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강행생 아카이브전

건축가 강행생 아카이브전 – 지난 12월 6일부터 10일까지 제주도문예회관에서, 건축가협회 회원전과 건축가 강행생 아카이브전이 있었습니다. 평소에 존경하는 건축계의 원로이셨으며 이번 기회로 선생의 작품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고 글을 써 보았습니다.

살림집에서 거리 두기

언젠가 건축인들과의 답사 길에서 선생님께서 ‘나는 민가연구자다.’라는 의미의 말을 하시던 모습이 기억이 납니다. 제게서 선생님과의 인연은 1994년으로 돌아갑니다. 당시 휴학 중이었던 나는 기왕에 논문을 쓴다면 제주건축을 소재로 하는 논문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때 참고삼아 처음으로 찾아보았던 민가관련 논문이 선생님의 논문이었습니다. 아마 선생님이 1985년에 학위논문으로는 제주민가를 소재로 쓴 것은 매우 앞선 시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글을 보면서 집에 대한 생각과 실천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가 참으로 궁금했습니다. 민가라는 것이 얼핏 보기에는 너무도 평범하고 싱겁기 짝이 없는 것인데 들여다보면 볼수록 삶의 지혜가 느껴지는 것처럼 민가를 연구하셨던 선생님은 살림집의 설계를 어떻게 할까 사뭇 궁금하기도 하였습니다. 집을 설계하는 건축가에게는 살림집과 공간에 대해 어떤 지속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매우 중요합니다. 보목리와 납읍이라는 제주의 전통마을의 민가를 소재로 연구하였던 논문 속에는 민가를 바라보는 논리와 감성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 선생님의 논문을 접했을 때에는 제주민가에 꺽인 평면이 없는 이유를 빗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방편으로 설명하였던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안거리와 밖거리의 적정거리의 이유를 일조간격과 음성의 의미전달 가능한 거리를 이유로 설명한 부분도 민가해석을 논리적으로 접근하려는 태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거기다가 납읍리에 마주보는 두거리집이 많고, 보목리에는 모로 앉은 두거리집이 많은 이유를 바람의 방향과 일조의 차이로 설명하였는데 이러한 관찰은 민가에서 생활하지 않고서는 느끼기 힘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들은 민가연구를 감성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매우 논리적으로 해석한 부분이라 할 것입니다. 최근에 선생님은 건축에서의 구조주의와 관련된 자료를 주신 적이 있습니다. 최근에도 구조주의 이론과 건축에서의 공간구성을 주제로 선생님과 잠깐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알도 반 아이크 표현하였던 ‘나무의 잎은 나무를 닮았다.’는 설명은 구조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부분과 전체의 관계’를 훌륭하게 빗댄 말이기도 합니다. 두 개 이상의 단위공간들이 모여서 하나의 주거공간을 이루고, 그 주거공간들이 올래라는 나뭇가지에 매달려서 하나의 단위를 이루면서 공동체가 성장해가는 모습은 부분과 전체의 연결된 관계망을 설명하는데 훌륭한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수리사회학의 형태로 이야기되기도 하는 구조주의의 이론은 사회관계망을 매우 논리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기도 하여서 선생님의 민가를 바라보는 시각과 관련지어서 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에게서 더욱 흥미로운 것은 공간에 대한 감성적인 부분입니다. 연구의 결론에 이르러 두거리집이 발달한 이유를 유교적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고, 비교적 자유로운 행동과 화합과 사랑의 형성, 자립생활의 의지 등 선생이 느끼는 제주인의 삶의 방식에 기인한 것으로 바라보는 것은(p.23,p.64) 민가와 제주인에 대한 애틋함의 표현이라고 여겨집니다.
민가에 대한 연구와 애착이 실재 건축에는 어떻게 반영이 되는 지 볼 수 있다면 그것은 매우 흥미로운 탐험이 될 것 입니다. 그러한 궁금증을 가지고 1990년을 전후로 설계한 중문동 L씨 댁과 보목동 K씨 댁을 같이 보려고 합니다. 건축물대장에 허가일자가 L씨 댁은 1989년이고 K씨 댁은 1992년으로 되어있습니다. 3년이라는 간격이 있는 두 살림집은 층수와 규모가 매우 유사하며 평면 또한 비슷한 점을 많이 공유하고 있습니다. 비슷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사유의 지속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선생님의 계획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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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집은 공통적으로 일층과 2층에 각각 주방이 있는 다가구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층의 평면은 규모가 줄어들 뿐 일층의 평면을 그대로 복사하듯이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완벽히 두 개의 살림집을 적층하듯이 쌓은 평면인 것입니다. 두 살림집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이점은 현관을 들어서서 일층과 이층으로 분리되는 홀을 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홀에는 일층과 이층의 공간을 차단하는 미서기문이 설치되어있습니다. 