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전본풀이

문전본풀이

문전본풀이 – 신과 인간과 공간에 대한 반성과 재해석 –

1. 처음

<문전본풀이>는 필자에게 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13년전 건축학과에서 학위를 받을 때 소재가 되었던 이 본풀이를 다시 해석해 본다는 것이 적지 않은 부담으로 다가선다. 며칠 동안을 고민해 보았지만 이미 한번 굳어진 생각을 다시 새롭게 풀어낼 자신이 없다. 그렇다고 이미 13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도 <문전본풀이>에 대한 의미와 공간적 해석에 아무런 진전이 없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참으로 섭섭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먼저 <문전본풀이>를 풀어놓는다는 것을 과거의 반성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이 글은 그래서 ‘논문형식’이라기보다는 ‘반성문형식’과 같은 모습으로 써내려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13년전 건축학과에서는 아슬아슬하게 두드려 맞지 않고 피해온 매질을 이제 신화를 제대로 공부하는 동료들에게 맞아야할 순서가 되었다. 그리고 내 스스로도 내 연구방법이 가졌던 한계를 뒤늦게 반성해 보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의미있는 일이라고 위안을 해 본다.
내가 신화에서 흥미를 가졌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먼저 ‘신화’라는 것에 대해 갖고 있는 개인적 생각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신화가 나를 흥분시켰던 것은 신화의 표면을 자꾸 들여다보면, 숨겨진 비밀과 같은 ‘내포된 의미’가 드러나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집단적 사고의 원형과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1996년 논문을 쓸 당시에 나는 ‘구조주의’에 관심을 가지고 신화를 접근하였다. 신화의 표면적 내용을 걷어내고, 심층구조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론이라는 측면이 당시의 내게는 매우 흥미로웠으며, 이는 그 당시 건축학과에서 인기 있는 담론이었던 ‘해체주의’와는 잘 호흡하지 못했던 내게 좀 고전적이기도 하고 보수적이기도 한 이 딱딱한 이론이 건축공간과 신화를 연결시켜줄 어떤 고리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최근의 한 수업에서 교수님이 ‘지금 구조주의 방법을 쓰는 연구자가 없잖아. 이제 한물 간 거지 않아.’라고 했던 방법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귀에 생생하다. 이는 내게 자성의 시간을 가지라는 훈계이기도 하거니와, 이제 혼자만 읽어보았던 어설픈 문전본풀이의 아마추어적인 해석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명령으로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도 신화 해석의 입장이 아니라, 고태적 사유의 형식을 상상할 때는 그들의 사고가 이항대립의 사유의 방식을 통해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경우를 볼 수 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항대립과 같이 차이를 인지하는 방식으로 사물의 특성을 이해하는 방식은 좀 더 복잡해지기는 했지만, 현대사회에서도  쉬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차이를 통해서 지식을 습득하는 방식의 역사는 깊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지금 나의 고민은 이 이상의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문전본풀이>의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문전본풀이.>
1. 문전의 할아버지는 해만국, 할머니는 달만국, 아버지는 남선비, 어머니는 여산부인, 일문전은 녹디생이이다.
1. 남선비와 여산부인이 부부가 되어 아들 7형제를 낳고 사는데, 살림이 궁핍하여 어느날 여산부인이 남편더러 무곡장사를 떠나보라고 권유한다.
2. 남선비가 배를 타고 곡식장사를 떠났다가 오동나라 오동고을에 닿았다.
3. 남선비는 오동고을의 노일저대귀일의 딸의 꼬임에 넘어가서 첩을 삼고 살림을 하게 되는데, 겨죽으로 먹고사는 등 궁핍하게 살면서 눈까지 어두워지게 된다.
4. 남선비의 소식이 끊기자 여산부인은 남편을 찾아 오동고을로 왔는데, 첩이 형님이라고 부르며 아양을 떨다가 여산부인을 주천강 연못에 빠뜨려 죽인다.
5. 노일저대귀일의 딸인 첩은 여산부인으로 가장하여 ‘자기가 첩을 죽였노라’하고는 남편과 함께 남선비의 고향인 남선고을로 돌아가자고 한다.
6. 첩이 본부인으로 가장하였으나, 막내인 녹디생이는 어머니가 아님을 눈치채고 의심하였고, 그래서 첩은 아들 형제를 죽이려고 꾀병을 부려 남선비에게 병을 치유하기 위해 아이들의 간을 달라고 한다.
7. 막내인 녹디생인은 형제의 간 대신에 산돼지의 간을 내어주고는 첩의 계략을 밝혀내게 된다. 이에 놀란 첩은 도망가다가 변소에서 죽어 ‘칙도부인’이 되고, 아버지 남선비는 정낭에 걸려죽어 ‘정주목신’이 되었다. 이때 칙도부인의 시신에서 온갖 바다생물과 각다귀, 모기 등이 생겨났다.
8. 7형제는 어머니의 시신을 거두어 도환생꽃을 구해다가 살려내어 부엌신 ‘조왕’으로 앉히고, 위로 5형제는 五方土神이 되고 여섯째 아들은 뒤문전신이 되고 막내는 일문전 신이 되었다.
9. 그때부터 측도부인과 조왕의 사이가 좋지 않아서 부엌과 변소는 멀리하게 되었다.

사실 신화의 내용은 요약하면 본래의 내용이 갖는 맛이 전부 사라진다. 요약하지 않아도 신화는 그 자체가 많은 정보를 함축한 요약본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신화에 관심이 있다면, 그래도 채록본을 한번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아쉽지만, 요약한 내용으로 신화의 줄거리를 판단하기로 하고 다시 한번 <문전본풀이>의 세계로 들어가 보도록 하자.

2. 반성적 고찰 ; 신과 인간과 공간

필자가 건축학과에서 쓴 논문의 제목은 ‘무속신화의 구조적 고찰을 통한 한국주거건축 공간조직의 이해에 관한 연구’라는 다소 이름의 긴 제목이었다. 이는 건축학과에서는 생소 할 수밖에 없는 무속신화를 소재로 한 이유로 붙은 형벌이기도 하다.

차사본풀이에서의 질침놀이는 신화세계에서의 경계의 모습을 보여준다.

