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공간, 장소, 지역

05. 공간, 장소, 지역 독일 바우하우스의 교장이었던 발터 그로피우스가 ‘국제건축양식’이라는 책을 발간했었지요. 아방가르드에서 출발한 근대건축에서 지향하였던 새로운 디자인이라는 것에는 두 가지 지향점이 있었는데, 하나는 역사적 양식의 부정이었고 다른 하나는 세계 공통의 디자인 언어를 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도릭, 이오닉 같은 고전의 건축양식이 아닌 비례, 질서, 통일 과 같은 원리를 가지고 디자인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교육하였습니다. 바우하우스가 추구한 디자인은 역사보다는 심리학에 의존을 하였고 인문적 지식보다는 자연과학적 지식에 의존하였습니다. 물리학의 법칙처럼 디자인도 과학적인 체계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생각은 아직도 영향력을 미칠 만큼 디자인 이론의 곳곳에 숨어있습니다.

그래도 근대건축의 시기에서 국제주의 양식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조짐들이 있었습니다. 각 지역별로 독자적인 건축양식이 있었고 그것을 설계 할 때 참고해야 한다는 생각은 근대건축의 거장인 르코르뷔제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케네스 프램프톤은 근대건축 이후의 경향중 하나로 ‘비판적 지역주의’라는 제목으로 각 나라마다 독자적인 디자인을 보여주는 건축가들을 소개하였습니다. 프램프톤의 소개가 지역주의 건축을 명료하게 설명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역주의를 근대건축의 획일적인 디자인에 대한 대안의 하나로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냥 지역주의가 아닌 비판적지역주의라고 한 것은 보수적인 지역건축가의 활동과는 구분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어떤 근사한 철학으로 지역주의라는 제목을 달은 것은 아닙니다. 저는 좋은 집을 설계하는 기본적인 태도로 지역이라는 명제를 생각해보려 합니다. 어쩌면 지역이라는 명제가 적절치 않은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지역이라는 것은 공간적으로 제한적인 어떤 범위를 갖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그런 공간적 제한으로서의 지역을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충분히 지각할 수 있는 공간적 범위는 어느 정도일까요? 저는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정도의 공간적 범위를 지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지역이라는 단어를 잘 설명할 수 있는 용어를 저는 고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너의 고향이 어디야?’라고 물을 때 대답하는 공간적 범위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제주도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세화나 모슬포와 같이 말할 수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서귀포 중앙초등학교 뒤쪽이 고향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마 같은 질문임에도 외국에서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내 고향은 대한민국이야.’라고 대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대답 속에서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공간의 범위가 머릿속에서 정의되고 있습니다. 저는 지역이라는 범위를 이렇게 편안하게 인지할 수 있는 공간의 범위를 기초로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이 고향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늘 태어난 데에서만 활동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실제의 고향이 아닌 마음의 고향이라고 해야 할까요.

제가 대학을 처음 졸업하고 첫 직장을 다녔던 대도시에서는 그러한 공간범위가 도시 안에서도 아주 제한되어 살고 있는 동네에 불과했습니다. 대도시 전체의 공간은 아주 거대하지만 편안하게 인지할 수 있는 공간범위는 매우 작았습니다. 반면에 제주도에서는 제가 어느 곳에 가더라도 가까운 곳에 있는 학교와 마트를 금방 찾을 수 있고 방위를 금방 이해할 수 있고 어른을 만났을 때 어색하지 않고 금새 ‘삼춘’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저는 제주도의 대부분의 공간을 그리 어색해 하지 않고 배회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저는 저의 지역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설계를 할 때 대지를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느 방향으로 학교가 있는지 시장은 어디에 있고 며칠에 열리는 지 그리고 근처에 교통사고가 잘 나는 곳은 어디인지 동네 민심은 어떠한지를 이해하는 것 모두가 대지를 이해하는 것에 해당합니다. 지리적 공간뿐만 아니라 인문적 공간을 이해하는 것이 대지를 이해하는 과정에 포함됩니다. 거기에 역사적인 문제까지 인지의 범위는 확대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4.3의 이야기, 몽고에 의한 목마장의 이야기, 연초에 행해지는 영등굿과 신화의 이야기 등이 대지를 이해하는 배경이 될 수 있습니다. 좀 거창한 것 같지요? 하지만 대개 이러한 이야기들이 제주 사람들에게는 상식에 해당하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이런 것을 공부하고 분석해서 지식으로 습득하려면 오히려 쉽지 않습니다. 저는 이러한 것들이 머리로 학습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체득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지를 이해하는 것은 책에서 배우고 머리로 분석하는 지식과는 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지역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러한 이해가 건축설계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치 신토불이를 주장하듯이 제주도에 설계 할 때는 타 지역의 건축사보다 제주도의 건축사가 더 잘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주도에는 타지의 건축사가 설계한 훌륭한 건축물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분들이 제주도에 설계를 할 때에는 분명 제주도라는 지역에 대해서 많은 조사와 공부를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좋은 집을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누가 하든 그 과정에서 그 땅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성취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이 중요한 것은 대지를 이해한다는 것이 단기간에 노력한다고 쉬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도 제주도가 고향이라고 하지만 제주도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한다고 자부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대지와 지역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건축설계를 해야한다는 것은 건축에 대한 저의 소신입니다.

