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디자이너와 엔지니어

04. 디자이너와 엔지니어 거리를 걷다보면 도데체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또는 재료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건축물을 자주 보게 됩니다. 점차 새로운 재료와 공법은 계속 쏟아지고 제가 직접 설계하면서 경험할 수 있는 건축물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새로이 등장하는 수 많은 재료와 공법을 아무리 노력해도 알 수 있는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아쉬움 때문에 가끔 산업전시회도 들러보지만 현장에서 직접 적용해보지 못한 재료를 쓴다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지요. 만약에 건축사가 자기도 잘 알지 못하는 신소재를 의뢰인의 집에 써보자고 한다면 그건 마치 건축사의 호기심만을 위해서 의뢰인의 집을 실험대상으로 쓰는 격이 되는 것이지요. 그랬다가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후회하게 된다해서 건축사가 책임 질 수 있을까요?

새로운 건축재료나 그와 관련된 디테일정보를 얻기가 어려울 때에는 대도시에서 설계하면서 대형 프로젝트를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이 부러워지기도 합니다. 만약에 건축사가 건물을 짓는 재료와 공법을 잘 모르겠다고 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요? 건축사에 대한 신뢰가 뚝 떨어지겠지요. 하지만 실제로 저는 새로운 건축재료와 공법을 죄다 숙지하지를 못합니다. 저 뿐만 아니라 대개의 건축사들이 그럴텐데 그것은 마치 의사가 좋은 신약이 나온 줄을 모르고 약효가 떨어지는 이전의 약으로 의술을 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왜 새로운 공법이나 재료의 등장이 건축사에게 전달될 수 있는 구조가 안 되어있는 것일까요? 혹시 그런 것을 몰라도 설계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어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재료와 공법의 결정을 설계단계가 아닌 나중에 할 수 있는 유연한 구조가 되어있기 때문일까요?

적절치 않은 비유일수도 있으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의사와 약사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네요. 어떤 병이든 치료하기 위해서 약을 처방하고 조제를 하는데, 무슨 약을 쓸지를 결정하는 권한이 의사에게 있어야 할까요? 아니면 약사에게 있어야 할까요? 환자가 결국 사용해야 할 약은 한가지인데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 전문가는 두 명이 있습니다. 두 전문가가 역할이 나누어지지 않는다면 분명히 권리와 책임에 대해서 분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제약회사의 입장에서도 누가 약의 사용을 결정하느냐에 따라서 홍보해야 할 대상이 달라집니다. 지금 제약회사는 약사를 만나러 갈까요? 아니면 의사를 만나러 갈까요?