미국어린이의 성인식
쪼개진 나무사이는 어른과 아이의 세계를 가르는 상징적 경계이며, 상징적 경계의 통과는 존재의 변화를 의미하며 통과의례의 원리로 이해된다.
(모리스,영국 BBC에서 기획한 것을 KBS1.에서 1996년 월 녹화방영.)
논문의 주제는 우리의 공간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어떻게 보면 내게 신화라는 것은 우리의 공간을 설명하기 위해 선택된 소재일 뿐이었다. 내게 인상적으로 와 닿은 것은 모리스라는 영국학자가 제공한 성인식의 모습이었다. 이때 텔레비전을 보던 나는 흥분한 상태에서 카메라를 들이대었던 기억이 난다. 이는 A. 반 게넵에 의해 알게 되었던 ‘통과의례’의 의미를 한눈에 보여주는 것이었으며, 나무를 쪼개어 만들어놓은 통과의례에서 상징되어진 ‘경계’라는 것이 내 논문의 주제가 될 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건축학과에서는 당시뿐 아니라 수년전부터 공간에 대한 현상학적인 접근에 고무 돼 있었다. 그 대표적 이론이 ‘장소론’ 불리는 것이었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공간이라는 것은 단순하게 비어있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인간이 의미를 부여함으로 인해 진정으로 ‘의미 있는 공간’인 ‘장소’가 된다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신선해 보이던 이 이론이 점차 식상해져 갈 즈음에, 지식을 사물을 냉정하게 분류하는 체계로 설명해가는 낡은 구조주의의 설명 방식은 오히려 내게 신선한 것이었다.
우리는 통상 전통적인 것, 그리고 과거의 것을 향수적인 관점을 가지고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분명 예전의 초가집이 현대주택보다 살기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대개의 건축학을 공부하는 이들은 초가집의 우수함을 들춰내기를 좋아한다. 이게 학문적 논리와 과거에 대한 향수, 그리고 우리 것에 대한 변론을 하고 싶어 하는 정서 등이 혼재하면서 해석의 방향은 늘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라는 쪽으로 나아간다. 사실 이런 서정적인 해석에서 해방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태도는 객관적인 공간해석에 오히려 방해가 되어왔는지도 모른다. 만약에 공간에서 ‘의미’를 제거하여 바라본다면, 그것은 어떤 경계를 이용하여 단순히 구획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구획의 기본적인 형태는 안과 밖이라는 경계를 만들어내는 것일 것이다. 결국 공간이란 이 경계에 의해 분리되면서 개별화되고 특화되는 것이다. 이 경계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결국 이 질문은 왜 남선비가 정주목신이 되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았다. 그때 당시 나는 제주의 문전본풀이를 육지부의 성주신화와 같은 격으로 오해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지부의 성주신화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 구조 때문에 문전본풀이의 공간구조분석을 별도의 장으로 처리하였었다. 그것은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면서 나는 문전본풀이에서 신이 좌정하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비교적 뚜렷함에 주목하였다. 아들 일곱형제를 보면, 동서남북과 중앙이라는 오방의 개념을 통해 마당을 명당의 중심으로 보는 양택풍수와 음양오행의 사상을 드러낸다. 그리고 일문전과 뒷문전을 통해 가옥의 앞뒤를 지키는 경계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올래직이의 역할을 하는 남선비의 위치 역시 경계를 지키는 신의 모습이다.
이런 정도에서 가옥의 공간을 설명한다면, 가옥공간의 신성성에 대해 설명이 되기는 하지만 매우 싱겁다. 너무 표면적이다. 변소의 신인 칙도부인과 부엌의 신인 조왕이 처첩관계였기 때문에 부엌과 변소는 멀어야 한다는 공간배치의 개념은 신화의 내용에 바로 드러나 있기 때문에 해석의 여지도 주지 않는다. 경계의 신(문신)의 벽사의 기능은 범 세계적인 풍속이기 때문에 이는 사실 신화의 해석까지 가지 않아도, 문에 붙이는 부적과 홍살, 혹은 돌하르방 등의 실증적 자료만 가지고도 충분하게 설명이 된다. <문전본풀이>에서 보여주는 공간의 개념이 단지 그런 것인가? 내가 표면적으로 거론할 수 있는 착상의 한계는 거기까지였다.
<문전본풀이>의 고대적 사유에 대해 의심을 하지 않았던 것은, <문전본풀이>와 <성주신화>를 같이 보았던 당시에 <성주신화>가 <단군신화>와 구조를 같이 볼 수 있는 원시성이 강한 신화라는 김태곤 교수의 견해에 의한 것이다. 김태곤 교수는 <성조씨 안심국>, <성조양반>,<황우양씨>의 비교를 통해 이는 [천신하강-인간교화-하강한 천신이 성주신으로 환원]이라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천신하강과 인간교화 및 단군이 산신으로 환원하는 구조를 갖는 <단군신화>와 유사한 구조를 가진 천신숭배사상을 보이는 신화라고 보고 있다. 이는 성주가 천신이라는 의미에 앞서 매우 고태적, 그리고 야생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신화라는 근거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육지부의 성주신화와 <문전본풀이>는 중요한 화소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남선비의 출생이 천신적 요소로 보이지도 않거니와, 사실 <문전본풀이>이 주인공이 녹디생이라고 한다면, 녹디생이의 부모는 아주 평범한 지상의 인간으로 묘사된다는 점이다. 두번째는 남선비나 녹디생이가 결국 신이 되기는 하지만, 신성을 회복하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점이다. 세 번째는 육지부의 성주신화는 가장 즉, 아버지가 성주가 되는데 반해, <문전본풀이>에서는 아들인 녹디생이가 더 중요한 가택신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게다가 육지부의 성주신의 좌정처는 대청가운데의 생깃기둥 위가 되는데, <문전본풀이>에서는 남선비는 올레의 정낭, 녹디생이는 일문전이 된다. 물론 이야기의 내용도 다르다. 이야기 내용도 다르고, 이야기 구조도 다르다고 신의 좌정처도 다르다면 이를 같은 계통의 신화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성주신화와 문전본풀이가 똑 같이 상량식과 같은 건축의례에서 등장한다는 점이다. 분명히 신화가 구송되는 배경은 같은데 내용이 전혀 다르다. 왜 일까? 내가 석사학위논문에서 육지부의 <성주신화>와 <문전본풀이>를 별개의 장에서 분석한 것은, 지금 돌아보면 어처구니 없는 일이기도 하면서, 그나마 다행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육지부의 <성주신화>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나중에 성주가 되는 남성신이 죄인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그 죄와 관련해서 공간적인 이동을 하게 되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성주신에게는 분명 죄 지음으로 인한 세속적 속성과 신성성의 회복이라는 이중적인 속성이 같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전본풀이>에서의 남선비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즉, <문전본풀이>를 보면 여산부인은 성스러운 여성의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으며, 첩은 사악한 여신의 이미지를 또한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고, 남선비만이 가족을 위해 홀로 먹을 것을 구하러 떠나는 책임감 있는 가장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첩을 만나 개고생하고도 첩의 품을 떠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공유하고 있다. 남선비의 이러한 이중성을 성과 속의 경계에 있는 존재로 생각하였다. 유치해 보이는 이러한 생각은 ‘[여산부인/남선비/노일저대귀일의딸]=[성/경계/속]’이라는 선입견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마술의 원리는 신성한 원을 그림으로써 현실세계와 다른 상징의 세계에서 가능하다는 원리를 보여준다.

킴벨, 신화의힘,
1992.;p.396 참조.
최길성교수는 주거공간을 성/속의 경계의식으로 설명하면서, 집에서는 강한 경계를 마을에서는 약한 경계를 갖는다고 설명하였다.최길성,한국민간신앙연구,계명대,1989. p.97참조.

 

어쨋거나 과거에 분석해보았던 남선비의 이중성을 분해하여 이 세 존재의 관계를 도식화하여 보자. 이 신들의 관계를 통해 나는 엘리아데, 그리고 최길성교수가 가옥의 구조를 [성/속]의 단순한 구획으로 이해하였던 것과 달리, 공간을 구획하는 것을 손님(방문자)를 분류하는 체계로 설명해 보려고 하였다. 이는 구조시스템으로서의 경계공간에 대한 이해에 접근하고 있다고 그 당시의 나는 생각하였다. 참으로 치기어린 생각이기도 하였지만, 어쨋거나 이런 공간적 특성을 소 뒷걸음치듯이 신화에서 실마리를 끄집어내어 간신히 학위를 받기는 했었다.

