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도동주택 단상

 

평소에 건축사에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았다면 우리 건축계의 논의에서 부족한 부분 중 하나로 근대화의 과정에서의 건축에 대한 일관성 있는 설명이 드물다는 것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 어떤 결말에 이르지는 않았다고 하여도 전통건축에 대한 논의는 꽤 많은 연구 성과가 누적이 되었고 70년대 이후의 현대건축에 대한 논의 역시 건축작가론을 중심으로 하여 다양하게 다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전통건축의 시기라고 하기에도 곤란하고 한국건축에 독자적인 작가활동이 이루어졌다고 하기도 어려운 일제강점기에서부터 새마을 운동이 일어난 1970년까지의 건축현상에 대해서는 아직도 쉽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삼도동 주택은 상량문이 남아있어서 건축연대를 쉽게 확인 할 수 있었는데, 상량년은 단기 4284년으로 되어있고 건축물대장과도 연대가 일치하였다. 막연하게 시기를 추정하지 않고 정확한 연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건축의 배경을 같이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지금도 최초의 준공일자를 건물에 표시하는 것은 차후의 연구자를 위해서 의미 있다 할 것이다.

비어있는 집을 실측하고 남아있는 흔적을 통하여 당시의 건축을 상상하는 것도 물론 가능하다. 하지만 삶을 담은 그릇이라는 건축을 통하여 다시 그 삶을 상상한다는 것은 국그릇을 보고 그 그릇에 담겼던 것이 된장국이었는지 김치찌개였는지를 추정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불완전한 상상보다는 직접 거주하였던 건물주를 만나서 인터뷰를 하는 것은 많은 부분에서의 오류를 줄일 수 있다. 물론 거주하였다고 해서 그 집의 모든 흔적을 이해하지는 못하며 어떤 방법도 과거의 완전한 재현은 거의 불가능하다.

사람의 마음이 아침에 다르고 저녁에 다른데 70년이 지난 과거를 어떻게 돌아볼 수 있겠는가. 간혹 돌아봄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허무함을 느낄 때도 없지는 않다. 궁금함을 해소 하려는 목적이 개인적 호기심에 불과한 것인가 자문을 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금방 헐려 버릴지도 모른다는 말에 부랴부랴 현장을 찾아가서 사진도 찍고 실측도 해보는 것은 이러한 과정이 단지 개인적인 호기심만은 아니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삼도동 주택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전에 서설이 길어졌다. 불완전하지만 그런 변명을 염두에 두고 삼도동 주택에서 무엇을 읽을 수 있는지 더듬거려보려고 한다. 현장 실측 후에 수소문하여 이 집에 거주하였던 김00(여,1965년생)씨를 만나보았다. 집에 얽혀있는 소소한 이야기까지 다 풀어가면서 기술할 수는 없지만 김00씨에 의하면 현재 집의 구조가 만들어진 것은 1970년경 대대적인 개조를 통한 것이며 처음 건축된 모습은 많이 달랐다고 하였다. 물론 김00씨 역시 당시는 너무 어린 시절이기 때문에 개조된 내용 역시 나이 많은 형제에게 물어서 확인한 내용이다. 1970년경이라면 새마을 운동이라는 대대적인 국가 개조사업이 벌어진 시기이기 때문에 이 시기의 주거환경의 의식변화를 같이 가늠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집에서 맨 처음 필자의 흥미를 끌었던 것은 집의 규모가 상당히 큼에도 불구하고 복도가 없고 마치 홀을 연결한 듯한 마루공간이 상당히 넓었다는 점이었다. 때문에 소위 청(廳)과 방(房)으로만 칸이 구성된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 궁금증은 인터뷰를 통해서 1970년 이전의 애초의 출입구가 5번과 6번 방 사이에 있었다는 점과 7번과 8번 공간이 애초에 ‘낭간’이었다는 진술을 통해서 해소가 되는 듯 했다. 구술을 바탕으로 작성된 도면이 정확한 근거가 될 수는 없지만 애초의 평면을 추정해 그려보니 ‘ㄷ’자 형태의 중정형 주택의 평면에 가까웠다. 물론 서울 가회동의 중정형주택의 평면과는 다른 구성이지만 이러한 확장된 공간이 등장하게 된 것은 근대화 시기의 제주에서도 주거공간에 대한 욕구가 커지고 있는 게 원인이 된 것일까? 혹시 외지에서 기술자들이 유입되면서 가능해진 공간구성이라고 한다면 상상이 지나친 것일까? 이러한 초보적인 생각에 대한 구체적인 논리구축은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이다.

여기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이형적인 공간은 ‘부엌방’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던 9번방의 존재이다. 부엌방이라고 하는 이름이 혹시 70년대에 많이 볼 수 있었던 식모방을 의미하는 것인가 하고 물어 보았으나 그 방은 주로 외지인에게 임대를 준 적이 많았고 실제로 식모가 있기도 하였지만 방을 따로 사용하지 않고 큰딸과 같이 방을 썼다고 하였다. 밖에서 바로 출입할 수도 있고 부엌과 바로 동선이 연결되는 구조인 이 방의 애초의 구상이 무엇을 염두에 둔 것인지는 인터뷰과정에서도 분명하지는 않았다. 다만 당시의 혼란했던 시대적 상황이나 제주인의 삶의 방식을 고려해 볼 때 임대의 가능성이나 밖거리와 같은 별도의 살림구성을 염두에 둔 계획은 아니었는지 추정을 해 본다.

1970년대 초에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중요한 구조변경내용은 주거공간을 확장하기 위해 출입구 공간을 방으로 만들고 가운데 낭간을 확장하여 7번 현관과 8번 홀을 만든 것이다. 두 번째는 정지에 마루를 깔아서 입식부엌을 만든 일이다. 세 번째는 외부에 있던 화장실을 내부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공간개조는 이 집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은 1970년대 초반의 제주에서의 공간적인 욕구와 기술적인 변화를 가늠하게 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물론 더 많은 이야기가 남아있다. 집이라는 생생한 증거를 바탕으로 사회상을 재현해본다는 것은 가까운 역사를 바라보는데 매우 유용하다. 폐쇄 되어진 굴묵이나 구부러진 원목도리와 반듯한 제재목이 혼재되어진 지붕구조, 일식평기와가 아닌 S형의 시멘트 기와 등 급변하던 시기의 사회처럼 혼란스러운 구조들을 통해 짚어보고 싶은 궁금증은 더 커져간다. 남은 아쉬움을 다음의 과제로 남겨두고 삼도동주택을 통해 급변하던 제주사회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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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 Jeju
옛말에 '배는 짓고, 집은 사라'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집을 짓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저희는 홈페이지를 통해서 건축설계와 관련한 정보를 최대한 제공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집을 만드는데 저희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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