자, 엘리베이터를 판매하는 회사가 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많이 팔기위해서는 건축사사무소를 찾아갈까요? 아니면 건설회사를 찾아갈까요? 어떤 엘리베이터를 쓸 것 인지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건축사사무소에 있을까요? 아니면 건설회사에 있을까요? 아니면 건축주에게 있을까요? 위의 환자를 위한 약을 결정하는 권한과 비교하면 다들 자기가 결정권을 가지려고 노력할 것 같지요? 하지만 건축에서는 다릅니다. 반대로 다들 자기가 결정권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왜냐구요? 그에 따른 책임이 무겁기 때문입니다. 엘리베이터라는 몇 천 만원이 들어가는 장비의 구입을 결정함에 있어서, 물론 그 기계의 성능의 책임과 관리는 엘리베이터 회사가 일차적이지만 잘못된 제품을 추천함으로써 지게 되는 부담 역시 작지 않은 것입니다. 때문에 설계사무소의 도면에는 특정의 제품을 지정해서 사용하도록 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특정의 제품을 지정했다면 ‘그와 동등 이상의 제품’이라고 명기를 합니다. 그 이유는 적용제품의 최종결정을 건축사사무소에서 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개의 건설사의 입장은 어떠할까요? 불행히도 국내의 대개의 중소규모의 건설사들은 건축사사무소의 도면을 공사용 도면으로 전환시켜서 현장에서 적용하려는 노력과 시도를 하는 경우가 매우 드믑니다. ‘아니 건축사사무소에서 도면을 그리면 집을 짓기 위한 도면작업은 다 끝난 것이 아닌가요?’라고 묻는 것이 지금 우리의 건설현장의 현실입니다. 사실은 건축사사무소에서 그린 도면을 건설사에서는 다시 체크해서 시공이 가능한 도면으로 변환을 시켜야 합니다. 그게 시공도면(shop drawing)라고 하는 것이며 엔지니어가 그려야 하는 도면입니다. 시공사에서는 공사를 정확하게 진행하기 위해서 모든 재료와 공법 등을 정확하게 적용할 수 있는 기술자의 도면을 그려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단계에서 제품도 정확히 지정되고 공법도 확인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현실은 근본적으로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를 정확하게 구분하지 않은 국내의 설계방식을 반영하며, 공학으로 이해되는 우리나라 건축과의 현 주소 때문이기도 합니다. 대학교에서 건축학과가 공과대학에 예속되어 있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그러하고 미국의 일부 대학들이 공과대학에 건축학과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건축계획 및 설계라는 분야는 공학이 아닙니다. 최근에는 대학교육과정에서 구조와 시공위주의 교육을 하는 건축공학과와 건축설계 위주의 교육을 하는 건축디자인과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건축설계와 공학의 차이에 대한 인식을 이제라도 반영하고 있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여전히 건축설계분야가 어떤 학문적 범주에 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견은 분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건축사사무소에서 공학적인 지식을 습득하기 어려운 것은 어쩌면 매우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건축사가 설계를 잘 하기 위해서 공학적인 기술을 다 이해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공학적인 기술을 다 이해하고 디자인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자동차 디자이너가 엔진의 작동원리와 자동차 부속의 구성 등을 모두 이해해야 한다는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물론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는 상호 보완적으로 업무를 진행해야 하겠지요. 하지만 그 두 가지를 완전히 정복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엔지니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전에 직원으로 근무하던 사무소에서의 경험이 생각나는 군요. 그때 제가 근무하던 사무실에서 두개의 쌍둥이 빌딩으로 된 오피스를 설계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두개의 쌍둥이 타워를 연결하는 통로가 필요하게 되었는데, 누군가가 이 공중통로를 엘리베이터처럼 위 아래로 움직이면 어떻겠는가 하는 제안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디자인 협력업체의 엔지니어팀은 좋은 생각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정말 도면으로 그려왔다고 하더군요. 교량과 같은 엘리베이터는 아직 만들어진 게 없으니까 그 아이디어의 기술적인 해결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태인데 말이지요. 사실 그 팀은 국내의 팀이 아니라 외국 팀이었어요. 그때 그들이 그려온 도면을 보면서 팀원들이 다들 놀랬다는 이야기를 들었지요. 어떻게 건축사사무소에서 세상에 아직 없는 제품을 도면으로 그릴 수 있는지 그 기술력에 놀란 것이죠.

그런데 오히려 그 이후에 제가 계속 고민하였던 것 중 하나는 기술적으로 모른다고 디자인을 할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점이었어요. 디자인하는 사람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안되는 것인가 하는 것이죠. 실제로 건축사는 집을 짓기 위한 기술적인 모든 것을 이해하면서 도면을 그리지 않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너무나 빠른 변화들 때문에 최신의 공법과 재료들을 이해하면서 도면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점차 많아졌습니다. 만약에 새로 나온 제품이나 공법이 있다면 그것을 건축사가 그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그 제품을 판매하고 싶은 쪽에서 기술지원을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건축사는 최소한의 설치 가능여부를 확인하면 되는 것이죠.

