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건축사

01 건축사
집을 짓기 위해서는 어떤 사람들이 필요할까요? 목수도 필요하고, 전기기술자도 필요하고, 미장을 하는 사람도 필요하게 됩니다. 하지만 집을 지으려는 사람이 가장 먼저 만나 상담을 하게 되는 것은 대부분 건축사일 것입니다. 건축사는 직접 집을 짓지는 않지만, 집을 짓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 지을 것인지를 그려주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그림을 보통 ‘도면’이라고 하고, 건축사를 그러한 도면을 그려주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건축사라는 국가자격증이 생겨난 것은 1965년 4월에 처음으로 건축사시험을 치르면서부터입니다. 그 이전에는 행정대서사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건축도면을 그려서 집을 짓고는 하였습니다. 그러한 국가자격으로서의 건축사가 아니더라고 해도, 건축물을 짓기 위한 도면작성을 직업으로 하게 된 것은 강점기이후 소위 신식교육이 이루어지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건축사라는 직업이 있기 전에는 집을 짓기 위한 도면만을 그려주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물을 만드는 사람과 사물을 구상하는 사람이 구분되어 있지 않았지요. 집을 지으려면 당연히 목수가 도면을 그렸을 것입니다. 과거에는 집을 짓는 것도 도자기를 만들거나 가구를 만드는 것처럼 만드는 사람이 그것을 구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전에 사찰 기행을 다니다가 사찰을 짓는 대목이 널판에 붓으로 기둥위치에 점을 찍어서 표시한 간단한 도면을 본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저렇게 복잡한 사찰건축물을 이렇게 단순한 표식만으로도 지을 수 있다는 것에 감탄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도 전통건축에서는 오랫동안 준수해왔던 많은 규범들이 도면을 대신하여 대목들이 숙지하고 있는 바가 많기 때문에 단순한 도면으로도 집을 짓는 것이 가능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지금도 많은 분들이 건설기술자가 설계도 같이 하는 것으로 여기시는 경우도 있으며, 간혹 반대로 건축사가 집을 지어주는 일까지 할 수 있을 것으로 오해하고 물어 오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본래 역사적으로도 집을 짓는 것과 집을 구상하는 것이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았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매우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집을 구상하는 것과 그것을 구체화하여 만드는 일은 완전히 구분되어있으며, 건축사는 오로지 집을 짓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것 만을 그의 직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가 건축을 전공하겠다고 결심을 하였던 고교시절이 생각이 납니다. 지금 돌아보면 정말로 중요한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 남은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그런 중요한 순간에 제가 이해하고 있었던 건축이라는 분야에 대한 상식은 너무나도 사실과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진학지도라는 상담과정이 있어서 어느 정도 전문분야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고 진로를 정하고 있는 듯 합니다. 다행스러운 일이지요. 제가 그때 이해했던 건축이라는 분야에 관한 생각은 ‘건축사’라는 독립된 직업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거니와 당연히 건설회사에서 건물을 디자인해서 지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건축을 전공하고 싶다고 생각한 학생이 갖고 있는 상식이 이러하니, 당시에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얼마나 많은 오해를 하고 있었을까 생각하면 참으로 좁은 눈으로 세상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 건축사가 하는 일에 대해서 좀더 찬찬히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건축사는 ‘집을 구상하고 그것을 도면으로 표현하는 일을 주로 하는 사람’입니다. 아마 전통사찰을 짓는 대목들이 그린 도면을 보았다면 도면을 그리는 것처럼 간단한 일을 특별히 돈을 받고 그리는 게 말이 되는가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마치 옷을 입고 식사를 하듯이 늘 일상에서 접해왔던 주택정도야 도면으로 그리는 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직업으로까지 필요하겠는가 하는 생각도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도면을 그리는 전문 직업이 필요하다면 구조적으로 튼튼해야하는 고층건물이나, 기능적으로 복잡한 병원과 같은 시설 정도는 되어야 건축사라는 전문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주택 정도야.’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하지만, 제 경험으로는 주택만큼 설계하기 어려운 대상도 많지 않습니다. 