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s is more’는 위대한 근대건축가인 미스 반 데 로에가 자신의 건축디자인을 설명하기 위해서 말했던 짧은 경구이다. 가변적인 공간개념으로 유명한 그는 형태뿐 아니라 공간을 구상함에 있어서도 많은 것을 넣으려 하기보다는 함축적인 디자인을 추구하였고 공간을 다양한 기능으로 세분하려 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하나의 공간에 담으려고 하였다. 그의 선언적인 이 말은 장식없이 간결한 그의 디자인을 설명하는 아주 적절한 표현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렇듯 근대의 건축사들은 어떤 건축을 지향함이 바람직한가하는 것을 두고 많은 고민과 토론을 하여왔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이런 의문이 들었다. 건축이 무엇인지 이렇게 선언적으로 말하는 것이 건축을 설명하는 올바른 태도일까 하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건축사라고 하더라도 그는 본인의 건축물을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건축사가 일방적으로 건축이 이래야 한다 저래야한다 하고 선언적으로 정의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 않은가. 건축이라는 것을 건축사의 작품이 아니라 건축사와 건축주의 공동의 작품이라고 인식하는 순간 이런 선언적인 태도가 건축물을 구상하는데 얼마나 방해가 되는 독선적인 태도인지를 알게된다.
부르노제비는 근대건축가의 이러한 태도를 독선적인 군대식 태도라고 규정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주를 건축설계의 주체적인 위치로 끌어올리는 데 건축설계자들은 매우 인색하여왔다. 건축설계는 오로지 전문교육을 받은 그들만이 해야하는 것으로 방어막을 쳐 온 것이다.
시대는 많이 바뀌었다. 이제 건축설계가 건축사만의 불가침적인 영역이라고 하기에는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 만약 건축사가 내 마음대로 설계할테니 건축주는 그저 설계비만 주면 된다는 식으로 말을 한다면 아무도 그에게 설계를 해 달라고 요청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사회에서는 ‘내 집 갖고 네가 왜 그래?’라고 열심히 설계하고 있는 건축사에게 따지듯이 물을지도 모른다. 사실 디자인에 대한 욕구는 건축사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심성이다. 건축주 역시 자신의 집을 자기가 디자인하고 싶다는 욕망을 갖게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설계자와 시공자의 영역은 점점 더 명확히 분리되고 있으나 설계자와 건축주의 영역은 오히려 점점 그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건축주의 입장에서는 건축사의 미적취향, 즉 건축철학이 자신과 맞지 않다고 여겨질 때 참으로 곤란하게 된다. 직접 설계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건축사에게 쉽게 그 불만을 쉽게 털어놓지도 못할 것이다. 이 난관을 풀어나갈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애초에 건축주가 자신과 미적 취향과 건축철학이 맞는 건축사를 찾아서 디자인을 의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떻게 건축주가 갑자기 자기와 잘 맞을 것 같은 건축사를 찾는단 말인가. 그렇다고 집 지을때를 대비해 미리 건축공부도 하고 건축사를 검색하고 다닐 수도 없지 않은가.
건축주가 자기에게 필요한 건축사를 찾기가 어려운 점이 안타까운 것은 건축사도 마찬가지이다. 건축사도 자신의 디자인을 건축주가 이해하고 동조해줄 때 더 훌륭한 디자인을 완성할 수 있다. 건축사도 건축주의 선택을 기다려야 하는 하나의 상품과 같은 존재이다. 이런 이유로 건축사는 자기가 어떤 디자인을 추구하는지를 어떤 방식으로든 공개하는 것은 의무이기도 하다. 건축전시회 등을 통해 건축사가 자기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 스스로를 알리는 방법으로 유용할 것이다. 건축전시회를 통해서 건축주도 자기의 취향에 어울리는 건축사를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건축사를 선택함에 있어서 미적취향에 공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할 부분은 소위 말이 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이 통한다는 것은 대화가 잘 된다는 의미이다. 일방적인 선언과 질문과 답을 주고받는 대화는 그 지향하는 바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좋은 집은 건축사의 취향이나 의뢰인의 판단만으로 일방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좋은 집을 디자인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건축사의 훌륭한 철학과 일방적인 선언과 같은 것이 아니라 의뢰인과 건축사간의 진솔한 대화이다.