얼핏 보면 현관 중문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현관을 구획하기 위한 문이 아님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3년의 간극을 보이는 두 개의 주택에서 일관적으로 보이는 이 모습은 일층과 이층을 연결하는 계단의 위치가 중요하고 일층과 이층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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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것을 일층과 이층으로 된 두 살림집의 ‘거리두기 방식’을 찾은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선생님의 논문의 제목에서 보여 지듯이 두 개의 살림집을 별동으로 지어서 마당을 공유하는 제주민가의 살림방식은 주거공간을 이해하는 핵심주제였을 것입니다. 현관홀과 거실 사이에 있는 미서기문은 그러한 ‘따로 또 같이’하는 제주의 두거리집이 해석된 결과인 것입니다.
애초에 L씨는 어머니와 같이 살 계획이었고 K씨는 장래에 자녀세대와 같이 살 것을 고려했었다고 합니다. 두 집이 설계당시에는 한집에 두세대가 같이 살 것을 고려했었던 것입니다. 세월이 지나면 설계할 때와는 살림의 조건이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지금은 L씨 집에는 이층으로 바로 올라가는 외부계단이 추가로 붙어있습니다. 그것은 이층에 사는 사람이 L씨와는 전혀 무관한 세입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일층과 이층은 완전히 분리된 살림을 하게 된 것입니다. 반면 K씨는 이층을 민박집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따로 또 같이’로 되어있는 공간구조는 민박을 하기에 적당한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집이라는 것은 그렇게 생활에 맞게 변화하는 것이 당연한 것일 것입니다.
L씨 집과 K씨 집에서 볼 수 있는 중요한 태도의 변화도 역시 일층과 이층을 연결한 계단실에서 볼 수 있습니다. L씨 집에서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전면에 툭 튀어나오도록 내세우고 탑처럼 본 건물과 구분되게 높게 설계 하였습니다. 화산석을 계단실의 전면에 붙여서 조형성도 강조하였습니다. 반면에 K씨 집에서의 계단은 건물과 구분하여 강조하지 않고 있습니다. 위치도 전면이 아닌 후면 쪽으로 놓았습니다. 공간적으로 계단의 코너에 수직창을 배치한 것은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형태적으로 K씨 주택에서는 계단의 위계를 분명 매우 낮추었습니다. 형태를 기준으로 본다면 시기적으로 먼저 설계 된 L씨 집이 계단의 조형성으로 인해서 훨씬 강한 인상을 줍니다. 반면 K씨 댁을 설계할 때에는 민가가 그렇듯이 형태적인 유희로 두드러지게 하기보다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함으로 형태는 숨기기로 한 것처럼 보입니다. 아마 조형성에 대한 생각의 변화가 있었던 시기가 아니었는가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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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목리 K씨댁을 답사하고 나서 선생님이 마침 보목리 자택에 계시다는 말을 듣고 찾아뵈었습니다. 평소에 말이 적으신 선생님께서 올래의 입구에서 저를 기다리시더니, 먼올래에서 올래목까지의 공간의 변화를 죽 설명해주십니다. 선생님이 나를 끌고 간 곳은 외관상 너무도 평범한 단촐한 집이었습니다. 가끔 자녀들이나 손님이 오면 쓴다는 이 집을 선생님은 매우 좋다고 합니다. 저는 평범하게 보이는 자기 집을 매우 좋다고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표현이 참 좋았습니다. 형태적으로는 정말 설계라는 것을 아예 하지도 않았을 것 같은 집이었습니다. 하지만 마루에서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선생님이 이 집을 좋다하시는 이유를 알겠습니다. 마루에서 바라보이는 작지만 따스한 남쪽의 작은 정원이 보입니다. 정원이라고 할 것도 없는 정말 작은 공간이지만 닫히지도 열리지도 않은 공간이었습니다. 별로 정리되지도 않았고 크거나 화려함도 없지만 따뜻한 햇살에 작은 나무 그림자가 툇마루로 떨어지는 풍경에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습니다.
그 작은 정원을 보면서 마치 선생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김소월의 시에 나오는 강변에 있는 모래가 그냥 모래가 아닌 ‘금모래’인 이유는 엄마랑 누나랑 내가 그곳에서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진정으로 살림집에서 추구해야하는 의미 있는 현상학적 시간이며 공간이 아닐까요? 화려하지 않아도 가족이 같이 머무를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글: 양성필 (건축사사무소 아키제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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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배는 짓고, 집은 사라'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집을 짓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저희는 홈페이지를 통해서 건축설계와 관련한 정보를 최대한 제공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집을 만드는데 저희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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