제가 ‘건축사메뉴얼’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도 사실은 주택설계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기 위한 것입니다. 오피스나 호텔, 그리고 병원과 같은 대상을 설계하는 것도 당연히 전문적인 지식과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사업가나 호텔경영자 그리고 병원장님과 의논할 일이지 대개의 사람들이 알고 이해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반면 주택이라는 것, 집이라는 것은 특수한 대상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려야할 공간이라는 점에서 전혀 전문적이지 않은 분야입니다. 어느 누구를 붙잡고 물어도 집에 필요한 공간이 무엇인지, 지금 사는 집이 어떤점이 불편한지를 물으면 다들 몇 마디씩 의견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치 밥상위의 그릇처럼 일상생활에서 체험 할 수 있는 것이 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집이라는 것이 일상화 되어있기도 하고 누구나 이해하고 있는 사물이라고 한다면 집을 구상하기위해서 건축사라는 사람이 특별히 필요하지 않겠지요. 우선 먼저 떠오르는 건축사의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과거에는 집들이 비슷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전라도에 가면 대개 어떤 집들이 많고, 경상도에 가면 대개 집들이 어떻게 생겼고 하는 공통적인 형태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당연히 집은 이래야 한다는 보편적인 형태가 지역마다 있었습니다. 그것을 건축학에서는 ‘유형(Type)’라고 이야기합니다. 특정의 유형속에는 그 지역 공동체의 문화와 관습 그리고 가치관등이 스며들어있다고 말을 합니다. 서울의 북촌과 같은 동네에 가면 대개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중앙에 마당이 있고, 마당을 중심으로 방들이 배치되어있는 중정형 한옥을 볼 수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시절에 집장사들에 의해서 집중적으로 보급되었다는 이러한 형태는 중부지방 민가의 평면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하나의 유형이지요. 지금 대단히 훌륭한 건축이라고 찬사를 받는 가회동 한옥들이 뛰어난 건축사의 설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집장사들이 중부지방 민가의 평면을 토대로 만든 것에 불과하다면 깜짝 놀랄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도 가회동 한옥을 돌아보면서 건축사 없이도 이렇게 좋은 집을 짓고 사는 것이 가능한데, 굳이 건축사라는 직업이 필요할까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아마 그런 시절에는 설계를 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게 답안지를 작성하는 것처럼 이루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많이 복잡해졌습니다. 똑같은 모양의 집을 지어달라는 경우는 거의 없어졌습니다. 저는 늘 상담을 할 때 집을 짓는 경제적인 판단은 ‘남들이 하는 방식’을 따르는 게 좋다고 말을 합니다. 예를 들어 같은 질의 타일이라도 주위에서 많이 쓰는 타일을 선택한다면 분명히 물건을 구하기도 쉽고, 반품도 용이하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보편적인 형태를 권유하면 대개 ‘그럴거면 아파트에 살지 설계를 왜 하겠습니까?’라고 반문하는 것이 이제는 아주 일반적인 모습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점차 집을 지으려는 의뢰인들의 요구도 더욱 다양해지고, 따라서 건축사들의 고민거리도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건축사들도 매번 다른 형태의 집을 설계하려고 하니 금새 머리가 백발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요구가 다양해지고 있는 것도 건축사를 필요로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늘 같은 것을 구상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전문적으로 고민해 줄 사람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남들과 다른 집을 가지고 싶다는 욕망은 집을 디자인한다는 입장을 넘어서 좀 더 깊이 고민하고 생각해보아야 할 여지가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도 차차 이야기를 나누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남들과 다른 집을 갖고 싶다는 욕망이 온당한 것인지는 분명히 깊이 있는 사색이 요구되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건축사를 필요로 하는 두 번째의 이유는 까다로운 법적인 규정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집을 짓는데 까다로운 규제들이 있는 걸까요? 자기 땅에 자기의 돈으로 산 물건을 쌓아 올리는데, 법에서 이렇게 저렇게 규제를 하고 그 규정을 따르지 않으면 위법 건축물이라고 하는 것 때문에 불편함을 겪은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규제하는 이유는 건축물이 사회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물이기 때문입니다. 