■ 가신(家神)관계와 구조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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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聖 ⇇[(여산부인+가장인 남선비)
↘ ↓
남선비 부부 ↔ 죄인인 남선비]⇉ 俗;바깥쪽=오동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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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상징적 경계 ↴
1단계={안쪽⇇[(A공간+B공간)
↘ ↓    강한 상징적 경계
2단계= A·B공간 ↔ C공간]⇉바깥쪽}
A; 거주자 공간, B; 방문자 공간,  A·B공간; 새로 설정된 거주자 공간, C공간: 배타적인 외부인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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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거공간의 구조도식 (안채와 사랑채가 있는 육지부 양반가옥의 경우)

1단계; 안채 = {안쪽⇇[(아랫목+웃목)
↘ ↓
안방 ↔ 마루]⇉바깥쪽}
(+) 경계=보이지 않는 선, (↔) 경계= 문지방
웃목의 방문자; 안주인의 아주 개인적인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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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 안채공간 = {안쪽,聖 ⇇[(안방+마루)
↘ ↓
안채 ↔ 안마당]⇉ 俗,바깥쪽}
(+) 경계=문지방, (↔) 경계= 마루턱,기단
안채마루의 방문자; 여성으로 가까운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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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 본채공간 = {안쪽,聖 ⇇[(안채+안마당)
↘ ↓
안채 공간 ↔ 사랑채 공간]⇉ 俗,바깥쪽}
(+) 경계=마루턱,기단, (↔) 경계= 내외문,안중문
안마당의 방문자; 신분이 낮거나 중요하지 않은 여성 방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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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단계; 담장안의 주거공간 = {안쪽,聖 ⇇[(안채 공간+사랑채 공간)
↓ ↙
본채 공간↔행랑채 공간]⇉ 俗,바깥쪽}
(+) 경계=내외문,안중문, (↔) 경계= 일각문
사랑채공간의 방문자; 남성으로 격(格)이 있는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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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단계; 집과 동네 공간 = {안쪽,聖 ⇇[(본채 공간+행랑채 공간)
↓    ↙
주거공간↔이웃 공동체공간]⇉ 俗,바깥쪽}
(+) 경계=일각문, (↔) 경계= 담장,솟을대문
행랑채 공간의 방문자; 신분이 낮은 남성 방문자거나 행랑의 방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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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단계; 마을 공간 = {안쪽,聖 ⇇[(주거공간+이웃 공동체 공간)
↓ ↙
동네 공간 ↔ 마을 공간]⇉ 俗,바깥쪽}
(+) 경계=담장,솟을대문, (↔) 경계= 골목,익숙한 쉼터.
문 밖 또는 이웃 공동체 공간의 방문자; 거지, 봉물 장사꾼,이웃 공동의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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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단계; 시각 한계공간 = {안쪽,聖 ⇇[(동네 공간+마을 공간)
↓ ↙
마을 전체 ↔ 마을 밖]⇉ 俗,바깥쪽}
(+) 경계=골목,익숙한 쉼터, (↔) 경계= 장승,솟대.
마을 공동체 공간의 방문자; 장돌뱅이,장사꾼,나그네, 우연한 방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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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단계; 현실세계 = {안쪽,聖 ⇇[(마을 전체+마을 바깥공간)
↓ ↙
시각 한계공간 ↔ 인간세속]⇉ 俗,바깥쪽}
(+) 경계=장승,솟대, (↔) 경계= 청룡,백호,현무.
마을 바깥공간의 방문자; 잡귀,속물,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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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단계; 신화세계 = {안쪽,聖 ⇇[(시각 한계공간+인간세속)
↓ ↙
인간 현실세계 ↔ 가상세계,저승]⇉ 俗,바깥쪽}
(+) 경계=청룡,백호,현무, (↔) 경계= 12개의 저승문.
인간 현실세계의 방문자; 알 수 없는 존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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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 보면, 신과 인간과 공간에 대한 연결고리를 잘도 어거지로 꿰다 맞추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여전히 던지고 싶은 질문이라면, 신화가 스토리로 말하고 있듯이, 건축도 사물로서 말을 한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우리의 조상이 같이 만들어낸 집단적 작가들은 각종 의례에서도, 민담에서도, 그림과 연극, 식사습관과 부모형제 친족의 관계에서도 같은 철학과 같은 세계관을 보여줄 것이라는 것이다. <성주신화>와 <문전본풀이>에 대한 어설픈 접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화의 구조에서 가옥 공간구조를 발견하거나, 가옥공간에서 신화의 구조를 발견하는 것은 폐쇄된 고리에서의 연구에서 찾을 수 없는 새로운 해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3. 다시 해보자 ; 신화의 분석

3.1 기존연구의 소략적 이해와 비판적 고찰.

<문전본풀이>는 다른 본풀이와 마찬가지로 구송자에 따른 다양한 ‘본’들이 있다. 최근 제주대학교 한국학협동과정에서 채록한 이용옥본을 비롯해, 진성기선생의 『남국의 무가』에 실린 이춘아, 신명옥, 박남하본이 있고, 아끼바의 『조선무속의연구』에 실린 박봉춘본,  장주근선생의 『제주도 무속과 서삼가』에 실린 고대중본이 있다. 여기서는 현용준선생의 안사인본을 중심으로 신화를 분석하였으며, 『제주도무속자료사전』에 채록된 난해한 원문을 인용 않고, 동일저자가 동일 구송자의 채록내용을 이해하기 편리하게 편집한 『제주도신화』에 실린 내용을 활용하였다. 때문에 분석의 방법에 있어서, 소소한 문구의 정확성을 따질 수 없으며, 큰 틀에서의 오류가 없는지를 『제주도무속자료사전』과 이용옥 심방본을 같이 읽어가면서 검토를 해 나가도록 하겠다. 현존하는 모든 채록을 확인하지 않은 것은 연구과제가 본풀이의 개체적 속성에 의미를 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정도의 한계를 이해하는 수준에서 진행을 할 것이다.
13년이 지난 오늘, 내가 다시 이 문전본풀이를 신화를 공부하는 학생의 입장으로 들여다 보게 되었다. 내가 놓친 부분이 무엇일까? 나는 사석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깨부수는 두 가지의 화두에 부딪힌다. 하나는 <문전본풀이>가 분명 육지에서 건너온 신화일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문전본풀이>는 고대적 사고를 반영한다기보다는 중세적 사고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견해였다. 이 두 가지의 이야기는 내게 충격적이었다. 내게는 현존하는 모든 신화라는 것은 역사시대 이전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런데, <문전본풀이>가 중세적이다? 게다가 육지에서 건너온 것일 것이다?
그러면 궁금한 것을 먼저 풀어가 보자. 중세적 사고가 반영돼 있다는 것은 <문전본풀이>에서 취급되는 첩에 대한 부정적 관점과 매우 가정적이면서 남편에게 순종적인 여산부인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 이는 <송당본풀이>를 비롯한 제주의 당신본풀이를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너무나도 당당한 여성신의 모습들 때문에 남편에게 순종적이면서도 살림을 잘하는 여산부인이 참으로 제주의 여성상으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또한 제주도 당신신화에서 일뤳당신으로 잘 등장하는 첩의 모습을 보면, 본부인과의 갈등이 거의 없는 모습을 볼 때, <문전본풀이>에서의 노일저대귀일의 딸의 모습이 또한 제주의 여신의 모습과는 또한 거리가 멀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현용준 선생은 문전본풀이가 일부다처제사회에서 첩의 윤리적 행위를 강조하는 사회적 계몽의 역할을 했다고 보았다. 하지만 반문하자면, 일반인들이 알아듣기도 힘든 본풀이를 통해서 그런 교육적 기능을 수행했다고 하는 것에 쉬 수긍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일부다처제가 정당화된 사회라면, 이런 처첩의 갈등구조가 신화에 나타나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도 갖게 된다.
<문전본풀이>와 비교하여 볼 수 있는 육지부의 신화가 무엇일까하고 궁금하던 차에, 김헌선은 <문전본풀이>를 본토의 <칠성풀이>와 비교하면서, 어떤 경로를 통해서 가까워졌으리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요 대목에서 또 재미있는 논문을 하나 볼 수 있는데, 1997년에 정주혜는 서강대 석사학위논문에서 호남지방의 <칠성풀이>와 <문전본풀이>를 가족관을 중심으로 비교하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정주혜논문에 의한 <칠성풀이>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칠성님과 매화부인의 결혼함 /한꺼번에 일곱 아기를 낳아서 소박맞음 /칠성님은 천상의 옥녀부인을 후실로 맞음 / 매화부인이 일곱 아기를 버리려고 하다가 도사 중의 훈계로 다시 기르게 됨/ 일곱아기가 자라서 천상의 아버지를 찾아 감 / 옥녀부인은 아기들을 죽이기 위해 아픈 척한 후, 문복을 하고 병을 낳기 위해서는 일곱 아기의 간을 먹어야 낫는다고 함./ 금사슴이 나타나 옥녀부인의 계략을 폭로하고 자신의 간을 내어줌 / 칠성님은 금사슴의 간을 이용하여 옥녀부인의 계략을 밝힘 / 하늘임이 옥녀부인을 죽임으로 심판을 함/ 일곱 아기는 칠성님을 모시고 고향으로 돌아와 연당에 빠져죽은 매화부인을 살려냄 /