예를 들어 엘리베이터의 경우 예전에는 기계실이 옥상 꼭대기에 반드시 있었는데 최근에는 기계실이 필요 없는 엘리베이터를 많이 사용 합니다. 서로 장단점이 있을텐데 분명 처음 이 제품이 나왔을 때에는 신제품의 장 단점을 확신할 수가 없어서 설계자가 적용하는데 망설일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생소한 신제품의 경우에는 설계자가 먼저 추천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도면에는 항상 필요시 다른 제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되어있으며, 건설사에서는 다른 더 좋은 제품이나 공법이 있다면 변경을 유도 할 수 있는 기술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도면대로 시공했으니 우리 회사는 할 바를 다했다고 하는 건설사는 새로운 기술의 적용을 가로막는 불행한 우리의 현 주소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시공사는 도면대로 시공하는 시공자가 아니라 디자인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기술지원을 할 수 있는 기술자입니다.

엘리베이터에 대해서 더 생각을 해 봅시다. 위와 같은 내용들은 디자인의 문제가 아닌 기술적인 문제들입니다. 먼저 디자인 단계에서도 어느 제작사의 몇 인승의 어떤 시스템의 엘리베이터를 선택할 것인가를 정해야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수 있는 피트공간의 크기가 결정이 됩니다. 만약에 엘리베이터를 바꾸고 싶다면 레미콘을 엘리베이터 피트에 붓기 전에 판단을 해야 합니다. 골조공사가 일단 시작되면 엘리베이터의 변경이 매우 힘들어집니다. 건설사의 발 빠른 도면 검토가 필요한 이유가 그런 이유입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창문과 문을 설치할 때도 발생합니다. 지붕재료와 외부벽면의 재료를 선택할 때에도 여전히 기술적인 문제들이 미리 검토되어야 합니다. 공사하면서 바꾸어도 늦지 않은 재료들도 있지만 미리 정해놓지 않으면 바꾸기 어려운 재료들도 있습니다. 모든 재료들은 그것을 설치하기 위한 사전의 조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술자들이 디자이너의 도면을 검토하고 조정해야 할 부분은 너무도 많습니다. 그래서 디자이너가 그린 도면을 가지고 시공을 할 기술자는 도면대로 시공하는데 문제가 없는지 그리고 더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방법은 없는지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기술자들이 그런 기술 검토를 하지 않으면 오히려 기술력이 거의 없는 건축사사무소에서 엔지니어 도면에 근접하게 도면을 그리려고 하게 되고, 그래야 잘 그린 도면으로 치부됩니다. 그래봐야 기술자가 아닌데 말이지요.

도면은 집을 짓기 위한 계획이고, 계획은 실천하는 과정에서 수정이 될 수 있습니다. 반드시 도면대로 지어져야 된다는 주장은 사실 매우 집을 짓는 과정에 필요한 변수를 생각하지 않은 주장이지요. 도면에 있는 재료를 변경하기위해 도면과 달리 시공하겠다는 주장은 언제든지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그게 합리적인 주장일 때 그것을 쉽게 수용하고 적용할 수 있는 시스템도 돼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기술적인 해법이 아닌 디자인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는 제안을 누가 하더라도 판단 권한은 건축사에게 주어져야 합니다. 엉뚱하게도 공사의 편이만을 위해서 디자인을 변경해 달라고 건설사에서 요청한다면 그것은 좋은 기술자의 태도가 아니지요.

최근에 제가 감리를 하고 있는 현장에서 외장재가 징크로 되어있는 것을 화강석으로 바꾸어달라는 시공자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시공자의 주장은 해안가에 짓는 건물은 바람을 많이 받으므로 징크가 바람에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디자인한 설계자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제주도 해안에는 징크로 마감한 건물이 많은데 그것들이 아직 무사한 것은 잘 시공하면 문제없을 것인데 그런 요청을 하는 이유는 시공하기 불편하기 때문으로 생각했습니다. 물론 둘 다 주장에는 합당한 이유와 경험적 지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자가 단지 시공상의 편이를 위해 디자인을 변경해 달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요구입니다. 반대로 디자인을 변경하지 않는 경우인데 기술적으로 더 뛰어난 공법이 있다면 그것을 제안해서 변경할 수 있는 것은 기술자의 역할입니다. 해안에 위치한 건물의 징크마감이 견고하지 못해서 하자가 생길 것으로 여겨진다면 도면보다 더 강하게 바탕의 틀 작업을 하겠다고 하거나 징크의 조립방향을 변경하여 강성을 더 높일 수 있다는 것을 검토하거나 하는 등 말입니다.

