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 생활문화사(외도동 연대마을)

길의 생활문화사(외도동 연대마을) – 제주도 서쪽 외도동에 속한 연대마을은 전형적인 해안마을이다. 마을 안에는 해안선을 따라서 마을을 관통하는 활꼴형의 단 하나의 길이 있고, 그 길의 정점에 이 마을 이름의 원인이 된 조부연대가 놓여있다. 연대마을은 또한 길을 따라서 마을이 형성된 전형적인 선형(線形)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릴 때 이 동네에 대한 풍수지리적인 이야기를 들은 것은 없나요?] 이 동네는 길이 외곬 길이난 지넹이 발로 기대 엉 이 동네는 큰 사람이 안난다 해나서 옛날엔. 이 길이 외길이고 허난. 지넹이가 허연.. (겐디. 아기들은 최고로 잘 키워진댄 허는디. 아이들은 다섯 살 여섯 살만 되도, 텔레비전 어신디 바다에서만 살아. 경해도 바다에 빠졍 죽었잰 허는 아기가 어서) 애기들은 잘 키워져. 병신 없고. 겐디 이동네 사람들은, 본토배기 사람들은 절대 .. 장애인이 안나와. [그런데, 큰사람이 안난다고 하면서도 그걸 받아들이시네요?] … 근데 요새사람들은 나가서 사난 다 큰사람 돼서. 잘 허영 살아.
<박00, 여, 1936년생, 외도2동> 2014.06.03

17-연대마을기
연대마을길

길을 따라서 마을이 형성 된 일본 농촌의 선형마을을 보면, 집 뒤편으로는 드넓은 농경지가 펼쳐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선형마을의 형태적인 특징은 글자 그대로 하나의 길을 따라서 집들이 포도송이처럼 달려있는 모양을 말하는 것이지만, 이러한 형태가 가능한 것은 뒤로 확장할 수 있는 공간적인 여유가 없거나 혹은 뒤편의 공간을 농경지와 같은 생산 활동의 근거지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는 계곡이나 해안지역과 같이 지형적 여건이 선형마을의 형태를 유도하고 있는 경우이며, 후자의 경우는 일본의 농촌마을처럼 배후의 농경지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주로 농경사회를 이루기는 했어도 배산임수를 지향하는 마을의 구조는 선형으로 성장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연대마을의 선형적 구조는 기본적으로는 해안선의 형태를 따른 것으로 이해된다. 마을의 주된 길의 형태가 해안선의 형태를 그대로 닮아있다는 것이 그러한 추측을 하게한다. 혹 해안마을은 해안선을 따라서 형성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하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몇 개의 마을만 관찰해 보아도 그것이 그리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해안마을인 북촌과 동복만 살펴보아도 해안선과 마을길의 형태는 별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이 두 마을은 길이 해안선을 따라서 나 있기 보다는 해안변에서 내지방향으로 길들이 퍼져나가면서 연결되는 형태를 하고 있다. 때문에 선형구조는 나타나지 않는다.

18_북촌리 19_동복리

실제로 제주도의 북부지역의 마을을 보면, 해안을 따라 선형의 구조를 보이는 것은 주로 서쪽지역에서 많이 보인다. 대표적인 형태는 하귀2리의 경우일텐데, 이 지역은 해안의 뒤편으로는 가파른 경사지이기 때문에 지형적인 이유가 마을을 선형 구조로 만들게 되었을 것이다.

20_하귀2리 21_내도동

지형적인 배경이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선형으로 마을이 발달한 경우로 내도동 마을을 예를 들 수 있다. 일주도로변으로도 당연히 집들이 들어서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연마을이 해안선을 따라서 횡적으로 성장하는 형태를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면서 해안선을 따라 들어선 집들의 배후에는 농경지들이 펼쳐져 있다.

해안선을 따라서 길이 발생하는 경우 기본적으로 지형적인 상황이 요구하는 경우 매우 분명한 원인이 된다. 하지만 지형적인 이유가 아닌 경우에도 해안을 따라서 길을 내었다면 무슨 이유일까. 연대마을은 ‘마을의 변천과 생활문화’에서 마리못에서 마을이 시작되어 서서히 해안을 따라 확장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그러면 지금 보는 것처럼 해안에서 일정 거리를 두고 길을 내고 길의 좌우로 집을 지어가면서 마을 확장이 이루어진 것일까? 필지의 형태를 보면 매우 불규칙하여서 신산리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적정리 이전부터 집을 짓고 살았던 오래된 거주지의 형태로 보인다.

