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3월 26, 2023

꿈과 현실

건축주 가운데에는 생각하는 평면을 직접 그려서 찾아오기도 하고 드물지만 모형까지 만들어 오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건축사와 설계를 진행해보면 혼자서 그려본 도면이 현실에서 지을 수 있는 집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당연하다. 낙담하지 말자.

건축사는 공간적인 꿈을 현실의 문제와 만나도록 해서 꿈을 이룰 수 있는 효율적인 길을 모색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 꿈의 오류를 찾아내어 일부 혹은 전부를 포기하도록 권유하기도 한다.

설계를 한다는 것은 생각을 숫자로 환원시켜 표현하는 것이다. 공간에 대한 꿈을 숫자로 그려 나가는 과정이 쉽지 않다. 안타깝지만 숫자로 환원할 수 없는 꿈은 포기하라고 권유하는 것도 건축사의 중요한 업무이다. 자기 생각을 건축사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흥분하지 마시길. 건축사도 그런 꿈을 꾸다가 수십 번을 좌절하고 포기해본 사람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숫자를 자본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냉정하지만 그것도 현실이다. 그런데 현실에서의 숫자는 수학에서의 가감법과는 조금 다르다. 마치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이야기처럼 같은 일을 했는데도 비용이 다르게 산정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예를 들어서 오른쪽에 있는 물건을 왼쪽으로 옮겼다가 위치가 맘에 안들어서 다시 오른쪽으로 옮겨놓으면 비용이 발생하는가? 당연히 발생한다. 물건은 원래의 제자리에 있는데 그것을 옮기느라고 일을 했기 때문이다. 잘못된 지시에 의한 후회는 반드시 금전적인 손실을 만들어낸다.

씽크대를 주문할 때 씽크볼의 위치가 맘에 안들어서 왼쪽으로 옮기고 왼쪽에 있던 전기레인지를 오른쪽으로 바꾸어서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면 이분은 무슨 실수를 하였을까? 씽크볼의 위치는 수전과 배수구의 위치와 관련이 있다. 그러면 현장에서는 설비기사를 다시 불러서 수전과 배수구의 위치를 조정해야 할 수도 있다. 전기레인지는 전용전기선을 사용해야한다. 역시 전기기사를 불러서 전용콘센트의 위치도 바꿔야할 수도 있다. 그리고 작업대의 위치가 바뀌었으므로 등기구의 위치도 바꿔야 할 수도 있다. 이러면 단순히 씽크대를 바꾸려고 했던 일이 대대적인 추가공사비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계획은 모두 사전에 이루어져야한다.

생각을 공간계획에 반영해야 할 시점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현장에서는 계획한대로 공사가 진행되는지를 감시하는 일만을 해야지 현장에서 설계를 하면 예상치 못한 일들이 연쇄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물론 사람이 하는 일이라 현장에서 계획을 수정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충분히 검토한 상태에서 약간의 변경을 하는 것과 현장에서 떠오르는 생각대로 하는 것과는 천지차이가 난다.

구체적인 공간으로 꿈을 그려가는 과정은 반드시 건축사의 경험과 같이하는 것이 좋다. 같이 해보면 꿈을 그림과 숫자로 표현하는 일이 재미있기도 하고 점점 꿈과 현실의 간극이 좁혀지고 있음이 느껴지기도 한다. 단 그 계획의 시간은 건축허가를 받기 전에 끝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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