분명 설계자는 그 건물을 디자인하기 위해서 수개월을 고민하였을 것입니다. 때문에 징크라는 소재를 외벽에 선택했을 때에는 그 재료에 어울리는 외형도 고려하였을 것입니다. 그런 재료를 화강석으로 바꾼다는 것은 건물의 디자인을 전체적으로 다시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아마 연애하던 시절 연인을 만나러 가려면 남방셔츠와 바지의 색상을 맞춰 입고 모자는 어떤 것으로 쓸까하고 전신거울 앞에 섰던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바지와 남방셔츠 그리고 모자, 안경 이런 것들은 독립적이지 않습니다. 지붕을 징크로 설계했는데 그것을 비용의 이유로 기와로 바꾸어달라고 하면 설계자들이 곤란해 하는 이유가 그런 것입니다. 지붕을 기와로 할 때의 건물 형태와 분위기가 징크로 마감 하였을 때의 형태와 분위기와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디자인의 문제이지요.

이런 식의 논쟁은 공사현장에서 많이 일어납니다. 왜 도면대로 시공하지 않고 현장에서 바꾸려고 하는 일이 일어날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근본적인 원인은 도면은 계획이고 현장은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기술적인 문제, 비용의 문제, 혹은 대지여건의 문제 등이 구체화되는 것은 현장에서입니다. 계획을 세울 때 가장 현실에 가깝게 구상하면 좋겠지만 쉽지 않습니다. 건축사는 상상의 공간을 도면과 수치로 표현하는 일을 한다면 기술자는 도면과 수치로 표현된 공간을 구체적인 사물로 만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건축사가 도면으로 그리는 게 귀찮다고 의뢰인의 상상과 꿈을 포기하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기술자는 시공하기 불편하다고 디자이너의 도면을 포기하거나 바꾸라고 쉽게 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설계에는 디자인설계와 기술설계가 있습니다. 대개 우리나라의 건축사사무소에서의 업무는 그것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지 못합니다. 건축사는 사실 디자인설계를 하도록 교육받은 사람이지 기술설계를 하도록 훈련받은 사람은 아닙니다. 그래서 종종 건축사가 그런 기술적인 것도 모르냐는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술적인 것을 건축사가 이해해야만 설계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설계의 기술적인 부분을 현장에서 충분히 지원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한동안 목조주택을 설계하지 않았습니다. 디자인을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관리 감독할 수 있는 기술적인 지식이 제게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목조주택에 대한 기술적인 지식이 없다고 해서 설계를 못한다 말해야 하는 현실이 사실 저는 매우 불만스러웠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디자이너가 기술적인 지식까지 전부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에서는 현장에서 확인하기 어려운 기술을 적용해서 설계하는 것이 제게는 부담스럽고 무책임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시공기술자 중에는 도면대로만 시공하면 자기는 책임이 없다고 변명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현장에서의 기술적인 문제는 시공자가 책임질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현실과는 좀 다른 이야기이지요.

디자인설계와 기술설계가 명확히 구분되어있지 않은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는 건축사도 기술적인 부분을 어느 정도는 책임지고 확인할 수 있어야 하겠지요. 그래서 때로는 창호를 선택하고 도면화 할 때 어떤 제품이 좋은지 또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 지를 놓고 고민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건축사 고유의 업무는 그런 기술적인 지원이 아닙니다. 건축사가 설계경험이 많다고 해도 기술적인 지식을 습득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기술적인 문제는 역시 시공자가 전담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쉽습니다.

