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디자인

공공디자인 우리의 공공디자인은 무엇이 문제인가?

공공디자인. 지난 3일에는 도청에서 ‘공공디자인’이라는 주제로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저도 그중 한 파트를 맡아서 발표를 하게되어서, 공공디자인이 나은 방향으로 가려면 어찌해야 하는 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순수예술이 아닌 상업적인 디자인을 하면서, 공공성을 운운한다는 것이 우스운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해 전문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반성하기 기획할 수 있는 시간이기를 기대해 보았습니다. 이미 이름이 많이 알려진 승효상 선생님도 오셨구요. 서울시의 도시공간개선단장님의 발표도 있었습니다. 제가 발표했던 내용의 핵심은 공공디자인이라는 것이 발주의 주체와 사용자와 그것을 만드는 디자이너의 인식의 차이가 좋은 디자인을 만드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내용과 그것이 잘 네트워킹이 되어야만 좋은 디자인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여서 식상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 기획에 대한 불만도 있었습니다. 아는것과 실천하는 것의 차이는 너무도 큰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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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공공간 및 공공디자인의 현주소

일전에 이동식 주택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관련 업체에게 공장형 주택을 잘 디자인하면 좋지 않겠는가 물어본 적이 있었다. 뜻밖에 우리의 환경에서 그러한 것을 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 그는 전깃줄을 이야기 하였다. 전깃줄과 가로에 놓인 신호등이 이동식주택의 규모를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제야 외국의 대부분 신호등이 가로로 배열하지 않고 세로로 배열되어 있는 장점을 이해 할 수 있었다.

세상의 모든 사물들은 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분업화를 주장하고 제각기의 전문분야를 지향하는 동안 공공의 사물들은 기형적인 형태로 변하고 있었다. 세상은 분리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공의 건축물 뿐 만이 아니라 전깃줄, 간판, 가로현수막, 클린하우스 등 사실은 전문가가 개입되지 않는 공공 시설물은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 도시는 어지러운 상황이 되었는가? 실은 디자인을 논하기도 전단계의 상황들조차 정리가 되지 않았다. 쉽게 말하자면 청소도 안 된 집안에 벽지나 커튼을 멋진 것으로 교체해 봐야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최근에 한수리 동그란 물통을 보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제주해안의 물통은 전통사회에서 대표적인 공공공간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서 물을 긷고, 야채를 씻고 빨래를 하고, 틈을 보아서 몸을 씻고는 하였다. 그러한 행위가 있고, 그 행위를 위한 적절한 구상을 하였고 그게 제주마을의 풍경이 되었었다. 지금 개보수 된 동그란 물통의 형태가 어색하고 충격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무엇이 이러한 변질을 가져오게 하는 것일까? 여기서 물통의 형태를 어떻게 디자인하는 것이 옳은가하는 점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공공공간을 구상할 때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유효하고 적절한 결과물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의 시스템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공공환경이 좋아질 수 있을 것인가? 실력 있는 건축사에게 도시디자인을 맡기면 좋아질 것인가? 그러면 좋은 팀을 구성해서 도시를 디자인하면 좋아질 것인가? 아니면 사회단체에게 맡기면 될 것인가? 당치 않은 생각이다. 문제는 누가 디자인하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자. 우리가 공공디자인을 왜 못하는지를 말이다. 지금 우리는 공공디자인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있다. 왜 그것을 인지하지 못할까?

2. 건축환경디자인 인식의 세 개의 층위

상식을 바탕으로 생각하자. 좋은 가정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물어보지 않고, 좋은 집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구상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고의 순서가 잘못된 것이다. 좋은 집이란 훌륭한 재료와 잘 짜여진 공간구성 그리고 아름다운 환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늘 서로를 신뢰하는 가족관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좋은 집을 만드는 상식이다. 좋은 집을 만들기 위한 첫 번째의 층위가 좋은 가족관계이며, 두 번째의 층위는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가풍과 가족 간의 배려이다. 그 다음에 그러한 관계와 배려를 위한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이 건축사의 역할이다. 건축사는 집을 만드는데 가장 나중의 단계에서 투입되는 보조자에 불과하다.

층 위

내용

문제의식

분야

표 층

집, 결과물

What? / 어떤 집이 필요한가?

건축사

중간층

방법론, 방향제시

How? / 어떻게 사는가?

부모, 선생

기 층

원론, 철학, 가치관

Why? / 왜 사는가?

성인, 철인

기본적으로 공공공간을 디자인함에 있어서도 이 세 개의 층위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은 마치 건축학에서 원론과 방법론과 건축물과 같은 관계이다. 건축설계에서는 이러한 이유로 건축사에게도 철학적 소양이 요구되기도 한다. 반면 이러한 요구를 접하는 건축사들은 간혹 좋은 건축물 혹은 건축공간이 좋은 사회적 관계를 만드는데 일조를 하거나 혹은 만들게 할 것이라는 그릇된 상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건축환경이라는 것은 사회적 관계에 대한 대응으로 나타나는 것일 뿐 그것이 사회적 관계를 능동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결코 잘 디자인된 집에 산다고 해서 화목한 가정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것이다.