무인도와 같은 곳에서 집을 짓는다면 당연히 아무런 규제가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동차를 밖에서 몰고 다닐 때에 교통법규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규정을 지키지 않을 때에 사회에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집을 짓는데 있어서도 내 물건이니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안되는 것이 사회적인 문제를 방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집을 짓는데 아주 기본적인 규정에 대해서는 나중에 하나씩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만, 그 규정들이 내 집으로 인해 남들에게 혹은 사회적으로 피해를 주지 않게 하려는 의도라는 점을 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규정이 이치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차가 불가능한 곳에는 건축허가를 내 줄 수 없다는 규정이 있는데, ‘나는 운전할 줄도 모르고, 집에 차도 없는데 그렇다고 집을 못 짓게 하면 되는가?’라고 항변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일반인들이 전혀 알지도 못하는 규정들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집을 못 짓게 됨으로 인해서 화가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법과 규정이라는 것이 모두 상식의 범위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그것을 확인하고 따지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항을 확인하는 것을 행정업무라고 한다면 그런 행정업무 역시 건축사를 필요로 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집을 짓기 위한 제반 법규를 이해하는 것이 일반인들에게는 어렵기 때문에 건축물을 짓기 위해서는 건축사의 확인을 요구하는 것이 또한 법으로 규정되어있는 사항이기도 합니다. 가끔 시시한 창고 하나를 짓는 것도 무슨 건축사의 확인이 필요하냐고 반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시한 창고 하나고 일단 땅에 고정을 시키고 나면 다시 변경시키는 것이 쉽지 않으므로 사전에 건축사의 확인을 통해서 공사를 하라는 것이 기본적인 건축사법의 취지입니다.
건축사를 필요로 하는 세 번째의 이유는 집을 짓기 위한 도면을 작성하는 일이 매우 중요해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면은 집을 어떻게 지을 것인지를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매우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건축설계를 직업으로 하고 있으면서 만나본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생각보다 도면의 중요성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또는 그와는 반대로 집을 짓는데 도면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건축도면에는 집을 짓기 위한 모든 정보가 들어있을 것이라고 믿고 시공자에게 도면대로만 지어달라고 하였다가 오히려 실망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도면은 집을 짓는데 중요하기도 하지만, 도면이 모든 것을 보증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잘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간혹 설계를 잘 협의하고 진행하였다고 생각했는데, 의뢰인으로부터 ‘나는 전문가도 아니고, 도면 볼 줄을 몰라서 그렇게 설계된 줄 몰랐다.’ 고 항변하는 경우를 겪은 적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유있는 항변으로 들릴 수 있으나, 도면 볼 줄을 몰랐다는 것이 설계 결과물을 이해할 수 없었다는 변명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인터넷 사이트에 써 있는 제품의 사이즈를 잘 확인하지 않고서, 막상 주문하고 보니 나는 어른 옷 인줄 알았는데, 어린이 옷이었다고 항변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건축사는 도면을 작성할 때 시공자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작성하게 됩니다. 건축도면은 집을 만들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은 그 집을 직접 만들 사람 즉, 시공자를 염두에 두고 작성이 됩니다. 만약 자기 집을 짓는 것이기 때문에 그 도면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를 알고 싶다면 의뢰인은 도면 보는 법을 숙지하고, 찬찬히 살펴봐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찬찬히 살펴본다면 대부분의 내용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절대 도면 볼 줄 몰랐기 때문이라는 변명은 시공자와 공사계약을 하고 착공을 한 다음에는 들어줄 수 없는 항변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저는 이런 저런 이유로 의뢰인도 도면을 찬찬히 살펴보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설계하는 동안에는 이해 안 되는 내용이 있다면 언제든지 건축사에게 물을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본인의 원하는 방향과 다른 점이 있다면 언제든지 수정을 요청할 수 있으니까요. 그것을 찬찬히 살피지 못하고 시공계약을 하는 것은 분명히 건축주의 책임입니다.
