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면을 중요하게 여겨야 할 세 번째 이유는 그것 자체가 시공자와의 계약서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많은 계약서를 작성한다. 냉장고를 살 때도 그리고 자동차를 사거나 토지를 매입 할 때도 작성한다. 나중에 구입한 물건에 문제가 있을 때는 계약서의 조건에 문제가 없었는지를 따지면서 반환 혹은 반품을 요구하게된다. 계약서는 그렇게 문제가 있을 때를 대비해서 서로 작성하는 것이다.
공사계약은 도면을 근거로 시공사가 시공할 재료와 물량을 확인하여 공사견적서를 작성하여 이루어지게 된다. 만약 견적과정에서 도면에 명시되어있는 내용을 임의로 변경하여 견적을 했다면 공사과정에서 도면 기준으로 시공해야 한다고 요구할 수는 있다. 도면의 불합리해 보이는 부분을 정정하기위해서는 시공사도 도면과 견적내용이 어떻게 다른지를 ‘견적조건’으로 명기하고 건축주에게 설명 해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는 업체가 있을 수 있으므로 건축주는 시공자에게 도면과 견적내용이 다른 부분이 있는지를 확인 받는 것이 좋다.
공사계약서인 설계도면은 설계자의 디자인 의도를 시공자에게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도면은 건축주에게 이 건물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설명해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시공자에게 설명해주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건축주의 눈에는 도면이 이해가 안되고 복잡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설계도면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표현한 친절한 안내서는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필자가 설계한 공사현장에서의 일이었다. 실내의 벽부분을 목재틀에 석고보드 두 겹으로 시공하도록 도면을 작성했는데 목재틀 없이 석고보드 한 겹으로 시공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왜 도면대로 하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시공자가 견적을 낼 때에는 석고보드 한 겹으로만 견적하였다는 것이다.
이런경우에는 두 가지가 고민이 된다. 원칙대로라면 전부 재시공하라고 해야 할 판인데 시공자도 견적을 성실하게 낸 것이라고 하면 금액피해가 클 것이라는 걱정이다. 다른 하나는 당연한 것이지만 설계자가 원한 공사내용과 달라지면서 마감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걱정이다. 게다가 건축주들은 괜히 현장에서 분쟁이 생기는게 싫어서 그대로 공사를 진행했을 경우에 어떤 문제가 있느냐고 오히려 건축사에게 반문을 한다. 일이 벌어지고나서 정정하려면 여러 가지 고민으로 난감해진다.
일단 공사가 시작된 후에는 시공자와 도면을 가지고 시비를 가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도면을 살펴보고 집을 지어주는 시공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건축주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자기집이니까. 한번 짓고 나면 되돌릴 수 없으니까. 미리 살펴보고 미리 확인을 받아두자.
누구나 상황이 불리할 때는 도면이 그렇게 된 줄 몰랐다고 말을 한다. 미안한 일이지만 막상 공사가 시작된 후에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은 잘못된 공사를 되돌릴 수 있는 좋은 변명이 아니다. 그래서 건축주도 도면에 있는 내용들을 잘 숙지할 필요가 있다. 도면과 견적서를 찬찬히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