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늘 경험하는 살림집의 경우에 사람들은 ‘집 정도야 나도 설계할 수 있지.’라고 쉽게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막상 직접 해보면 고려해야 할 변수들이 너무 많아서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된다.
필자가 건축을 배우는 학생시절 처음으로 집을 설계했던 기억이 난다. 집을 설계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자유로운 창작처럼 생각되었는데 점차 내가 살았던 집과 내가 보았던 공간에 대한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음을 알게된다. 생각외로 나의 상상력은 그리 자유롭지 않았다.
스스로 자신의 집을 설계해보라고 하면 놀랍게도 대부분이 아파트의 평면과 비슷한 그림을 그린다. 어느새 우리의 주생활의 의식 속에 아파트 평면이 자리잡고 있는 듯 하다. 그것을 깨고 특별한 주거공간을 상상해내는 것은 아무래도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아파트와 같은 공간을 가진 주택을 원한다면 그냥 아파트를 분양받으시라. 같은 비용으로 훨씬 질 좋은 마감을 누릴 수 있다.
건축사의 도움이 없이 스스로 설계를 하려는 생각은 빨리 포기하는 것이 좋다. 건축주에게 공간에 대한 상상을 직접 도면으로 표현하려고 시도하지 말라고 하고싶다. 차라리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과 건축사와의 대화를 통해서 공간에 대한 상상을 시작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만약에 본인이 원하는 집에 대한 방향을 잡기가 어렵다면 그 어려움에 대해서 건축사와 대화를 하는 것으로 시작해보자. 상상을 도면으로 그려나가는 것은 아무래도 건축사가 나을 것이다. 건축주는 건축사의 드로잉이 경직된 상상력에서 이루어지지 않도록 자극을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좋겠다.
조금은 용기가 필요한 쉽지 않은 방법이지만 지금 건축주가 살고 있는 집에 건축사를 초대하여 주거공간에 대한 토론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 이미 경험한 공간의 좋은 점과 불만을 같이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그 다음에 살고 싶은 새로운 주거공간의 모습에 대해서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건축사에게는 다양한 주거공간에 대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그 경험 속에 건축주에게 적절한 공간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즉각적으로 알 수는 없다. 건축사가 건축주의 마음속의 집을 탐구해나가야 하듯이 건축주는 건축사의 마음속에 있는 공간에 대한 경험을 끄집어내도록 자극을 주어야 한다. 상상력이 경직되지 않도록 서로가 적극적으로 자극을 주고 받는다면 자신이 상상하던 공간을 좀 더 빠르고 정확하게 구현할 수 있다.
건축주는 직접 그리는 것보다 건축사에게 그려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훨씬 쉽고 빠르다. 아마도 건축사는 그런 요청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건축사는 집을 구상하기 위해 필요한 개인정보를 물어 볼 것이다. 그 질문에 꼼꼼하게 잘 대답을 하고 있으면 점점 생각하던 집이 도면으로 옮겨지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건축사의 능력을 잘 이용하는 것이 건축주의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