내용을 보면 정말 많은 부분에서 <문전본풀이>와 동일한 소재가 적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첩인 옥녀부인이 자식을 모해하려는 음모와 발각의 과정은 매우 흡사하다. 정주혜는 <칠성본풀이>에 비해서는 <문전본풀이>가 여성의 지위를 좀 더 높게 잡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일하고 참기만하면 언젠가는 어머니로서 보상을 받게 된다는 ‘본처 이데올로기’를 통하여 후처를 희생시켜 가족의 틀을 공고히 하고 있다고 하고 있으며, 이는 가부장제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제법 일리가 있는 이야기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본풀이를 통해서 첩의 윤리를 강조했다는 상황이 이해가 되기도 하면서, 패미니즘의 입장에서의 거부감도 동시에 생겨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다고 해서 <문전본풀이>가 과연 육지에서 도래한 것으로 방향을 설정하는 것, 즉 <칠성풀이>가 먼저이고, <문전본풀이>가 나중이라는 도식을 인정해야 할 것인가? 그 점은 좀 더 두고 봐야 하겠다. 그렇게 단정하기에는 아직 쉽게 이해되지 않는 몇가지의 의문이 남는다.  첫째는 <칠성풀이>는 ‘아버지를 찾아가는 이야기’로 남성위주의 이야기전개를 바탕으로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첩인 옥녀부인을 천상의 존재로, 처인 매화부인을 지상의 존재로 전개하면서 첩에게 먼저 신격을 부여한 점을 어떻게 이해 할 것 인가하는 점이다. 두 번째는 녹디생이를 비롯한 영웅적 아들의 이야기는 생략되어 있는데, 그러면 영웅적인 아들의 이야기는 육지의 신화와는 별개로 제주에서 자발적으로 붙어진 이야기인가 하는 점도 의문이다.
하늘에 있는 첩과 바다에서 건너온 첩, 누가 더 원본에 가까운 사고일까? 남성신의 이야기와 여성신의 이야기, 어느게 더 원본적 사고일까? ‘아버지 찾기’와 ‘어머니 찾기’, 어느 게 더 원본적 사고일까? 이제까지 제주신화는 후자를 선택하지 않았는가.
정주혜의 논문발표와 같은 해에 장유정은 <문전본풀이>와 아이누의 <카무이 후치 야이유카르>를 비교하여 제주도 가족제도에 관한 소론을 발표했다. 아마 장유정의 소론이 한해만 더 일찍 발표되었으면, 정주혜의 논문의 범위가 더 확장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장유정은 <문전본풀이>와 <카무이 후치 야이유카르>에는 ‘물’과 ‘불’이 공통적 소재로 나타나고 있음에 주목하여, 두 개의 신화가 유사한 내용의 신화라고 보고 있다. 장유정 소론에 의한 <카무이 후치 야이유카르>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불의온신(여성)은 자수에 전념하면서 그의 남편이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 어느날 남편이 변소에 가는척하면서 집을 나가 물의 여신과 살게 된다 / 불의 온신은 물의 여신이 남편을 가두어버린 것을 알고 무장하여 물의 여신이 사는 집을 찾아 간다 / 둘은 무술경쟁을 하고 불의 온신이 이긴다 / 물의 여신이 살려달라고 하자, 그녀를 살려두고 집으로 돌아와서 자수에 전념한다./ 며칠후 남편은 값진 보석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불의 온신은 아무 말 없이 남편이 집에 머무르게 한다.