도면이 중요한 것은 그것 자체가 시공자와의 계약서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건축주와 시공자가 공사계약을 할때 필요한 서류는 첫째 계약서, 두 번째는 설계도면, 세 번째는 공사견적서입니다. 첫 번째의 계약서는 계약당사자가 합의해서 작성하는 것이고, 설계도면은 건축사가 작성하게 되고 공사견적서는 설계도면을 보고 시공자가 작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건축사는 공사를 진행하기 위해서 최소한 3부의 건축도면 원본을 제출하게 됩니다. 왜 3부일까요? 하나는 건축주에게 보관하라고 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시공자가 보관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두 개의 도면이 보관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 도면이 공사계약서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공사 할 때는 마지막 한부를 가지고 복사본을 만들어서 공사를 하게 됩니다. 간혹 공사할 때 도면이 필요하다고 다섯부를 달라고 하신분이 나중에 보면 보관해야할 도면도 없이 현장에서 모두 사용해서 망실되는 경우를 보기도 하였습니다. 공사중에 서로 의견이 안 맞아서 분쟁이 있을 경우에 계약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도면인데, 그렇게 보관을 허투루 해서는 안되겠지요?
건축사를 필요로 하는 이유를 세가지정도 들어보았습니다. 이외에도 집을 짓기 위한 기술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 역시 감리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건축사들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간혹 건축사들이 왜 시공을 같이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합니다. 건축을 전공했고, 건축물을 짓기 위한 지식을 갖고 있고, 주위에 연결되는 하청업체들도 있을텐데 직접 집을 지으면 더 많은 돈을 벌수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실제로 주위에 집을 짓는 시공자들 중에는 건축을 전공으로 하지 않은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건축을 전공으로 배운 건축사가 시공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는게 당연해 보입니다. 반대로 건설회사에서 왜 설계를 직접하지 않고 건축사사무소에 설계를 의뢰하는지도 의아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00년에는 건설사에서 건축사를 고용해서 건축설계를 할 수 있게하는 법안이 준비되었다가 많은 건축사들의 반대에 부딪혔던 경우가 있었습니다. 건축사가 시공을 하지 못하듯이 건설사도 건축설계를 하지 못하는 것이 아주 기본적인 구조입니다.
설계와 시공이 왜 분리되어야 할까요? 전술한 내용을 잘 읽어보셨다면 금방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설계도면의 성격이 건축주와 시공자와의 계약서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시공자가 직접 작성한 도면은 시공자에게 유리한 내용으로 도면이 작성될 우려가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저희 도면을 보면 주기사항에 ‘시공자는…하여야 한다.’라는 식의 유의사항들이 있습니다. 만약에 공사 당사자가 도면을 작성하면 자신이 책임져야할 많은 부분에 대해서 도면을 생략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때문에 건설회사가 설계를 직접 하지 못하는 것처럼, 건축사들도 직접 시공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기본 구조입니다. 건축사와 감리자 그리고 건설회사는 서로가 맡은 역할이 따로 있으며, 서로가 협조하기도 하고 때로는 견제를 하기도 합니다.
“이러다가 우리 직업이 머지않아 없어질 수도 있는 것 아닐까?”라고 한 선배의 말이 생각납니다. 직업이라는 것이 필요에 의해 생겨났으니까 필요가 없으면 당연히 사라지게 되겠지요. 그 선배의 이야기는 조만간에 이름 있는 대기업에서 양질의 주택을 공장에서 만들어서 공급하게 될 것 같은데 그러면 사람들은 굳이 설계를 하지 않고 맘에 드는 주택을 고르는 방법으로 집을 갖게 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주택도 자동차처럼 메이커가 붙게 되고 제품 카달로그에서 골라서 주문하면 공장에서 미리 만들어진 제품을 싣고 와서 현장에 설치해주게 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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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컨테이너처럼 이동 설치가 가능한 주택은 공장에서 집을 마트의 상품처럼 공장제작과 판매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사실 그러한 착상은 이제야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근대건축의 거장이었던 르코르뷔제도 아파트를 지을 때 뼈대와 공용복도와 계단만 만들어놓고, 각 주호는 공장에서 만들어서 크레인으로 집어넣으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지금처럼 일률적이고 똑 같은 아파트가 아니라 집집마다 인테리어가 다른 아파트가 주문 되겠지요. 주택을 공장생산하겠다는 생각은 국내의 모 기업에서도 스틸하우스라는 이름으로 추진되었었습니다. 수개의 샘플 도면이 있고, 주택을 선택하면 현장에서는 재료를 조립만 하면 되는 방식으로 집을 짓는다는 생각이었지요. 그러한 방식은 사실 목조주택에서도 가능합니다. 공장에서 미리 가공해서 현장설치가 어려운 공법은 조적조와 콘크리트조와 같은 습식공법이지요. 최근에는 흄관과 같은 모듈화 된 콘크리트 박스를 조합해서 주택을 짓는 사례도 나타났다고 하니 선배의 그런 위기의식은 당연한 생각입니다.
