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지으려고하면 주위에서 다양한 조언을 듣게 된다. 다들 집을 지으면서 겪었던 어려움을 다시 겪지 않았으면 하고 이야기를 해 주시는 분들이다. 진정 고마우신 분들이다.
제주의 속담에 ‘배는 짓고 집은 사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집을 짓는 일이 쉽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건축에 관해서는 일반인들의 조언을 듣기보다는 건축사에게 먼저 조언을 구하고 의지하기를 권한다.
일반인들의 경험은 어쨌거나 단편적인 경험일 가능성이 높다. 일반인들이 집을 짓는 과정을 다양하게 경험하기는 어렵다. 집을 낮게 지었더니 비가 들이칠 때가 걱정이고 집을 높게 지었더니 나이 드신 노모의 거동이 염려된다. 이렇게 집은 하나의 시선만으로는 좋고 나쁨을 평가할 수 없다.
필자의 사무소가 있는 제주시는 시원스러운 바다가 북쪽에 있다. 이런 제주시 해안마을에 설계를 할 때는 늘 고민스럽게 문의하는 내용이 있다. ‘거실의 창을 바다가 잘 보이는 북쪽으로 할까요? 아니면 햇볕이 잘 드는 남쪽으로 할까요?’ 라는 질문이다. 어느 선택이 옳은 선택일까? 이러한 내용을 주위에 일반인의 조언을 구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결국 스스로 원하는 집은 어떤 집일까 고민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 과정에 건축공간의 장단점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려면 그건 건축사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건축사는 공간을 다루는 전문가니까.
건축주는 집을 구상하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 실질적인 책임자이고 권력자이다. 건축주가 주위의 서투른 조언에 흔들려서는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없다. 건축주의 판단이 흔들리면 건축사도 같이 흔들린다. 건축사 역시 자기 집을 구상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주의 집을 구상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경험많은 건축사라고 해도 건축주의 의중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언제 이런 권력을 쥐어보겠는가. 자신있게 자신의 권력을 행사해도 좋다. 다만 어리석은 독재자의 모습이 아니라 민주사회의 의장과 같은 모습이기를 바란다. 위정자는 스스로 모든 분야의 지식을 갖고 있을 필요는 없다. 다만 좋은 참모를 곁에 두고 전문가의 의견을 들을 준비는 되어있어야 할 것이다. 집을 구상하는데 있어서 건축사는 그런 권력자의 가장 가까운 참모이다.
건축사가 집을 구상하는 데에는 전문가라고 한다. 그래도 결정권자는 아니다. 아무리 능력있는 건축사라고 해도 건축사는 제안을 할 뿐이지 결정을 하지는 못한다. 좋은 집은 흔들리지 않는 건축주의 의지에서 나온다. 건축사의 제안을 잘 들어보고 ‘그래 이게 좋겠어.’라고 하는 건축주의 한마디가 최종적으로 집의 방향을 결정한다. 건축사에게 설계를 맡겨놓고 여행가지 마시라. 그러면 설계는 중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