장유정의 주장대로 <문전본풀이>와 <카무이 후치 야이유카르>를 같은 계통의 신화로 볼 수 있을까? 내가 추측하기에는 여산부인(조왕신)이 불에 관련한다는 점과 <카무이 후치 야이유카르>에서 남편이 물의 여신을 만나기 위해 변소에 가는 척한다는 대목에서 물의 신과 변소의 신을 연관시켜 논리를 확장시킨 것 같다. 그것을 전제로 장유정은 <문전본풀이>의 처첩의 갈등보다 <카무이 후치 야이유카르>의 아내와 새로운 여자의 갈등은 보다 더 직접적이고 원초적 사고를 반영하고 있다고 하고 있다. 그러면서 수동적인 남편의 모습과 모계가족의 특성이 부각된 점과 ‘부부관계’를 중시하는 점에서 동일한 사유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으며, 그러면서 <문전본풀이>에서는 ‘모성중심’의 사유가 덧붙어져 있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신화를 <문전본풀이>와 같은 근원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에 다소 무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물의 신과 불의 신의 대결구도라는 것은 신화의 초기에서부터 그 대립구도가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마치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에서 토끼만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런데, <문전본풀이>에서의 여산부인과 노일대제귀일의 딸은 [농경문화/수렵문화]를 상징하고 있다는 것이 힘을 얻는 해석의 하나인데, 이는 <문전본풀이>의 구조가 [물의 신/불의 신]의 대립과는 달리, 애초에는 수렵문화의 신화가 농경사회로 접어들면서 변이된 형태가 현재 잔존한 신화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즉, 여산부인의 신화에서의 등장은 신화초기가 아닌 후대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뒷장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하고, <카무이 후치 야이유카르>와의 연관성도 염두에 두어보자.
흥미로운 것은 <카무이 후치 야이유카르>는 <문전본풀이>에서 여성신의 신격에 주목을 하라는 조언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문전본풀이>의 여산부인의 속성을 보자. 살펴보면 여산부인이 단순히 살림을 잘하고, 첩의 계략에 쉽게 넘어가는 미약한 존재만은 아니었음을 볼 수 있다. 여산부인이 여성신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을 살펴보자. 첫째, 남선비로 하여금 무곡장사를 하라고 떠나보내는 주체적 존재이며, 이는 여산부인이 농경문화를 상징하는 존재임을 암시한다. 둘째, 일곱아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현몽하여 타개책을 알려준다. 셋째, 녹디생인이 노일저대귀일의 딸을 시험하기 위해 칼선다리를 놓은 것은 여산부인은 능히 칼선다리를 건널 수 있는 존재임과 남선비를 찾기 위해서 해변에서 빗으로 혼령을 건지는 행위에서 보이는 무속사제적 능력을 보여준다. 넷째, 청태산 마구할망이 남선비집에 불씨를 빌리러 왔다는 것은 여산부인이 ‘불’과 관계된 존재임을 암시하는데, 일곱형제가 여산부인이 누운 자리의 흙으로 시루를 만드는 점과 관련해서 ‘조왕신’의 격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김재용은 여산부인이 ‘불’에 관련하고 있다면, 노일저대귀일의 딸의 경우에는 여산부인을 목욕하러가자고 꾀인후 물에 빠뜨려 죽게 하고 자신은 살아남은 사건을 통해 ‘물’에 대한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사건을 가지고 노일저대귀일이 ‘물’에 대한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기엔 좀 무리가 있어 보인다. 결국 김재용은 노일저대귀일의 딸을 외지의 세력으로 보고, 외지세력에 대한 불신과 경계의 의미로 보고 있다. 앞에서 논한바와 같이 [불/물]의 대립구도로 보았다가, [토착세력/외지세력]의 대립구도로 보는 것은 서로 논리적 모순이 있다.
하지만, 노일대제귀일의 딸의 물에 대한 지배력은 쉽게 포기할 수 없는 화소라고 할 수 있다. 노일저대귀일의 딸이 ‘물’에 대한 지배력을 보여주는 것은 불의 신인 여산부인을 물에 빠뜨려 죽인 것 보다도, 그가 죽은 후에 그의 시체에서 해초를 비롯한 해산물(해초, 솔치, 딱지조개, 굼벵이, 대전복, 소전복, 각다귀와 모기)이 생겨났다는 점에서 추론하여 볼 수 있다. 권태효는 시체화생신화 중에서 해산물이 나타나는 신화는 <문전본풀이>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하고 있다. 결국 여산부인이 노일저대귀일의 딸에게 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는 무기력함은 물을 이길 수 없는 불의 성질로 이해될 수 있으며, 일곱형제가 여산부인을 살리고 나서, ‘어머님은 춘하추동 사시절을 물에만 살려고 하니 몸인들 안 시립니까? 어머님은 하루 종일 삼세번 더운 불을 쪼이면서 조왕할머니로 앉아서 얻어먹도록 하십시오.’라고 하면서 [친모/계모]의 관계가 물과 불의 대립구도로 그려지고 있음을 또한 확인하게 한다.
[처/첩]의 관계가 [불/물]의 대립구도로 볼 수 있으며, 또한 [쌀의 문화/겨밥의 문화] 혹은 [농경문화/수렵문화]의 대립구도로 볼 수 있다고 보자. 아마 이정도가 여산부인과 노일제대귀일의 딸의 대립관계를 설명하는 키포인트일 것이다. 그러면, <칠성풀이>와 <카무이 후치 야이유카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던, 녹디생이와 그 형제의 영웅적 이야기는 무엇인가? 2세대의 화소는 제주에서 자생한 것인가? 왜?
김유정은 녹디생이의 이야기를 ‘말자잔유제’가 반영된 것으로, 즉 막내가 부모와 가장 오래 살아가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사회상의 반영으로 보고 있다. 물의 신과 불의 신의 팽팽한 대립구도로 보다가, 갑자기 웬 사회상의 반영인가? 그렇다면, 전반부는 호남과 아이누족을 포함하는 분포를 보이는 사유이며, 녹디생인의 이야기는 제주만의 독자적인 문화의 반영으로 덧붙여졌다는 것인가? 왜 제주에서만 2세대의 이야기가 추가된 것으로 보일까?
먼저, <문전본풀이>는 육지부의 신화가 제주로 전해지고 나서 제주적인 요소로 변형된 것이라고 가정해보자. 통상적으로 우리는 신화의 세계에서 모계중심사회에서 부계중심사회로 넘어가는 과정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수렵사회에서 농경사회로 넘어가는 과정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면 완전히 부계중심의 신화로 보이는 <칠성풀이>가 더 변형이 많은 후대의 것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하며, ‘아버지 찾기’의 화소가 고구려신화에까지 반영된 것을 보면, 최소한 <문전본풀이>에서 중세적 사유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어머니 찾기’식의 화소는 그 신화의 발생을 고대의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김유정의 주장대로 <카무이 후치 야이유카르>가 <문전본풀이>보다 더 원초적 사유를 보인다면, 신화의 전파방향은 어느 쪽으로 든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다만, <문전본풀이>가 육지에서 도래한 후 변형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사고의 시원성은 <칠성풀이>를 훨씬 앞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처/첩]의 갈등에 의한 <문전본풀이>의 시원성의 탐구 이외의 또 하나의 주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김난주는 <문전본풀이>를 창조신화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이는 김태곤교수가 <성주신화>를 <단군신화>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더 신화의 태고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난주는 <이슈타르신화>에서 이슈타르라는 여자가 명계를 여행할 때, 7개의 관문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옷과 장신구를 벗었다가, 다시 지상으로 귀환 할 때는 벗었던 옷을 하나하나 되찾으면서 생명력을 회복한다는 점과 노일저대귀일의 딸의 등장으로 인해 여섯 형제가 차례로 옷을 벗어 맞이하는 것과 비교한다. 즉, 여섯형제의 탈복은 죽음에 대한 상징적 의미이며, 녹디생이는 그 죽음을 극복하는 존재인 것이다. 김난주는 녹디생이가 갖고 있는 창조신적 능력을 세 가지로 보고 있다. 첫째는 노일저대귀일의 딸로부터 생물을 탄생시키는 것, 이는 수명장자 혹은 그의 자식들로부터 생물을 만들어낸 천지왕의 능력과 비유된다. 둘째는 여산국을 꽃으로 부활시키는 능력을 보여준다는 점이며, 셋째는 여산국이 누웠던 흙으로 시루를 만드는 것으로 전개되는데, 김난주가 시루에 주목하는 바는 흙에서 시루를 만드는 과정이 창조행위를 나타내는 탁월한 상징성을 갖고 있으며, 이는 자궁의 상징, 불기운의 가시성, 예산국의 몸, 부엌등을 포괄적으로 상징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집宇 집宙에서 보듯이 집을 하나의 소우주로 바라보는 관념은 고대사회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성주신화>가 건축의례에서 불리어지고, 이를 단군신화와 같은 시원성을 갖는 다는 것은 의미 있는 착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전본풀이>의 시원성을 창조신화로 까지 확장해 가는 것이 타당한가? 첫 번째 사체화생의 요소는 창조신화 이외에도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즉, 변용 혹은 차용된 내용일 수 있다. 두 번째, 여산국을 꽃으로 부활시킨다는 것은 녹디생인의 영웅적 면모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생명의 부활을 창조의 능력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세 번째의 시루에 대한 추론이 불과 연관된 상징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할 수 있지만, 창조신화의 요인이라고 보기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사실 문전신을 성주신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가? 그리고 <문전본풀이>가 <성주신화>와 동일하게 취급되는 것이 타당한가? 이는 신화의 내용으로 보아서는 <문전본풀이>가 <성주신화>처럼 집을 짓는 유래를 보여준다고 하기도 어렵고, 문전신을 성주신으로 보기도 어렵다. 다만, <문전본풀이>가 건축의례에서 불리어지는 공통점과 신화에서 가택신(가정신)들이 좌정하는 경위를 설명한다는 점에서 <성주신화>와 동일한 격으로 취급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즉, 개인적인 견해로는 <문전본풀이>에서 창조신화적인 내용과 물리적 행위로서의 건축의례적인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기는 곤란하다고 판단된다.
이제까지 기존 연구를 통해서 대략 핵심적인 세가지의 주제를 찾아볼 수 있었다. 첫째는 내 논문에 대한 반성의 연장인데, <문전본풀이>에서 보여주는 신격과 주거공간구조는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하는 점이다. 부엌과 변소에 대한 [처/첩]의 대립과 위생적 순환의 기능을 통해 둘 사이가 가까워지면 안된다는 개략적인 발표는 많이 있었다. <문전본풀이>는 신화에서의 공간을 다룸에 있어서, 신성공간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소수의 신화이므로, 한 번 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두 번째는 여산부인과 노일저대귀일의 딸이라는 여성신의 관계를 다양하게 해석하고 있었지만, 정작 이들의 대립적인 관계성에만 집중하다보니, 제주의 여성성이라는 측면에서의 고찰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때문에 이 두 여신을 통해 제주여성의 어떤 면을 고찰 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다. 세 번째는 녹디생인의 등장에 대한 해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처/첩]의 대립에 대한 다양한 해석에도 불구하고, <칠성풀이>와 <카무이 후치 야이유카르>에는 나타나지 않는 녹디생인의 영웅적 출현에 대하여는 특별히 거론하고 있지 않다. 녹디생인의 출현을 통해 이 신화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는지 다시 한번 물어보겠다.