저 역시 조금 다른 이유였지만 건축사라는 직업군이 조만간 상당한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는 생각은 했었습니다. 그것은 인터넷이 제공하는 정보의 양과 질이 건축사라는 소위 전문 직업을 위협하고 있는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의사와 변호사와 같은 다른 전문 직업들도 이 상황에 대해 상당한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이전에 전문 직업인들만이 가지고 있었던 많은 지식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그 원인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와 비슷한 상황이 16세기 초 인쇄술의 발달로 인해 책이 양산되었을 때에도 있었다고 합니다.

형태도 세련되고 쓰임새도 적절한 인쇄물은, 마치 악마의 유혹에 따른 공격에 대한 반격처럼, 신의 계시로써 이 시대에 발명되었다. 이제 어느 곳이든 박식한 사람들로 넘쳐나고, 현학적인 지도자도 많아졌으며, 책으로 가득한 서점도 늘어났다.

위의 글은 라블레가 쓴 글을 재 인용한 것입니다. 지금 인터넷이 확산되고 있는 현상과 비슷하지 않나요? 인쇄술의 발달은 실제로 루터의 사상을 유럽 전역에 전파시키는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종교개혁이 일어날 수 있는 촉매가 되었지요.
하지만 박식한 사람이 많아졌다고 해서 그게 인류발전에 저해가 되지는 않았지요. 전반적으로 사람들이 박식해지는 거야 좋은 일 아닌가요? 하지만 아마도 지식을 독점하고 있었던 중세의 학자들에게는 이게 상당한 위협적인 사건이었나 봅니다. 저는 현대 지식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이러한 위협이 똑같이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와 같은 건축사들이 대학 4년을 전공으로 공부하면서 달 달 외웠던 지식들이 인터넷에서 몇 번의 질문을 함으로써 확인 될 수 있다면 위기는 위기지요.
건축사의 영역을 침범하는 간단한 사례를 들어 볼까요? 이를테면 의뢰인이 인터넷을 뒤져서 예쁜 집의 사진과 평면을 들고 오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이런 집을 갖고 싶어요. 그냥 이렇게 그려주시고 허가를 받아주시면 되요.”라고 주문을 합니다. 그야말로 건축사는 의뢰인이 주는 자료대로 도면을 그리고 허가를 받아주면 되는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물론 예전에도 자기 집을 이렇게 저렇게 설계해 달라고 지시하는 경우는 흔히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는 건축사가 조언을 해 주어야 할 일이 많았지요. 의뢰인의 요구가 그렇게 세부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최근에 의뢰인들이 인터넷자료를 가지고 요구하는 정도는 매우 구체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점점 그 자료의 수준이 건축사의 능력을 넘어설 정도로 양질의 정보를 가지고 오는 분들도 있습니다.
실제로 건축주가 가져온 샘플 이미지가 제 마음에도 좋아보여서 비슷하게 설계를 진행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의뢰인은 처음에는 목조주택으로 설계했으면 해서 나름대로 목조주택을 열심히 그려왔었습니다. 그런데 그 도면수준이 건축과 학생과 거의 같은 정도였어요. 그러다가 집안에서 목조주택을 싫어하는 이유로 다시 설계하기는 어렵고 해서 인터넷으로 맘에 드는 집의 사진과 평면을 구해 왔더군요. 문제는 의뢰인이 가져온 샘플 주택의 도면이 제 마음에도 쏙 들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디자인의 기본방향을 그 주택의 형태를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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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건축주가 직접 그려서 가져온 집의 이미지. 건축주는 자기의 집을 자기가 그려보고 싶어서 프로그램을 익히는 것부터 하나씩 스스로 익혔다고 한다.