제주도는 타 지역보다 독특한 특성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섬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더 지역에 대한 이해가 중요할 수 있습니다. 해안과 중산간의 삶의 방식이 다르고, 동쪽과 서쪽의 삶의 방식이 다릅니다. 그리고 남쪽과 북쪽의 삶의 방식도 다르지요. 삶의 방식만 다른 게 아니라 좁은 섬이지만 기후도 현저히 다릅니다. 아마도 제주도를 타지의 시각에서 볼 때에는 한라산이 제주도의 중앙에 있다고 생각이 되겠지요. 하지만 제주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한라산은 남쪽에 있는 산이고, 서귀포에 사는 사람들에게 한라산은 북쪽에 있는 산입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당연하지 않습니다. 객관적인 사실과 주관적인 인지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태양은 가만히 있고 지구가 자전한다는 것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사실이겠지만, 대지는 가만히 있고 아침마다 태양이 동쪽으로 떠오른다는 것이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듯이 말이지요.

저는 건축현상을 이해할 때 자본적인 논리를 바탕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게 건축의 방향을 결정하는 근본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거주를 위한 집을 디자인 할 때에는 더욱이 자본의 논리로 접근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집은 집입니다. 누구네 집 요새 괜찮은가라고 물을 때의 ‘집’은 주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말하는 것이듯 집을 설계한다는 것은 주택이라는 사물이 아닌 엄마 아빠 그리고 자식들의 삶을 포함하고 있는 이야기여야 합니다. 그것이 나중에 집값이 얼마나 오를까하는 고민보다 더 중요해야 합니다. 확대하자면 주택은 아니지만 다세대나 아파트와 같은 주거건축을 할 때도 숙박시설과 기숙사와 같은 이형적인 삶의 형태를 디자인할 때 에도 자본의 논리만큼이나 대지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제가 말하려는 지역주의는 특정 디자인을 지향하는 경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가끔 대화가 혼란스럽게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건축디자인에서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 미니멀리즘 등등의 주장들이 내세우는 바에는 물론 그 지향하는 바를 뒷받침하는 철학적 변명들이 있기는 하지만 형태적으로도 뚜렷한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역주의를 말할 때는 공유하는 어떤 형태적 경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건축을 바라보는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디자인한 결과물로는 무엇이라고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여기서는 제 생각으로 말할 수 밖에 별 도리가 없겠네요. 딱히 다른 말로 표현한 길이 없어서 지역주의라는 말을 빌어 쓰기는 했는데 나름대로 제가 생각하는 지역주의 건축이라고 한다면 이런 태도를 갖는 경우를 말할 것 같아요.

첫째, 디자인하는 대상의 공간적 범위가 건축가의 생활의 범위와 어느 정도 일치되는 경향이 있다.

둘째, 건축설계를 디자인하고 구상하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고 실제로 지어지는 과정에도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려 한다.

세째, 전체를 관망하는 것 못지않게 개인적 삶에 관심을 집중하고 미시적 접근에 익숙하다.