3.2 녹디생이와 남선비 ; 잘난 자식과 못난 아버지.

<문전본풀이>에서 무엇을 볼 것이냐? 처음부터 이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래도 가택신이 주로 나오는 이 신화에서는 제주인의 가족관을 먼저 보아야 할 것이 아닌가. 앞서 기존의 연구를 살펴보면서, 이 신화의 원본적 사고가 어떤 것일까를 함께 물어보았다. 몇가지의 추론을 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분명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질문을 역으로 한번 던져볼 필요가 있다. 신화를 읽음에 있어서 원본적 사고가 중요한 것일까? <문전본풀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어쩌면, 원본보다 중요한 것은 그 변형을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지금 우리에게 남겨지고 전해진 신화가 현대인의 사고까지도 반영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다고 말 할 수 있는가.
<칠성풀이>와 <카무이 후치 야이유카르>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2세대 녹디생이와 그 형제의 의미를 살펴보자. 이들의 등장은 그 이전의 신화의 형태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카무이 후치 야이유카르>를 원본에 가깝다고 보았을 때, <문전본풀이>에서는 물의 신을 힘으로써 징치하던 불의 신의 강한 여성의 모습은 약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노일저대귀일의 딸을 징치하는 역할을 불의 신인 여산부인이 아닌 자식이 맡게 됨으로써, 그와 직접적으로 대적해야 할 역할이 여산부인에게서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적극적인 제주의 어머니의 모습이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모습으로 바뀌어버렸다고 할 수 있다.
녹디생인과 그 형제의 영향은 그것 뿐이었을까? 사실 녹디생인이 무기력하게 만들어버린 것은 여산부인만이 아니다. 이들은 남선비의 모습까지도 무기력하고 바보 같은 존재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칠성풀이>에서의 남편은 권위 있는 영웅으로 다루어지고 있으며, 비록 신화의 주역이 아니었어도, <카무이 후치 야이유카르>에서의 남편은 여성의 명령에 움직이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물의 신을 선택하였고, 스스로 불의 신에게로 돌아오는 자율적인 의지를 보여주는 존재이다. 반면 남선비는 전혀 다른 존재이다. 남선비가 그렇게도 바보 같은 존재로 남겨진 것은 녹디생인이 새로운 영웅으로 등장하기 위한 조연으로 물러선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주몽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서 금와의 신화가 미완성으로 끝나버린 것과 같은 것이다.
녹디생인의 등장은 사실 <궤눼깃당 당신본풀이>에서의 궤눼기의 등장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백주또가 자식이 많아 먹고살기 위해서 농사를 짓자고 소천국에게 제안해서 농사를 짓게 되는 소천국의 모습이나, 여산부인에게 떠밀려 무곡장사를 떠나는 남선비의 모습은 비슷한 면이 있다. 또한 백주또와 여산부인도 비슷한 면이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소천국이 점심을 태산절 중에게 속아서 빼앗기고, 밭 갈던 소를 잡아먹고는 백주또에게 버림받아 정동칼집엣딸을 첩으로 맞아 별거를 하게 되었다는 모습은 남선비가 노일저대귀일의 딸에게 속아서 재산을 빼앗기고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운명에 놓인 모습과 비슷하다. 결국 소천국은 자신이 버린 아들 괴네깃또를 피해 도망가다가 고부니마루에 가 죽게 되는데 이러한 운명도 남선비와 노일저대귀일의 딸의 최종적 운명과 비슷한 귀결이다. 이는 <문전본풀이>와 <궤네깃당 당신본풀이>가 같은 이야기라는 것이 아니라, 영웅적인 아들의 등장이 아버지의 권위적인 모습을 무기력하고 바보 같은 모습으로 바꿔치기하는 인자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칼선다리를 놓았다는 녹디생인은 철기문명이라도 가지고 온 혁명세대였던 것일까?
이를 2세대에 의한 1세대의 징치를 새로운 세대의 도래로 보기보다는 우리의 전통적인 아버지의 모습으로 본다면 어찌될 것인가. 모계사회에서부터 시작하여, 가부장적 부계사회가 되어도 변함없이 우리의 아버지는 자식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였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문전본풀이>에서나 <궤네깃당 당신본풀이>에서나 아버지는 ‘자식의 탄생’이 원인이 되어, 먹고 살기 위해서 집밖을 나서야 했다. 그게 <문전본풀이>에서 무곡장사를 떠나건, <송당 당신본풀이>에서 해보지도 못한 농사를 지으러 떠나건, 우리의 아버지는 가족을 먹여살려야한다는 의무감에서 집을 나서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칠성풀이>에서 매화부인은 애를 많이 낳는다고 소박맞게 되는데, 이와 비교한다면, 제주의 아버지는 반대로 여산부인이나, 백주또가 낳은 애들 때문에 생활전선으로 내몰리는 운명에 막닥뜨리게 된 것이다. 누가 제주에서는 여자들만 일을 하고, 남자들은 놀고먹는다고 했는가. 정주혜가 주장했던 가부장적인 사회의 반영이라는 것은 <문전본풀이>에서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돈을 벌기위해 기러기 아빠처럼 무곡장사를 떠난 남선비는 죽어서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가옥의 맨 밖의 정주목신이 되지 않았는가. 집에서 애를 키우느라 고생한 여산부인은 안쓰럽고, 가족을 떠나 돈 벌러 나갔던 남선비의 운명은 안쓰럽지 않은가.