이런 경우에 의뢰인은 혹시 건축사를 건축허가를 받기위해 도면을 대신 그려주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고는 합니다. 하지만 저는 건축사의 안목을 가지고 좋은 것을 좋다고 한 것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런 경우에도 똑같이 설계하는 것은 아닙니다. 결코 건축사가 다른 샘플을 참고한다고 해서 그대로 베끼지는 않습니다. 집이라는 것이 그렇게 복사하듯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건축사라는 직업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케이스가 정작 건축주는 오지 않고 시공예정자가 도면을 그려 와서는 이대로 허가를 내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있지요. 그는 건축주와 다 얘기가 됐다고 말을 합니다. 그렇게 미리 도면을 그려 와서 그대로 허가를 받아달라고 하면 일이 매우 편할 것처럼 보이지 않나요? 하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저는 이런 일은 수락하지를 않습니다. 그것은 분명 좋은 집을 짓기 위한 방법이 아니거든요.
때로는 건축주 스스로 계획도면을 다 그렸으니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설계비를 좀 낮추어줄 수 있지 않느냐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황당한 일이지요. 그들이 제게서 빌리고 싶은 것은 단지 건축사라는 자격뿐인 듯합니다. 도데체 전공으로 설계공부를 6년을 하였고, 대도시에서 실무를 5년 이상 하였고, 건축사사무소를 자영한지 15년이 넘은 건축사에게 바라는 것이 고작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니 건축허가만을 받아달라는 소박한 요구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런 경우에 저는 설계비를 낮추기는 커녕 더 많은 비용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제가 건축사를 직업으로 선택한 이유는 건축설계를 하려는 것이었는데 그 분은 제 꿈을 포기시켰으니까 당연히 저는 그 대가를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어쩌다가 건축사라는 직업이 집을 짓기 위해 허가를 받아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였는지 참으로 갑갑한 일입니다. 실제 우리나라의 법 제도가 건축사의 승인 없는 도면으로는 집을 지을 수 없도록 되어있기는 합니다. 그런 법 때문에 한때는 자격증만 있어도 먹고 살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법적으로 가능한 도면을 작성하는 것이 건축사가 필요한 이유일까요?
저는 최근에 들어서는 이런 법적인 보장 자체가 건축사의 위상과 역할을 많이 떨어뜨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건축사의 주된 업무는 좋은 집을 설계하는 일이지 관에서 허가를 받아오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관에서 건축허가를 받아오는 것이 설계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는지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참으로 건축사가 별로 사회적으로 필요 없는 직업이라는 데에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건축사는 기술자가 아닙니다. 때문에 건축사의 지식은 복잡한 기술자의 수학과 공학을 이해해야하는 종류가 아니라 매우 상식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그중에 법규체크를 하는 게 기술자의 지식에 가까운 것일 수 있겠네요. 그런데 법규라는 것도 이제는 인터넷으로 궁금한것을 물어보면 바로 알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되었습니다. 전문가랍시고 자기만 알고 있는 지식이라는 것이 다 노출되고 있는 상황이지요. 그렇다면 정말 가까운 장래에는 건축사가 더 이상 필요 없는 직업이 될까요?
저는 집을 짓기 위한 도면작성을 누군가가 대신 해 주거나 법규체크를 누군가 대신 해 준다고 하여도 건축사라는 직업은 필요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런 것이 건축사의 업무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이 바로 건축사에 대한 오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건축물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아무리 집을 짓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지만 그것은 건축사의 업무 중에서 매우 일부분의 업무일 뿐입니다. 더구나 도면을 그리는 일은 자체는 정말 건축사가 아니어도 해결할 방법이 나올 것입니다.
만약에 집을 짓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어떤 경우가 있을까요? 하나는 공학적으로 무너질 수 있는 불안정한 경우가 있을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법적인 규정에 맞지 않는 경우가 있을 것 입니다. 건축사는 이러한 것을 체크하여 집을 짓는 것이 가능한 도면을 작성하는 일을 합니다. 하지만 ‘집을 짓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건축사가 필요한 이유가 아닙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건축사는 ‘좋은 집을 짓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조력해주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적으로 가능하고 공학적으로 가능한 집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좋은 집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고민하는 것이 건축사의 책무인 것입니다.