네째, 디자인의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집중하기 보다는 디자인 과정을 충실하게 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다.

다섯째, 의뢰인이 건축디자인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협조한다.

두서없이 제 생각을 적어보니 쑥쓰럽게도 제가 지향하고 싶은 건축사의 모습을 적어버린 듯 합니다. 부정하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사실 저는 그런 건축사가 되고 싶어요. 물론 짐작하시겠지만 저 역시 말로만 이랬으면 좋겠다고 하고 실천은 거의 못하고 있는 개인에 불과합니다. 또한 저의 생각이 지역주의를 정의하는 생각이 아닙니다. 극히 제 개인적인 주장일 뿐이지요.

최근에는 지역적인 태도 못지않게 세계화의 경향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한다는 주장도 많이 합니다. 지역주의하면 매우 소극적인 태도로 보이거든요. 그래서 케네스프램프톤도 비판적지역주의라고 하였겠지요. 제주도에도 이미 10층 이상의 고층건물이 수없이 지어지고 있는데 지역의 정서에 의존하는 건축만을 주장할 수는 없거든요. 사실 세계화의 추세에 잘 대응하지 못했던 사례는 우리나라의 전통건축 연구에서 일부 드러났던 문제이기도 해요. 하지만 전통건축에 대한 끝없는 애착과 관심은 최근의 현대건축의 디자인에서 의미 있는 결과물과 성과가 보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주었으면 합니다. 정말 훌륭하고 열심인 건축가들이 많이 있거든요.

지역적 정서에 부응하는 건축이라는 것을 지역주의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것도 중요한 주제이지요. 그리고 세계화의 경향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도 동시에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 문제는 정말 건축 디자인을 업으로 하고 있는 전공자들이 모여서 지속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인 것 같아요. 지역주의와 세계화의 경향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일까요? 저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조심해야 할 지점은 있을 겁니다. 그건 비단 건축에서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예를 들자면 음식에 있어서의 맛과 영양의 문제와 같은 것입니다. 몸에 좋은 것은 입에 쓰다는 말이 있습니다. 보통 한약을 권유할 때 쓰는 변명이지요. 실제로 몸에 좋은 약들은 이상하게 쓴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몸에 좋아도 보약을 밥처럼 즐겨 먹기는 어렵습니다. 반대로 입에 단 과자나 인스턴트 식품들은 즐겨 먹으면 비만이나 고혈압이 온다고 합니다. 살다보면 이렇게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닌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대형마트에 가면 무료 시식하는 코너가 있습니다. 공짜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대개 신제품이 나오면 무료시식을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입맛을 길들이는 게 매우 중요하거든요. 일단 입맛을 길들이게 하고나면 비싼 가격을 붙여도 잘 팔리게 됩니다. 가장 성공적인 사례가 커피가 아닐까요. 아마 처음에는 이렇게 쓴 차를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즐겨 마시게 될 줄 아무도 상상하지 못 했을 겁니다. 저도 커피를 즐겨 마시는 편인데 일단 입맛을 들이게 되니까 헤어 나오기 힘이 들더군요. 입맛에 길들여진다는 것이 무서운 이유입니다. 그렇게 길들여진 게 몸에 좋은 것이면 다행이지만 담배처럼 한번 길들여진 이후에는 몸에 안 좋은 줄 알면서도 그것을 끊지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자본주의라는 것에도 마약과 같은 병폐가 있다는 것을 대개는 알고 있지만 그것을 단호하게 끊고 초연해지기는 어렵습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 저는 세계화를 바라볼 때 일단 그 거름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거부할 것인가 하는 기준에는 맛과 영양이라는 양면의 칼날을 잘 살펴야합니다. 맛을 무시하고 영양만 주장하면 대중화에 실패할 것이고 영양을 무시하고 맛만 중시하면 건강하지 못한 병폐가 사회에 만연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건축은 어떤 것일까? 저는 아직 그 답을 모릅니다. 다 같이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Archi Jeju
옛말에 '배는 짓고, 집은 사라'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집을 짓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저희는 홈페이지를 통해서 건축설계와 관련한 정보를 최대한 제공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집을 만드는데 저희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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