선언은 지향하는 바와 답이 있지만 대화에서는 답을 미리 정해놓지 않는다는 점에서 큰 개념적 차이가 있다. 대화의 과정은 결론이 쉽게 도출되지 않아서 매우 지루할 수 있지만 적절한 대안이 나올 때 까지 꾸준히 대화하는 것만큼 좋은 설계방법이 아직은 없다고 믿는다.
대화는 그 결론을 미리 지어놓고 하는 것이 아니다. 대화의 과정을 통해서 때로는 장식이 없는 현대적인 집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이런저런 장식이 붙은 고전적인 집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건축주는 아무리 훌륭한 건축사를 만나서 설계를 의뢰하였다고 해도 그냥 설계과정을 방치하면 안 될 것이다. 건축물의 설계를 건축사와 같이 해 보시기를 권한다. 그냥 맡겨서도 안 될 일이고, 혼자만의 고집을 건축사에게 강요를 해서도 안 될 일이다. 정말 갖고 싶은 집에 대해서는 건축사와 꾸준히 대화를 해 보기 바란다. 사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는 대화하는 문화에 익숙치 않다. 그래서 대화의 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점을 미리 알고 있는 것이 좋겠다.
건축주와 건축사는 설계를 하는 동안 결코 자기 주장을 양보할 수 없는 이유를 가지고 있다. 대화를 방해하는 그 이유의 정당성은 너무도 분명하고 확고한 것이어서 그 시시비비를 가리기도 쉽지 않다. 그 갈등의 배경에는 ‘소유권’과 ‘저작권’이라는 서로 간의 권리에 있다.
이 갈등의 본질에는 건축물의 형태와 공간을 구상하고 디자인한 것은 건축사이므로 이 건축물의 디자인에 대해서는 남이 함부로 손댈 수 없다는 ‘저작권’을 주장하는 건축사의 입장과 자기가 원하는 건축물을 디자인해 달라고 적절한 대가를 주고 일을 시킨 것이므로, 그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얼마든지 고쳐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는 ‘소유권’에 근거한 의뢰인의 주장이 있다. 두 입장은 제각기 어느 정도 정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어서 대립상황이 심각 할 때에는 법적다툼으로 가기도 한다. 물론 여기서는 갈등의 법적인 해석이 어떻게 되는지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이 문제는 아직은 법보다는 도덕적인 문제에 더 가깝다.
먼저 건축사의 저작권에 관한 입장을 생각해 보자. 저작권이라는 것은 창작물의 독창적인 부분을 그 작가의 고유한 무형의 지적소유물이라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제주도의 모 기업에서도 일본의 유명 건축사의 설계도면이 공사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이유로 변경을 요구하였더니, ‘변경하는 것은 좋지만, 그럴경우에는 제가 설계한 작품이라는 타이틀을 빼 주기 바랍니다.’라는 답변을 듣고, 변경하지 못하고 그대로 진행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건축사의 입장에서는 흐믓한 미담으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건축주의 입장에서는 공사비를 절감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원래의 디자인을 고수해야 한다는 설계자의 주장이 섭섭하게 들렸을 것이다. 주변에서 공사 중에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바꾸려고 했더니 건축사가 반대해서 속상했다는 푸념을 심심찮게 듣게 된다. 그럴때는 뒤통수로 이런 말이 들리는 듯하다. ‘당신이 그렇게 대단한 건축사야?’ 하지만 건축사의 저작권을 존중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그 건축사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건축사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통상 음악과 미술 같은 순수 예술분야에서는 이 저작권이라는 것이 중요하게 다루어지지만 건축설계분야에서는 아직 저작권이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건축사의 창작활동에 대한 의뢰인의 배려와 이해가 있어야 함은 분명하다.
한편 왜 허락 없이 디자인을 바꾸려고 하느냐는 건축사의 항의가 건축주에게는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필자도 의뢰인으로부터 이런 항변을 들은 적이 있다. 의뢰인이 원하는 디자인이 필자의 마음에 영 내키지 않는다고 하였더니, ‘이게 잘 못 돼도 제가 잘 못 한 거고 손해를 봐도 제가 손해를 보는데 건축사님이 왜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합니까?’라고 하면서 화를 내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다. 돈이 들어도 의뢰인의 돈이 들 것이고 불편해도 의뢰인이 불편할 것이고 집이 무너져도 의뢰인이 피해를 볼테니까. 이런 점 때문에 건축사가 의뢰인의 요구를 거부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은 태도로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건축사가 의뢰인의 생각에 거부감을 보일 때는 그 이유를 잘 들어보기를 권한다. 좋은 건축물을 만들고 싶은 욕망은 건축주 못지않게 건축사도 가지고 있다.