그러면 디자이너인 건축사가 잘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를 들어보지요. 식탁과 텔레비젼과 침대를 선택하는 것도 집의 분위기를 만드는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어떤 식탁을 설치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건축사의 일일까요? 하지만 그것들은 공사하면서도 얼마든지 선택을 하거나 바꿀 수 있는 요소이며 굳이 건축계획을 하면서 어떤 제품을 써야 할지까지 고민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크기의 식탁을 구입할 것인지를 정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식탁의 크기는 그것이 위치한 공간의 크기와 관계가 있으며, 주방기구의 배치와도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건축사와 의논해서 미리 결정할 것은 텔레비젼을 어느 위치에 놓도록 할까하는 것입니다. 그 위치에 따라서 콘센트의 위치 전등의 위치가 달라지며 현관과 주방의 위치도 영향을 받습니다. 텔레비전이야 가볍고 이동이 가능한 것이니까 나중에 정해도 되는것 아닐까하고 생각했다가, 놓고자 하는 자리에 콘센트도 없고 통신선도 없다면 낭패가 아닐 수 없지요. 침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침대의 위치가 안방 화장실과 드레스룸의 위치에 영향을 줍니다. 침대의 위치 정도야 현장에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막상 침대의 위치를 바꾸는 것은 다른 공간의 배치에 영향을 주는 것이어서 변경이 쉽지 않습니다. 화장실 입구의 스위치 하나 때문에 붙박이장을 설치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무엇을 건축사와 의논해야 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건축사의 디자인이라고 하는 것이 제품디자인과 다른 점이 그런 부분인것 같아요. 공간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시각적으로 예쁘게 만든다는 의미가 아니라, 공간활용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구상한다는 의미입니다.

보통 계획한다고도 하고 프로그램 한다고도 하는데 건축사는 무형의 생활패턴들을 형상화하는 일들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러면 건축사와 의논해야하는 문제는 주로 어떤 것일까요? 정리하자면 건축사와 논의하고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는 시각적으로 미적인 것 보다도 주로 공간과 형태의 계획적인 측면일 것입니다. 공간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생활패턴과 기능을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할 것인가 하는 등의 문제입니다. 집을 어떻게 형상화할 것인가.

건축사가 디자인설계를 하기 위해서 건축사와 의뢰인은 많은 대화가 필요합니다. 최근에 150평 규모의 단독주택을 설계한 적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제가 그렇게 큰 집에서 살아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설계했던 주택들이 대개 30평정도의 규모였고 저 역시도 20평 내외의 평범한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라이프스타일이라고 하는데 건축사가 의뢰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이해하지 못하면 설계하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때문에 의뢰인은 건축사에게 자신의 생활방식을 친절하게 잘 알려주어야 합니다.

자신에게 맞는 집을 원한다면 건축사와의 대화에서 자신이 생각하고 원하는 삶의 방식과 형태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이란 개개인이 다 다르게 추구하는 바가 있을 수 있고 건축사는 아무리 많은 주택을 설계하였어도 개개인의 개성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때문에 환자가 자신이 아픔을 의사에게 잘 이야기 해주어야 적절한 처방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의뢰인도 자신이 원하는 바를 건축사에게 잘 이해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절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간혹 건축사에게 자신의 주장을 설득하려고 애쓰는 경우를 만나게 됩니다. 대화는 서로의 주장을 펼치고 설득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문제를 가지고 둘이서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서로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 대화입니다. 대화는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 다음에 건축사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를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건축사 역시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듣고 고민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Archi Jeju
옛말에 '배는 짓고, 집은 사라'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집을 짓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저희는 홈페이지를 통해서 건축설계와 관련한 정보를 최대한 제공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집을 만드는데 저희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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