의 맘에 들지 않은 건축물의 디자인을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그 건축물에서 평생 살아가야 할 사람은 건축사가 아니라 의뢰인 자신이기 때문이지요. 아무리 건축사가 좋은 집을 디자인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해도 결국 그 집에서 살아야 할 것은 자기 자신과 자신들의 가족이기 때문에 의뢰인 역시 자신의 바램을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건축사가 디자인하고자 하는 집의 형태가 의뢰인의 마음에 꼭 들었다면 가장 좋은 상황이겠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의뢰인도 건축사도 다 저마다 추구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지요. 의뢰인은 내가 살 집이니까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기를 바라게 되고, 건축사는 내가 디자인하는 것이니까 내 디자인 의도를 받아주기를 바라게 됩니다. 둘 다 이유가 있는 주장이지요. 여기서 건축사는 작가로서의 권리를, 의뢰인은 소유자 혹은 사용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지요.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일까. 둘 다 중요합니다. 사실 건축설계가 건축사와 의뢰인이 다 함께 만족하는 결과물이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상식적인 요청입니다. 건축사는 의뢰인이 평생토록 살 집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디자인에 반영하도록 애를 쓰는 것이 필요하고 의뢰인은 건축디자인이 건축사의 전문적인 지식과 철학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을 이해해 주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건축설계라는 것은 의뢰인과 건축사의 공동작업 이라는 것이지요.
그렇게 제각기 권리를 주장할 때 우리는 반드시 법정으로 가서 시시비비를 가려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필요도 거의 없구요. 사실 그런 다툼이 싫어서 어느 한쪽이 자신의 의견과 소신을 굽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건축사들끼리의 모임에서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많은 이들이 의뢰인의 요구에 의해서 자신이 생각을 포기하여야 했던 경우를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서로 의견이 상충될 때 서로의 생각을 설득하지 못하고 상대방의 생각을 포기하도록 하는 것은 결코 좋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좋은 집을 만드는 과정은 서로의 좋은 생각을 취해서 더 나은 결론으로 유도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몇 해 전인가 단독주택을 설계 할 때 였습니다. 외관 협의가 거의 마무리 된 상태에서 그에 따른 창호도를 그려서 의뢰인에게 보여줬습니다. 3일정도 지나서 의뢰인에게서 팩스가 왔습니다. 팩스에는 창문의 크기와 위치를 50 밀리미터 혹은 100밀리미터 정도를 높이거나 낮추어 달라고 표시가 돼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순간적으로 매우 화가 났습니다. 왜냐하면 창문의 크기를 정할 때에 저는 외벽의 돌나누기 형태와 맞추어보려고 치수를 정한 것 이었거든요. 저는 전화를 걸어서 의뢰인에게 이렇게 작은 치수까지 바꾸어가면서 일방적으로 도면을 고쳐달라는 것에 대해 화를 내었습니다. 창문의 크기를 조정하는 수정작업이 귀찮아서가 아니라 그렇게 조절하였을 경우에 외벽의 돌나누기 선들이 창문의 크기와 맞지 않는 것을 해결할 방법이 없어서였습니다. 게다가 고심하여 정한 창호의 크기를 이유를 말하지 않고 변경해달라고 통보받은 것이 불쾌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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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호의 높이를 조절해달라고하면서 외벽 돌나누기와 창호의 규격이 맞지 않게 되었다. 어떤 판단이 합리적인지를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부끄러운 태도였지요. 그때 의뢰인은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창문과 비교하면서 제가 그린 도면의 창문을 따져보니 그렇게 고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당연히 건축주는 그게 외관상에 어떤 문제를 야기하는지 확인할 수는 없었겠지요. 저는 문득 화를 내고 있는 제가 참 한심스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과를 하고 제가 화를 낸 이유를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외벽의 돌나누기도의 선과 창문의 윤곽선이 일치되지 않게 되는데 괜찮겠느냐고 물었지요. 의뢰인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창문을 조정해달라고 하면서 외벽 돌나누기선과 창문이 맞지 않는 것은 감수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화를 낸 것에 대해서는 ‘전문가는 화를 내도된다.’고 말을 했습니다. 제 의견이 받아들여지진 않았지만 저의 무례한 행동을 전문가의 의견으로 받아준 답변이 고마웠습니다.
이렇게 건축사와 의뢰인의 의견이 부딪힐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매사를 싸워서 이겨야 한다고 하면 얼마나 삶이 피곤하겠어요. 요새는 건축디자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매우 구체적으로 그려오는 의뢰인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것을 그려보라고 요청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그런 것을 요청하는 것은 의뢰인이 그리는 대로 도면화해서 설계하겠다는 것은 또한 아닙니다. 의뢰인으로 하여금 원하는 집의 그림이나 생각을 적어달라고 하는 것은 대화의 시작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의견이 상충될 때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화’입니다. 제게 있어서 대화는 곧 설계방법이기도 합니다. 건축사만의 생각으로 혹은 의뢰인만의 생각으로 진행 되어진 디자인은 결코 만족스러운 좋은 집이 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조금 자기 반성적인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대화와 토론을 하는 데에 매우 익숙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상대방이 무슨 생각으로 저런 주장을 하는지 조금만 더 들여다보고 입장을 바꿔가면서 생각하고 의견을 제시 하는 데에 매우 어색한 듯 합니다. 그러는 것 만으로도 훨씬 부드럽게 일을 진행할 수 있을텐데 말이지요. 좋은 집을 만들어보자는 목표지점은 같은데 서로 다투면서 힘들어 할 필요는 없겠지요. 설계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설계방법론으로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건축사와 의뢰인은 공감할 필요가 있어요. 마치 한 배에서 노를 나누어 저을 때에 혼자 열심히 하는 것보다 옆에서 젓는 속도에 맞추어 노를 젓는 것이 배를 빠르고 정확하게 진행시키는 방법이듯이 말이지요.