그러면 건축사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일까? 통상 계약서에는 계약 당사자를 갑과 을로 명기하고 있지요. 저는 최근에 저희 사무실의 계약서에 ‘갑’과 ‘을’이라는 항목을 지우고 ‘건축사’와 ‘의뢰인’이라는 말로 두 계약자의 명칭을 바꾸었습니다. 저희 분야에서는 건축주를 영어로는 ‘클라이언트(client )’라고 부릅니다. 그야말로 고객 혹은 의뢰인이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외국어로는 클라이언트라고 하는 것과 우리 말로 건축주라고 부르는 것은 의미가 달라 보이지요. 계약서에서도 갑과 을이라는 관계는 주(主)와 종(從)의 관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회 분위기는 마치 그렇게 느끼도록 만들고 있지요. 그래서 저는 건축사가 의뢰인에게 종속되어 있는 사람으로 오해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용어를 바꾼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건축사가 의뢰인에게 종속된 관계로 보이기 싫다는 자존심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러한 종속관계로는 좋은 집을 설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글의 전반적인 내용은 그 이유를 서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는 건축사를 ‘좋은 집을 짓기 위해 전문지식을 가지고 도와주는 사람’으로 이해 해 주기를 바랍니다. 대가를 받고 일을 하는데 ‘도와주는 사람이라니요?’라고 되물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건축사는 대가를 받고 의뢰인을 대신해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의뢰인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좋은 집을 설계하는 것도 건축사의 일이기 보다는 의뢰인 본인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건축사는 의뢰인이 판단을 잘 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이런 저런 제안을 합니다. 왜냐하면 건축사가 설계하고 있는 집은 건축사가 살 집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의뢰인이 살 집을 설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설혹 건축사가 그것을 자기 작품인양 세상에 소개하여도 그 집의 소유와 사용의 주체는 의뢰인인 것이 분명하지요. 그런데 그 주체를 배제하고 마음대로 설계하는 것이 건축설계는 아닙니다. 건축사가 설계하는 집은 의뢰인을 위한 배려를 해야만 하는 것이고 때문에 그것은 도와주는 업무가 맞는 것이지요. 이런 경우 보통 대리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됩니다. 건축사는 좋은 집을 설계하기 위한 건축주의 대리인입니다.
건축사뿐 아니라 모든 전문직종의 종사자들은 그 전문직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없으면 제대로 자신의 일을 해낼 수가 없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물건을 파는 상인은 눈 앞에서 그 물건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지만, 건축디자인을 생산하고 파는 건축사는 그가 적극적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지 아니면 마지못해 그것을 업무적으로 처리하는지에 따라서 나중에야 내 놓게 되는 그 결과물의 질은 상당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법정에서 자신을 변호해 주어야하는 변호인이 계약에 의해 마지못해 법정에 서서 일을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변호인을 선임한 당사자는 얼마나 불안할까요. 설계 대리인인 건축사는 의뢰인이 원하는 좋은 집을 그려주는 생각하는 도구입니다. 생각하는 도구의 특징은 의견을 존중해 주어야 제대로 작동한다는 것이죠.
이제 이 책의 제목을 ‘건축사 매뉴얼’이라고 한 이유를 알 것입니다. 저는 건축사를 집을 짓기 위한 도구로 소개하려고 합니다. 건축사를 활용해서 당신이 원하는 집을 지으려면 그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 지 설명해보려고 합니다. 마치 전기밥솥을 사고나서 그 매뉴얼을 잘 읽어야 원하는 종류의 밥의 취사법을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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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필https://www.archijeju.com/
옛말에 '배는 짓고, 집은 사라'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집을 짓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집을 짓는 것은 단순히 어떤 물건 을 만드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자금이 들어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개인적인 감정과 사회적인 요구, 그 리고 법적인 규제 등 고민해야 할 문제가 많습니다. 저희는 아키제주 건축사사무소 홈페이지를 통해서 건축설계와 관련한 정보를 최대한 제공하려고 합니다. 건축설계와 관련된 궁금한점은 회원가입후 건축상담게시판에 올려주시면 답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집을 만드는데 저희 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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