건축물은 문명과 문화의 산물이다. 특히 사람이 생활하는 집과 같은 건축물은 민감하게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게 된다. 그 시대의 정치적 상황, 민중의 계층구조, 자본의 흐름, 가족관계의 변화 등등이 집의 구조와 형태에 반영이 된다. 신자유주의 학문이 유행하는 이 시점에서 사물의 형태과 시대의 흐름에 대한 인과적 연관을 결부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 태도일지 모르나, 한편으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사회시스템과 사물의 관계이다. 그러면 사회를 움직이는 시스템은 무엇을 기반으로 형성되는가? 그것은 기본적은 인간성에 대한 질문, 그리고 도덕, 정의, 그리고 행복의 기준과 같은 것이 아닐까.

3. 공공디자인 인식의 세 개의 층위

공공디자인은 개인의 집과는 다른 사회차원의 과제이다. 하지만 공공디자인을 구상함에 있어서도 그 하부에는 똑같은 인식의 층위가 존재한다. 그것이 공동체의 가치와 세계관 그리고 사회정의와 이웃간의 관계와 배려와 같은 것이다. 만약 그러한 것이 무너졌거나 존재하지가 않는다면 좋은 공공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공공공간을 요구하는 사회 시스템은 무엇일까? 과거의 공공시설을 생각해보자. 마을마다 쉼터로 만들어진 폭낭과 쉼팡이라는 것이 어떤 댓가를 통해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아낙들이 빨래를 하고 물을 긷던 물통이라는 것도 어떤 댓가를 통해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당시에는 서로가 노동력을 제공하고 제공받는 부조의 시스템으로 사회가 움직였다. 심지어는 개인의 집을 짓는 것도 부조를 통해서 노동력을 제공받는 부분이 훨씬 많았다.

당연히 지금은 그렇게 사회가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다. 속된말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도 댓가 없는 봉사를 통해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자금이 투여되고 발주자가 있고, 그것을 만들어서 이익을 얻는 사회기업이나 단체가 있다. 그것은 당연한 지금의 사회시스템이다. 공공디자인이 잘 되기 위해서는 이 사회시스템이 잘 되어야 하며, 이 사회시스템이 잘 되기 위해서는 그 전단계의 층위인 공동체의 가치에 대한 자각이 필요하다.

층 위

내용

문제의식

분야

표 층

공공의 결과물

What? / 구체적인 사물은 어떤 모습인가?

건축사, 작가

중간층

방법론,방향제시

How? / 어떻게 해야 하는가?

행정, 정치

기 층

원론,철학,가치관

Why? / 왜 해야 하는가?

학자

이런 점을 생각하면 우리의 공공디자인의 미래는 아주 어둡기 짝이 없다. 학교의 교육보다는 학원의 교육이 앞서고, 착하게 사는 것보다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치는 것이 지금의 교육의 형태이다. 남에 대한 배려와 공공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기 보다는 자신의 것을 지키고 남에게 피해를 보지 않도록 방어벽을 쌓으라고 교육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진정성을 가지고 우직하게 살기보다는 주위의 눈치를 보면서 기회를 탐하도록 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러한 기초적인 사회가치가 정립되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면 공공디자인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좋은 사회관계에 기여하는 형태가 아니라 특정집단의 이익을 위한 자본분배의 형태로 변질되고 말 것은 뻔 한 일이다.

공공디자인을 위해서 사회정의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야 하고, 도덕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해야하고 남을 배려하고 같이 살아가는 사회의 형태가 어떤 모습인지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 내 주장의 요지라고 한다면 매우 엉뚱한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엉뚱하면서도 분명한 사실이다. 특히 공공디자인에 있어서는 이러한 공동체의 모습이 먼저 설정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를 실현한다는 것은 매우 요원한 일이다.

공공디자인을 올바로 실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첫 번째의 층위에는 이러한 공동체의 모습과 가치관을 밝히는 과정이 요구된다. 이는 실무를 하는 건축 전문가들이 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사회인을 길러내는 초등학교 선생님, 그리고 부모들이 해야 할 일이다. 건축계에서는 부분적으로라도 이 일을 담당하고 책임져야 한다면 학자들의 몫이다. 공동체의 가치를 밝히기 위한 조사와 연구가 건축학자뿐 아니라, 지리학자, 사회학자, 인류학자, 사학자, 인문학자들이 같이 연구하고 기초를 세워야 할 일이다. 공공디자인은 순수예술이 아니다. 그것을 수행하는 작가들에게 공동체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고려해서 디자인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공동체의 가치의 문제는 학계에서 밝혀주어야 할 일이다. 그것이 공공디자인을 구체화하기위한 방향을 설정하는 기본 작업이다.