건축사와 의뢰인 간의 신뢰와 존중은 좋은 집을 만들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입니다. 어떤 집을 원하시는 가요? 전망이 좋은 집, 따뜻한 분위기의 집, 조용히 독서를 즐길 수 있는 집, 거실에서 하늘이 보이는 집, 공사비가 적은 집, 에너지 소비가 적은 집 등 등 어떤 점이 고민인가요? 물론 인터넷을 통해 이러한 고민에 대해 해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보가 너무 많을 때는 또 그것을 현명하게 선택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요. 건축사는 이러한 선택을 신중하고 현명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좋은 주택 샘플을 들고 왔을 때 건축사가 그 집이 의뢰인이 원하는 집으로서 손색이 없는지 판단해주고 수긍을 하는 것도 건축사의 업무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건축사가 인터넷자료를 보고 수긍하는 경우가 흔치 않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립니다. 뭐든지 물어만 보면 다 가르쳐 줄 것 같은 인터넷 정보에도 답변을 들을 수 없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저는 집을 지으려는 분들에게 그 점 때문에 인터넷정보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접으라고 하고 싶습니다. 이를테면 마치 아이스크림 맛과 같은 것은 인터넷 정보로 알 수 없습니다. 사진으로 아이스크림의 형태는 알려줄 수 있지만 그 맛을 전해주는 방법을 인터넷은 모릅니다. 아이스크림을 먹고는 ‘정말 맛있어요! 입에 살살 녹아요!’ 하는 글들이 그 아이스크림 맛을 전해주지는 않습니다. 먹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아이스크림의 맛. 그것을 인터넷으로는 아직 확인 할 수 없습니다.
대개의 많은 분들이 인터넷을 통해 얻은 사진자료가 그 집을 알려주는 모든 정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집이라는 것은 매우 복잡해서 사진과 평면으로는 알 수 없는 내용이 매우 많습니다. 마치 아이스크림의 맛처럼 말이지요. 집은 결코 사진을 찍기 위한 배경으로 짓는 것이 아닙니다. 대개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행복하고 아름다울 것 같은 집들의 모습에는 수 많은 연출이 있을 것이며 마치 아름다운 신혼처럼 준공 후 1년이 채 안된 아름다운 시절의 사진을 담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좋은 것은 너무나 많이 유포되는 반면 부정적인 것은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집은 개인적 삶의 보금자리이며 그것은 일방적으로 제공되는 보편적인 정보로는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보편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평면이나 형태라는 것이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생각이나 취미나 체격이나 가족구성 등이 다 다르듯이 그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집이라는 것이 같을 수는 없는 것이지요. 종종 제가 설계했는데도 정작 저는 마음에 안드는 데 의뢰인은 매우 만족스러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와 의뢰인의 취향과 추구하는 바가 다른 것이지요. 그런데 막상 그 집을 준공 후에 찾아가 보면 그때서야 의뢰인이 원했던 게 무엇이었는지 눈에 들어오기도 합니다. 건축사라고 해서 자기가 그린 모든 공간을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의뢰인이 가지고 있는 개성과 취향을 다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다만 귀를 기울이고 이해해 보려고 매번 노력을 할 따름입니다.
좋은 집이 갖추어야 할 안락함 편안함 즐거움 그런 것들을 인터넷에 떠도는 예쁜 집의 사진으로 확인하고 옮겨 놓을 수 있을까요. 저는 아무리 좋은 레시피를 구한다고 해도 손맛과 입맛이 제각기 다른 이유로 인해서 집집마다 다른 맛을 추구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집을 지어서 내다 팔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과 가족이 살 집을 원하신다면 이제 컴퓨터에게 좋은 집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지 말고 건축사에게 도움을 청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스스로 설계하겠다고 다짐하시기 바랍니다. 의뢰인이 스스로 설계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그것을 건축사가 도와준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 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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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필https://www.archijeju.com/
옛말에 '배는 짓고, 집은 사라'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집을 짓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집을 짓는 것은 단순히 어떤 물건 을 만드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자금이 들어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개인적인 감정과 사회적인 요구, 그 리고 법적인 규제 등 고민해야 할 문제가 많습니다. 저희는 아키제주 건축사사무소 홈페이지를 통해서 건축설계와 관련한 정보를 최대한 제공하려고 합니다. 건축설계와 관련된 궁금한점은 회원가입후 건축상담게시판에 올려주시면 답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집을 만드는데 저희 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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