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3월 26, 2023

건축사

필자의 직업은 건축사이다. 건축사는 건축주를 도와서 건축물을 구상하고 도면으로 표현하는 일을 주업무로 하는 사람이다. 아마 누구든지 한가지의 직업에 20년 이상 종사하였다면 그 분야에서는 전문가라고 자부심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여전히 집을 지어보겠다고 찾아오는 건축주를 만나고 상담하는 일이 조심스럽고 두려운 것은 왜일까? 그것은 도면을 그리는 작업이 어려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좋은 집을 구상한다는 것이 묘한 감정선을 다루고 있는 분야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집을 짓는 것과 그것을 구상하는 것은 다르다. 분명한 확신이 없이는 집을 짓기로 하고 실천하기는 어렵다. 집을 짓기 위해서 시공자를 만나서 공사계약을 하는 순간 엄청나게 많은 비용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뭔가 판단을 잘못했다는 생각에 주방의 위치를 바꾸자고 말하는 순간 예상 이상의 추가공사비를 요구받게 되면서 머릿속이 하얘진다.

설계를 한다는 것은 이렇게 집을 짓기 위해 실천하는 과정에서의 오류를 줄이기 위한 것이다. 집을 짓는 과정에서의 수정이라는 것은 그림을 그렸다가 지우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사전에 잘 짜여진 계획이 없이 집을 짓는 것은 엄청난 부가비용이 발생된다. 마치 이사를 하면서 물건을 어디에 둘지 미리 생각하지 않고 마구 집어넣고 나면 몇 날 며칠을 정리해도 잘 안되는 것과 같다. 설계를 한다는 것은 이사 들어가기 전에 어디에 어떤 물건을 놓을지를 미리 고민하는 것과 같은 과정이다.

건축사는 그런 일을 한다. 집을 짓기 위해서 시공자와 공사계약을 하기전에 미리 어떤 집을 지을지를 의논하고 그것을 도면화하는 일을 한다. 그것을 가지고 시공자는 얼마에 그 집을 지을 수 있는지를 판단하고 공사계약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왜 집을 짓는 시공자와 집을 구상하는 건축사가 업무를 나누어서 하게 된 것일까? 우리나라에서 건축사라는 직업이 생긴 것은 1965년 1회 건축사 시험이 국가고시로 치루어지면서 부터이다. 직업으로서의 건축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일반적인 살림집을 짓는 현장에서 시공자와 건축사가 서로 역할을 나누어서 하게 된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닌 것이다.

지금은 대학 건축과에서도 디자인학과와 공학과를 구분하여 수업을 한다. 건축사와 시공자가 나뉘는 것은 단순히 제도적인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두 개의 분야는 건축이라는 하나의 분야 안에서 통합되는 것이 아니다. 시공자 즉, 엔지니어가 고민하는 건축에서의 과제와 건축사 즉, 설계자가 고민하는 건축에서의 과제는 매우 다르다.

건축사가 고민하는 건축에서의 과제는 삶의 질과 관계된 부분이다. 그리고 미학과 취향의 문제와도 관계가 있다. 거창하게는 건축의 사회적인 영향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것도 그들의 과제이다. (아마 너무 거창하게 포장한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건축사들은 종종 건축의 사회적인 역할에 대해서 토론한다.)

결국 건축사의 역할은 집을 짓기 전에 어떻게 하면 좋은 집이 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그것을 도면으로 그리는 사람이다. 그런데 건축사가 생각하는 좋은 집이 반드시 건축주에게도 좋은 집일 수는 없다. 그래서 아무리 건축사가 능력 있다고 해도 건축주는 불안하다. 건축사 역시 건축주가 자신의 디자인을 받아들이지 않을까봐 불안하다. 그 불안감을 없애는 길은 집을 주제로 대화를 자주 하는 방법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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