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3월 26, 2023

기획

기획은 집을 구상하기 위한 맨 처음의 과정으로 ‘과연 내가 지금 집을 지으려고 하는 생각이 타당한가?’를 물어보는 시간이다. 가끔 농담처럼 계획의 실패는 용서될 수 있지만, 기획에서의 실패는 용서되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특히 상업적인 용도의 건축을 할 경우에 기획이라는 것은 사업의 성사를 가름짓는 고민의 시간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그보다는 덜 할지 몰라도 살림집의 경우에도 기획은 중요하다. 집을 짓는다는 행위 자체가 매우 많은 비용이 요구되는 일이기 때문에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취미생활처럼 접근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면 건축주가 생각하는 기획이 제대로 된 것인지를 건축사에게 물어봐야 할까? 아니면 건설사에 물어볼까? 어떤 사업을 구상하든지 가장 중요한 기획을 제 3자인 누구에겐가 물어본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심지어 기획이 제대로 되어있는지를 건축사에게 묻는 것이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건축사도 건설업자도 일을 성사시키려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묻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전문가들을 찾아가면서 의견을 들어봐야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전적으로 의존하지는 않는 게 좋다. 최종적인 판단은 건축주의 몫이다.

기획보고서라는 것이 ‘할 필요가 없는 사업’으로 결론내는 일이 거의 없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옆에서 ‘한번 해 봐봐.’라고 꼬드기는 말에 넘어가지 마라. 정작 필요할 때 자금이 아쉬운 건 건축주뿐이다. 준비가 덜 되었다는 판단이 설 때 과감하게 중단하는 것도 정말 훌륭한 기획이다. 집을 짓겠다는 결심을 ‘설마 어떻게 되겠지.’하는 마음으로 시작하지 마시라.

최근에 은퇴 후에 제주도에 와서 살고 싶다고 하면서 땅을 구입하신 분이 찾아왔었다. 상당히 시내와는 떨어진 외진 곳이어서 수도와 전기를 끌어서 공사를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집을 짓기 위한 법적인 요건들은 만족시키고 건축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집을 짓는 것을 포기하였다. 건축허가를 받고나서 가족회의를 한 결과 가족의 대부분은 연고가 없는 제주도에서 사는 것도 걱정인데, 주변에 아무런 시설이 없는 외진 곳에서 지내기가 두렵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가족회의를 하였다면 굳이 그 땅을 매입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내와 동떨어진 경관 좋은 곳에서 펜션형 숙박업을 하고 싶다고 찾아오는 분들이 있었다. 대개는 필요한 직원 수와 객실 수에 따른 수익과 지출 정도만을 가지고 투자여부를 판단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해 본 사람은 안다. 외진 곳에 있는 사업장에서 직원 하나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근처에 편의점 하나 없다면 손님들이 얼마나 불편해하는지를. 그에 따른 부가비용에 대한 짐작을 경험 없이는 잘 모른다. 기획은 건축사를 만나기 전에 이미 꼼꼼하게 했어야한다. 기획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설계를 해야하는 건축사는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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