3.3 여산부인과 노일저대귀일의 딸

여산부인과 노일저대귀일의 딸의 관계는 이미 [처/첩]관계로 설정이 되어있고, 이를 [불/물]의 대립구도로, [농경사회/수렵사회]의 대응관계로 보는 기존의 연구를 살펴보았다. 이 외에 주목할 것으로 첩을 외래세력으로 보고, 이 신화가 외래세력을 경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김재용의 주장도 있었다. 또한 노일저대귀일의 딸을 대표적인 악인형 여신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며, 이러한 다양한 견해들이 모두 신화해석의 다양함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 두 여인을 분석함에 있어서, 서로 대립적인 성격에 주의를 하다 보니, 여산부인과 노일제대귀일의 딸을 통합하는 시각을 보이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여산부인이 제주여성의 일면을 보여준다면, 노일제대귀일의 딸은 제주여성의 모습이 아니란 말인가? 실제로 제주에 작은각시를 두는 것이 별로 이상히 여기지 않는 관습이 최근까지 있었던 것으로 감안할 때, 노일저대귀일의 딸이 제주여성의 모습을 담지 않았다고 보아야할 합리적인 이유가 성립되지 않는다.
이지영은 악인형인 노일저대귀일의 딸은 신화속의 전형적 악인의 모습일 뿐, 제주여성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또한 김재용은 노일제대귀일의 딸이 외부세력일 것이라고 하고 있다. 신화의 내용처럼 노일제대귀일의 딸이 밖에서 온 존재일까? 제주신화에는 외부에서 들어온 세력에 대한 신화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삼성신화에서 오곡을 가지고 온 여성신이 있었고, <기민창조상신본풀이>나, <칠성본풀이>에서도 외부에서 들어온 신의 이야기가 있다. 노일대제귀일의 딸도 외부로 나갔던 남선비일행이 데리고 온 외부 세력으로 볼 수도 있으며, 그 외부세력과 기존의 조직과의 갈등과 퇴출의 과정을 그린 것으로 보는 것도 그럴듯하다.
하지만, <문전본풀이>에서 노일제대귀일의 딸이 외부에서 온 세력으로 보기 곤란한 이유가 있다. 대개 제주의 신화에서는 외부에서 농경신이 도래하는 모습으로 되어있다. 대표적인 것이 여성신이 오곡을 가지고 온 <삼성신화>인데, 문전본풀이에서 여산부인과 노일대저귀일의 신격은 분명히 농경사회와 수렵사회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노일대저귀일의 딸이 여산부인보다 앞선 세대이며, 만약 외부에서 여신이 도래하여 문명의 변화를 가지고 왔다면, 이미 노일대저귀일의 딸이 있는 제주에 여산부인이라는 농경신이 외부로부터 도래하는 형태가 되어야 역사적 흐름으로는 맞는 것이다.
신화는 장구한 시간 속에서 관계가 역전되거나, 뒤집어지거나, 의도된 변형이 가해질 수 있다. 때문에 한번 신화속의 인물의 격을 뒤집어 볼 필요가 있다. 마치 남선비와 녹디생인의 관계가 2세대에 의해 1세대의 권위가 훼손된 것과 같은 것이다. 즉, 여산부인과 노일저대귀일의 딸도 그러한 권위의 전도가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하고 볼 필요가 있다. 즉, 노일제대귀일의 딸은 농경민의 여성인 여산국과 녹디생인의 세력에 의해 오동마을로 쫒겨 난 수렵인의 여성상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노일저대귀일의 문화적 성격과 여산부인의 문화적 성격이 어떻게 비교가 되고, 이들의 선후관계를 놓고 볼 때, 이들은 동시대의 동등한 여성이 아니라, 후발 여성신인 여산부인의 신격을 세우기 위해 수렵사회의 여성신인 노일제대 귀일의 신격을 떨어뜨리고, 첩이라는 부속적인 존재로 만들어버린 것이 아닌가하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가정을 가지고 다시 노일대제귀일의 딸의 성격과 그의 직능을 볼 필요가 있다.
이지영이 정리한 악인형 여성인 노일저대귀일의 딸의 성격은 첫째, 유흥형 여성 둘째, 애정에 적극적인 여성 셋째, 살림을 못하는 여성 넷째, 속임수에 능한 여성 다섯째, 냉혈적 여성으로 정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표면적인 내용을 한 겹 벗겨내 보자. 어쩌면 그녀의 색다른 면모를 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먼저 남성에 대한 노일저대귀일의 딸과 여산부인의 관점을 비교해보자. 여산부인은 노일대제귀일의 딸이 ‘아이고 형님’이라는 받드는 말 한마디에 그저 서로 잘 지내보자고 화의를 받아들인다. 이는 사실 가부장적 사회가 바라는 순종적인 여성의 모습이며, 본성적이라고 할 수 없다. 반면에 노일대제귀일의 딸은 본인은 남성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면서도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사실에 발끈하고 온갖 욕설을 퍼부어대는 여성이다. 이는 여러 남성을 쥐락펴락하면서 살아가는 실질적인 모계사회의 여성의 모습이다. 물론 남편에게 돈을 벌어오라고 등을 떠미는 여산부인 역시 모계사회의 여성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곧이곧대로 라면, 가부장적 사회에서도 살림이 궁핍하면, 남편에게 그 정도의 요구는 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첩에게 눈이 멀어 겨죽으로 연명하는 남편을 위해 군말 없이 밥을 하는 여산부인은 분명 가부장사회의 여성인 것이다. 즉, 여성성에 대한 변이의 과정을 단계적으로 이해한다면, [①노일대제귀일의 딸; 수렵사회의 권력형 모계사회의 여성-②제주에서의 여산부인; 농경사회의 가정형 모계사회의 여성-③오동마을에서의 여산부인; 농경사회의 가부장적 부계사회에서의 여성]으로의 변이의 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일대제귀일의 표면적 사악함을 수렵에서 농경으로의 변이과정에서 일어난 신격의 손상으로 이해한다면, 이 변소로 쫒겨난 신이 결코 제주여성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까지 살펴본 노일대제귀일의 딸과 여산부인의 속성을 통하여 신화 속에 드러나는 제주여성의 심층적 변이과정을 추정해보자.