연대마을 지적선과 1984년 소유현황
연대마을 지적선과 1984년 소유현황

거주의 시점을 가늠하기 위하여 몇 개 필지의 토지대장을 확인해 보았다. 그 결과 마을길에서 바닷가 방향의 토지들은 애초에 개인이 소유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위 지도에서 [國]이라고 표시되어 있는 지번은 1984년에 분할되면서 국가 소유로 등록이 된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다가 점차 개인의 소유로 전환이 되었다. 국가소유의 토지라는 것은 대개 공유수면이었다는 의미로 보아도 될 것이다. 반면에 [人]이라고 표시되어있는 지번은 일제강점기에 소유권이 개인으로 등록 된 것으로 확인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쪽에는 지번이 어서서. 우리 와서 얼마 안 이성 분할 받았다고. [국유지로 되 이서낫주게] 게난. … 공유수면.. 경해가지고 살던거를, 나중에 분할을 받았지. [공짜로 받았나요?] 아니, 돈 다 물멍. 나중에야. [그러면 공유수면에 살던 분들은 다른데서 이사 오신 분들인가요?] 아니 아니, 이동네 사람들인데, 땅을.. 자기대로 공유수면을 메워가지고 집을 지어 살다가, 건축법이 생기면서, 사십 몇 년도에 해가지고, 시에서 분하를 받아가지고, .. 게난 여기는 본래 지번이 있는 거고, 저기는.. 하하… 바닷가 주변은, 해변은 메워그네.
<현00, 여, 1958년생, 외도2동 > 2013.09.10

게난 바닷물이 여까지 들어와나서. 요 집이도 다 매립해서 지섯고. 우리 70년도 71년도.. 동귀 공장 옆의 모래. 지어당 여기 길 포장 다 헌거라. 우리 어깨로. (한집이 한 열발씩 맽겨부러..) 이 앞이 이거 몬딱 바다라. 맽겨노민 한집에 돌 시못.. 별디 다 댕겼져. 게난 식구 한 사람들은 막 싣꺼 와불민 식구 어신사람들은 막 먼디 강.. (자갈이고 모살이고.. 등으로 지멍 몬딱 이거 다… 그러고 마을회관도 원래 저거주게. 저것도 우리 등땡이로 날르멍 지슨거주게. 71년도가 새마을운동 헐 때게.)
<박00, 여, 1936년생, 외도2동> 2014.06.03

마을길에서 바닷가 쪽에도 인가는 있었지만 그곳은 본래 주인 없는 땅이었다고 한다. 즉 공유수면을 점유해서 집을 지었다는 것인데 최소한 강점기에는 집이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박재숙씨에 의하면 공유수면을 매립한 것이 새마을운동 시기라고 하니까 1970년대 초에 매립공사를 했을 것이나 1984년때 까지는 소유권에 해당하는 지적정리를 하지 않았다가 그때 되어서야 지적정리를 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서 본래 마을길의 바깥쪽인 바다방향의 집들은 본래의 마을 공간에는 없다가 확장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 연대마을의 길은 지금처럼 집들로 해서 바다가 막혀있는 길이 아니라 내지측으로는 집들이 있지만, 바다 쪽으로는 해양으로 열려있는 해안길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집을 지을 수 있을 만큼 너른 땅을 왜 처음에는 택지로 이용하지 않고 남겨두었을까. 이는 앞서 ‘마을의 변천과 생활문화’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바람과 파도의 영향 때문에 해안길 건너편 바다 쪽은 택지로 기피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마을은 빌레를 방패삼아 해안과는 일정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집들 뒤로는 농사지을 수 있는 약간의 농경지를 배후에 두고 있었다. 이는 앞서 보았던 내도동 마을의 공간구성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약간의 부담은 있지만 연대마을의 구성과 변화를 통해서 해안마을의 형성과 성장에 대한 단편적인 정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첫 번째는 파도의 영향을 덜 받을 수 있도록 빌레를 방패삼아 마을의 입지를 선정한다는 것이다. 빌레뿐 아니라 여가 있는 곳이 마을의 입지로 더 선호되는 것도 그런 이유로 볼 수 있다. 연대마을의 본래 지명으로 불린 이름이 ‘너븐여’였다는 것은 그런 지형적 특징을 반영한다. 두 번째는 해안을 따라 자연스럽게 길이 형성되지만 해안 길에서 집들은 바다쪽이 아닌 내지 쪽으로 짓는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해안을 따라 어느 정도 집들이 선형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내지 쪽으로 농경지를 확보할 수 있는 잇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네 번째로 마을이 점차 해안방향으로 계속해서 커지기 어려운 것은 바람을 피할 수 있는 해안이 공간적으로 한계가 있고 용천수와 포구를 중심으로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정 규모이상으로 마을이 커지면 그 확장은 해안방향으로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점차 내지 측으로 확장하게 된다.

물론 이는 제주의 해안마을의 발생과 성장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가정이다. 단편적인 조사를 통해서 해안마을의 성장을 설명하려는 것은 과욕일 것이다. 하지만, 매우 단순한 연대마을의 길의 구조는 해안마을이 성립되기 위한 기초적인 구성요건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는데 매우 유익함을 주고 있다.


아키제주 건축사사무소, Archijeju Architects, Jeju Korea

Archi Jeju
옛말에 '배는 짓고, 집은 사라'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집을 짓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저희는 홈페이지를 통해서 건축설계와 관련한 정보를 최대한 제공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집을 만드는데 저희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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