공공디자인을 올바로 실현하기 위한 두 번째의 층위는 그것을 발주할 수 있는 행정의 역할이 중요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엇을 만든다는 것은 그것을 제작하는 작가의 의지보다 그것을 발주하는 발주자의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 건축사라면 누구나 느끼는 바이지만 좋은 집을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건축주의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 공공디자인이라고 하는 것도 그게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그것을 발주하는 자의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 발주자는 공공디자인을 발주하기 이전에 그 배경이 되는 연구 성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관련학자들에게 발주하여야 한다. 제주 전통사회의 물통을 공중목욕장으로 오해하게 만들어버리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발주자는 첫 번째 층위에서 만들어진 연구성과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한다. 이는 단순히 잘 검토해달라는 요구가 아니라, 공동체의 가치와 문화에 대해서 숙지하고 그것에 적합하게 발주부터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발주한 이후에 건축사나 혹은 공공디자이너에게 주어져야할 숙제가 아니다. 이는 오히려 발주처에서 먼저 고민하고 정확하게 발주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통상 집을 설계해보면 공사를 할 때 4개월 걸릴 집을 디자인하는 것은 5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리고 그 집을 지으려고 건축사를 찾아오는 건축주는 거의 1~2년을 고민하고 준비해서 건축사를 만나게 된다. 무엇하나를 발주하는 것은 이렇게 깊은 고민과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공공디자인을 디자이너가 구체적으로 구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제대로 발주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공디자인에서 행정은 디자이너보다 더 기층의 층위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디자인을 올바로 실현하기 위한 세 번째의 층위 즉, 표층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사물로 구체화하는 건축사들과 공공시설의 제작자 그리고 작가들이다. 사실 공공시설의 제작자는 공공디자인의 포장지를 매만지고 있을 뿐이다. 첫 번째 층위와 두 번째 층위에서 문제가 잘못 체크된 상태에서 공공시설의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별로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들이라는 점에서 그 역할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지금의 공공공간과 공공디자인을 구체화하는 방식에서 민감하게 고민해야할 부분이 있다. 그것은 협의시스템의 문제이다. 개인주택을 설계할 때에는 건축주와 독대를 해서 그가 원하는 것을 고려하여 설계를 진행하면 될 일이다. 공공디자인의 주인은 누구인가. 당연히 불특정다수의 주민이다. 이런 경우 대개 대화와 조사를 통해서 디자인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희망을 상상해서 연역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디자이너가 선택할 수 있는 일반적인 방법이다. 그런데 그것이 잘못되었다. 지금 실무자에게 주민과 협의하는 시스템이 있는가. 그리고 공공디자인을 협의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있는가를 생각해보면 아주 우울하기 짝이 없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대규모 단지계획을 할 때에 TV를 통한 주민공청회를 통해 수차례의 토론을 통해 디자인을 진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어찌된 이유인지 아직 우리에게는 공공디자인을 토론하기 위한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이 되어있지 않다. 이게 공공디자인 실무자들이 극복해야할 과제이다.

4. 공공디자인의 성과를 위한 제언

허락된 지면이 짧은 이유로 간단하지만 상식적인 제언으로 마무리 하고자 한다. 기본적으로 공공디자인을 수행하기 위한 세 개의 층위와 그것을 짊어지어야할 집단이 있음을 지적하고자 했다. 세 개의 층위라는 것은 사실 원론과 방법론과 결과물을 집중적으로 고민해야하는 세 부류의 집단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학계와 행정과 공공시설물의 디자이너라는 입장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건축계에 속한 학자와 행정, 그리고 건축사에 한정에서 이야기해서는 안된다는 입장도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잘못된 공공디자인에 대해서, 혹은 공공건축물에 대해서 그것의 표피를 만지작거렸다는 이유로 건축사와 공공시설물의 제작자를 나무랄 것이 아니라, 그러한 디자인을 만들게 하는 기층의 문제를 함께 진지하게 고민하고 풀어나가야만 한다.

우리는 어떤 공동체를 지향하는가. 그것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구체적인 사물을 성급하게 디자인하기 이전에 우리가 준비해야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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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필https://www.archijeju.com/
옛말에 '배는 짓고, 집은 사라'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집을 짓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집을 짓는 것은 단순히 어떤 물건 을 만드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자금이 들어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개인적인 감정과 사회적인 요구, 그 리고 법적인 규제 등 고민해야 할 문제가 많습니다. 저희는 아키제주 건축사사무소 홈페이지를 통해서 건축설계와 관련한 정보를 최대한 제공하려고 합니다. 건축설계와 관련된 궁금한점은 회원가입후 건축상담게시판에 올려주시면 답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집을 만드는데 저희 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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