사회적 배경과 여성성
제주의 신화속 여성
비교대상 여성
유형
⇑가부장적 유교윤리사회
오동마을에서의 여산부인
매화부인, 일훼당신
순종적 가정형
⇑농경사회, 모계사회
남선비를 떠나보낸 여산부인
백주또, 요왕녀?
적극적 주도형
⇑수렵사회, 모계사회
노일대제귀일의 딸
과양생이의 처?
전투적 권력형
⇑태초, 혼돈의 시대
설문대할망
마고할미
창조적 영웅형
표  . 제주신화속 여성의 층위

요 대목에서 간단한 논리적 장난을 해보고 싶어진다. 청태산 마구할망이 이 신화에서 등장하는 것이 ‘불’을 빌리러 왔다는 대목이 있다. 이를 근거로 여산부인이 불을 다루는 능력이 있음을 증명한다. 그렇게 보는 것이 정당한가? 그러면, 차사본풀이에서 청태국 마구할망이 과양생이집에 불을 빌리러 온 것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과양생이의 처도 여산부인처럼 불을 다루는 존재로 보아야하는가? 그런데 신화의 내용을 보면 과양생이의 처는 여산부인이 아닌 노일대제귀일의 딸과 많이 닯은 전형적 악녀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둘 다 죽은 후에는 갖가지 벌레와 생명을 만들어내는 인자가 된다. 부분을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것은 그래서 위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말하고 싶은 바는 과양생이나, 노일대제귀일의 딸은 제주여성의 모습이 아닐 거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신화를 읽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소재의 샘플링의 측면에서는 두 개의 신화가 서로 소통한 부분이 있다는 심증이 든다. <차사본풀이>에서 과양생이의 처가 버무왕의 아들이 재물이 있음에 욕심을 내고, 이들을 받아들이고 난후에 이들을 죽이고, 주천강 연못에 가서 시체를 버려버린다는 내용은 <문전본풀이>에서 노일대제귀일의 딸이 남선비의 재물에 욕심을 내고, 또 여산부인을 주천강 연못에 밀어 죽이는 점에서 동일한 심뽀를 가지고 있다. 이는 신화의 부분적인 소재의 유사성이지, 전체적인 관련성의 차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과양생이처와 노일제대귀일의 딸은 성격상 정말 많이 닮았다.
이 즈음에서 사악함의 전형이라는 노일대제귀일의 딸이 가지고 있는 고대적 성격을 정리해보자. 첫째, 남성에 대한 소유욕과 성적인 자유분방함을 볼 수 있다. 둘째, 살림엔 서툴지만, 남편을 위해 동냥질을 하는 생활력을 볼 수 있다. 셋째, 외부세력에 대해 적극적인 반격을 가할 수 있는 호전성과 정치적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적극적인 수렵시대의 여성이 농경시대로 들어서면서 도덕적으로 타락한 존재로 취급되어진 것은 아닐까? 이런 다소 거칠지만 용맹스럽던 고대 수렵인인 제주의 여성이 농경사회로 접어들면서 정주환경에서의 모계사회가 지향하는 여산부인형 여성으로 전환되었으며, 녹디생인은 이를 지지하고 수렵인을 축출한 세력이었을 것이다.

3.4 우리의 집 ; 장소의 신과 경계의 신.

이제까지 <문전본풀이>의 등장인물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면서, 문화사적 변화가 신화의 내용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등장인물을 통해서 살펴보았다. 하지만, 역시 <문전본풀이>의 현재적 의미는 거창한 시대적 상황이 아니라, 가정의 문제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심방이 <문전본풀이>를 구송하면서, 첩의 도덕적 행위를 강조했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문전본풀이>를 첩과 부인, 아들과 아버지라는 현실적인 대상으로, 그리고 현실적인 주거공간으로 그 관계의 의미를 비교해보자.
<문전본풀이>에서 성과 속의 관계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살펴보자. 먼저 성스러운 이미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여산부인과 녹디생이를 볼 수 있으며, 속된 이미지는 남선비와 노일저대귀일의 딸을 볼 수 있다.

속(俗)
=
노일저대귀일의딸+남선비
=
여성+남성
=

=남/녀, 성/속,안/밖의 균형
성(聖)
여산부인+녹디생인
여성+남성

이는 남녀신의 균등분배를 통한 [성/속]의 균형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안/밖]공간의 균형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좌정처를 중심으로 남성신과 여성신의 속성을 비교해 보자

남성신
=
남선비+녹디생인
=
정주목, 일문전
=
경계의신
여성신
여산부인+노일저대귀일의딸
부엌, 변소
장소의신

즉, <문전본풀이>에서는 여성신을 장소의 신으로, 남성신을 경계의 신으로 역할을 분담시키고 있다. 이는 남성과 여성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특별한 공간을 지키고 있는 여성과 그것을 보호할 의무를 가지고 있는 남성에 대한 의식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공간에 대하여 추가적으로 고려할 것은 녹디생이와 여섯째를 제외한 다섯형제의 공간적 상징성이다. 이 다섯형제는 풍수에 의한 방위의 개념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는 중심과 수평적인 네 방향을 지키는 경계의 수호자인 동청룡, 서백호, 북현무, 남주작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일곱 형제는 본풀이에 따라서 칠성으로 좌정한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런 방위개념으로 변한 것은 중세적 변이라고 할 수 있지만, 주거공간에 대한 벽사의 상징적 의미를 충분히 표현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마지막으로 간과하고 있었던 남선비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존재, 즉 이 신화속 등장인물의 유래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보자. 남선비의 아버지는 해만국, 어머는 달만국으로 소개되고 있다. 해와 달이라는 것은 음/양을 상징하는 말이다. 그리고, 남선고을과 여산고을이라는 것도 음/양을 상징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호칭은 전체적으로 음양오행이라는 우주의 운행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주거공간의 선험도식을 그려본다면, 아래와 같이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림. <문전본풀이>에서의 신화세계에서의 주거공간의 인식

즉, <문전본풀이>에서 드러내는 우리의 주거공간은 우주의 중심을 드러내고 있는 상징적 표현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것은 두 개의 켜를 가지고 수평적 확장을 함으로써, 주거공간을 중심으로 바라보는 세계를 단순히 [성/속]의 이분법적 대립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완충적인 하나의 켜를 추가적으로 상정하고 있음도 볼 수 있다. 이제 모든 신들은 대립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장소를 지키고 보호하는 신격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4. 마치며
통상 우리는 소설을 읽으면서 굳이 그것을 분석하고 해석하면서 이해하지는 않는다. 신화를 해석하는 것이 신화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더 어둡게 하고, 신화의 신성성을 해치는 일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화읽기를 다양한 해석의 눈으로 접근하려는 것은 신화의 이면에 감추어진 심연의 목소리의 마력 때문일 것이다.
신화의 해석은 그것을 ‘분석하고 밝힌다’는 차원이 아니라, ‘신화적 상상을 해 본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신화의 세계를 자유롭게 상상해보면, 우리집단이 가지고 있었던 고유의 가치와 문화적 배경에 대한 적절한 변명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신화를 읽어보는 것이다.
<문전본풀이>를 통해서, 수렵의 야생사회에서 농경의 문명으로, 그리고 농경의 문화에서 가부장적 사회로의 문명사과 문화사의 변화를 상상해보고, 각 문화사별 여성상의 특징을 추론해 보았다. 또한 고대의 혁명적 사건을 추론을 통해 녹디생인의 출현의 의미를 상상 해보고, 그 가운데에서 남성과 여성, 아버지와 어머니, 전세대와 후세대의 고민과 갈등을 추론해 보았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에 대한 관점이 여성을 장소의 신으로, 남성을 경계의 신으로 좌정케한 과정을 보여주고 있으며, 신들의 좌정처를 통하여 주거공간의 장소와 경계의 의미도 살펴보았다. 하지만 이 모든 추론의 과정은 결론적으로 선언할 수 있는 주장이라기 보다는 여전히 신화적 상상력을 기다리고 있는 많은 여지를 가지고 있는 독백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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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 Jeju
옛말에 '배는 짓고, 집은 사라'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집을 짓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저희는 홈페이지를 통해서 건축설계와 관련한 정보를 최대한 제공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집을 만드는데 저희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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