건축사가 자신의 디자인에 대해서 저작권을 주장한다고 하면 그만큼 건축주의 건물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건축사의 태도를 반감으로 보지마시라. 건축주의 집에 그런 애착을 가지고 설계를 해 주었다면 그 태도를 존중해주어야 마땅하다. 건축사의 작가로서의 권리를 보호해주는 것은 건축주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한편 건축주에게도 당연히 건축물에 대한 권리가 있다. 건축사의 설계를 통해서 얻어진 살림집은 엄연히 건축주의 소유이다. 등기를 통해서 보장되는 이 권리에 대해서 의의를 제기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게다가 그 집을 평생 사용하여야 하는 이는 건축주이지 건축사가 아니다.
건축사는 엄밀하게 말하면 좋은 집을 설계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집을 구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 아무리 애착을 가지고 설계를 한다고 해도 그 집에 대해서 제3자인 것이다. 그래서 건축주는 설계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해야 하고 또 건축사로 하여금 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뢰인도 어느 정도 건축에 대한 관심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알아서 다 해주세요.’라고 하는 것은 건축사들이 좋아하는 의뢰인의 모습일지 모르지만 좋은 건축주의 태도는 아니다. 어차피 그 건축물에서 평생 살아가야 할 사람은 건축사가 아니라 의뢰인 자신이기 때문이다.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나, 식당주인은 좋은 요리사를 찾아서 주방장으로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인 역시 어느 정도 요리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식당운영이 원활하게 유지될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아무리 건축사가 좋은 집을 디자인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해도 결국 그 집에서 살아야 할 것은 자기 자신과 자신들의 가족이기 때문에 의뢰인 역시 자신의 바람을 포기할 수도 없고 당연히 그러지도 않을 것이다.
이제는 작가로서의 권리와 사용자로서의 권리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지 물어보는 것이 의미 없음을 알 것이다. 왜냐하면 그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의 작업을 완성하기 위한 욕심으로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 의견이 상충될 때 서로의 생각을 이해시키지 못하고 상대방의 생각을 포기하도록 하는 것은 결코 좋은 해결책이 아니다. 좋은 집을 만드는 과정은 서로의 좋은 생각을 취해서 더 나은 결론으로 유도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건축사와 건축주는 서로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도록 독려하고 최대한 자신의 권리를 사용하여 좋은 집이 되도록 노력하라고 격려함이 마땅하다.
최근에는 자신의 생각을 매우 구체적으로 그려오는 의뢰인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리고 필자 역시도 그런 것을 그려보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그것은 의뢰인이 그리는 대로 도면화해서 설계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건축주로 하여금 원하는 집의 그림이나 생각을 적어달라고 하는 것이 대화를 시작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의뢰인들은 건축사를 만나기 전에 주로 인터넷을 통해서 자료를 수집하고는 한다. 그러면서 내민 인터넷자료를 보고 건축사가 긍정적으로 답변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이를테면 인터넷으로는 아이스크림의 형태는 알수 있지만 그 맛을 먹어보지 않고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아이스크림을 먹고는 ‘정말 맛있어요! 입에 살살 녹아요!’ 하는 글들이 그 아이스크림 맛을 전해주지는 않는다. 먹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아이스크림의 맛처럼 건축공간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에는 많은 직접적인 경험이 필요하다.
집은 결코 사진을 찍기 위한 배경으로 짓는 것이 아니다.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행복하고 아름다울 것 같은 집들의 모습에는 수많은 연출이 있으며 마치 아름다운 신혼의 모습처럼 준공 후 채 일 년도 안 된 사진의 경우가 대부분이다. 좋아 보이는 것은 너무나 많이 유포되는 반면 이면의 부정적인 것은 잘 노출되지 않는다는 것이 인터넷 자료의 함정이다.
집은 극히 개인적인 삶의 보금자리이며 그것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인 정보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집을 지어서 내다 팔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과 가족이 살아갈 집을 원한다면 컴퓨터에게 좋은 집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지 말고 건축사에게 도움을 청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스스로 설계 해 보겠다고 다짐하기를 바란다. 스스로 설계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그것을 건축사가 도와준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면서 집을 구상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