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구성과 디자인을 건축사와 같이 해보자. 그런데 건축사와 같이 해야한다고 하면 괜히 불안해진다. 건축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데 건축사와 의견이 안 맞으면 어떡하지 하는 고민이 든다. 건축사는 건축을 전공한 전문가니까 나름대로의 생각과 고집이 있을 것이고, 건축주는 큰 맘 먹고 마련하려는 자기 집이니까 또 나름대로의 생각과 고집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좋은 집을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건축사를 적극적인 설계자가 되도록 유도해야한다. 가장 좋지 않은 상황은 건축사로 하여금 ‘그래, 해달라는 대로 해주고 끝내자.’라고 하는 수동적인 태도를 갖게 만드는 것이다.
건축사를 수동적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요청할 때 “~게 해 달라.”고 하지 않는게 좋겠다. 가급적 “~하면 어떨까?”라고 건축사의 생각을 되물어주는 것이 좋다. “창을 크게 내면 어떨까?” 라든가 “현관을 남쪽으로 하면 어떨까?”라는 식으로 자신의 생각과 더불어 건축사의 생각을 물어주는 것이 좋다. 건축사도 생각을 물어주면 신이 난다.
건축사를 수동적으로 만드는 두 번째의 태도는 본인 생각이 아니라 남의 생각을 전달하는 식으로 의견을 말하는 것이다. ‘00가 말하는데 화장실이 너무 넓다고 하네요.’라고 하는 식의 의견전달은 좋지 않다. 주위의 정보와 의견은 잘 걸러서 자신의 생각으로 말을 해야한다. ‘내가 보기에 화장실이 넓은 것 같네요.’라고 해야한다. 설계는 건축주의 생각과 건축사의 생각이 만나서 대화를 하는 것이다.
건축사를 수동적으로 만드는 세 번째의 태도는 건축사의 제안에 반응이 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대화는 반드시 서로에게 반응을 해주는 것이다. 건축사가 도면을 그려서 보여줬는데, 그 도면이 이해가 안된다면 설명을 요청 해야한다. 건축사가 그려준 도면보다 혹여 분양 카달로그에 있는 아파트평면이 더 좋아 보인다면. 그 둘을 비교하면서 왜 아파트 평면이 더 좋아 보이는지를 가지고 건축사와 대화를 해야한다. 놀라운 일일지도 모르지만 모든 도면에는 이유가 있다.
네 번째로 건축사는 건축주의 집에 매력을 느끼지 못할 때 수동적이 된다. 건축주가 건축사에게 ‘저는 30평 정도 주택이면 되니까, 알아서 적당히 해주세요.’라고 하거나, ‘저는 요 평면대로 하면 되니까, 이대로만 설계해주세요.’라는 식으로 본인만의 집에 대해 적극적인 의사표현이 없을 때 건축사 역시 적극적으로 그 집에 대한 고민을 하지 못하게된다. 간혹 도면을 자기가 다 그려올테니까 허가만 받아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건축사를 그저 단순히 건축허가를 받아주는 사람으로 만들지 않는게 좋다. 혹시 건축사에게 그런 업무만을 해주기를 원한다면 그리고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도면으로 단순히 그려주는 사람을 원한다면 처음부터 그 의사를 밝혀주시라. 그게 서로 불편한 동행을 하지 않는 방법이다.
누군가는 시청 뒷골목에서 소주를 들이키며 이렇게 외칠지도 모른다.
‘내가 이럴려고 건축사가 되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