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 민가와 돌담의 형태적 고찰

가파도 민가와 돌담의 형태적 고찰

1. 처음

가파도 민가와 돌담의 형태적 고찰. 아무리 환경이 열악하다고 하여도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먹어야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듯이, 거주하기 위한 주택을 지어야 하는 것은 필연적인 과정이다. 한때 500여호의 가구가 살고 있을 만큼 번창한 적도 있었다지만, 역시 가파도는 고립된 섬이며 0.84㎢의 한정된 공간과 한정된 주민이라는 것이 섬의 숙명처럼 다가선다. 그러한 조그만 가파도에서 50여기가 넘는 고인돌이 발견된 것도 뜻밖의 일이겠지만, 그들이 현재 살고 있는 주거공간이라는 것도 제주도라는 본토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난제를 극복하고 획득한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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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는 사회가 처한 환경이 매우 열악하다면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필수적인 활동에 집착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땅이 거칠고 농산물이 풍요롭지 않다면 그들의 음식도 거칠고 단촐 할 것이며, 건축재료가 풍부하지 않다면 그들의 집은 최소한의 규모로 절제된 내용만을 갖출 것이라는 것이 쉬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거친 환경에서도 나름대로 그 환경을 해석하고 적응하면서 이러한 환경을 극복하고 독자적인 문화를 생산해내기도 하는 것이 또한 인류가 보여준 삶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토인비는 문명이라는 것이 풍요로운 환경에 의한 결과로 보기보다는, 열악한 환경을 개척해가는 과정에서 더욱 강렬하게 피어나는 것으로 보았다. 섬사람들이 보여주는 주택과 가로풍경과 같은 삶의 모습이라는 것도, 그들이 접하고 있는 열악한 환경에 지배 되었다기 보다는 그것을 극복하면서 상식을 뛰어넘는 문화적 산물들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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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짓기 위한 땔감도 귀해, 연기가 펄펄 나는 보릿대로 밥을 해야 했던 가파도는 청보리밭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집을 지어야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정말 목재하나 구하기 힘들 정도로 나무가 귀한 작은 섬이다. 이러한 섬에서 집을 짓다는 것은 어쩌면 그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한 일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그들의 주거공간이 어떤 과정을 통해 획득한 것인가를 들여다보고, 가파도의 주거문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려고 한다.

2. 가파도 민가의 보편성 ; 제주 남서부지역 민가와의 문화적 연속성

가파도 민가를 접한 필자의 첫 인상은 왜 집들이 대부분이 남동향을 하고 있을까하는 것이었다. 어찌보면 가파도의 집들이 왜 죄다 남동향인가라고 하는 질문이 매우 어릭석어 보일 수 있다. 채광에 유리하게 집을 지으려면, 남동향을 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파도의 대개의 민가들이 남동향을 지향하고 있는 점은 매우 일률적이어서 특이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는 필자가 이해하고 있는 제주도 민가의 전반적인 상황과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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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의 면적이 작다고는 하지만, 가파도에는 상동과 중동과 하동이 있고, 상동과 중동과 하동은 각각 지형 지세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다. 자연적 여건이 제각기 다를텐데 상동 중동 하동의 구분이 없이 왜 다들 남동향을 지향하는 일률적인 배치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가파도에는 큰 나무도 없거니와 지형도 전반적으로 나지막해서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는 환경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매우 더더욱 특이한 일이다. 게다가 또 한가지 더 특이하게 여겨진 것은 거의 모든 집들이 북쪽에서 마당으로 진입하는 형태의 민가를 볼 수가 없이 남측진입이 대부분이고, 남북으로 이어진 도로에 면할 경우에만 측면으로 마당을 진입하는 등, 남향에 대한 지향성은 너무나도 강하고 뚜렷하다. 이 또한 남측에 마당을 두고 남쪽으로 진입하는 것이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거공간의 형태이기 때문에 이상하다고 하는 필자의 생각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상식적으로 당연해 보이는 것도 이렇게 예외가 적을 정도로 적용이 되었다는 점은 그들의 주거공간의 형태를 결정짓게 한 무언가 강력한 메시지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태일은 협제지역의 마을을 조사한 결과 주택의 배치가 채광에 유리한 남향 혹은 남동향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남서향 혹은 북동향으로 배치된 경우가 많았으며, 이는 북서풍의 바람을 의식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즉, 겨울의 북서풍을 가옥의 전면으로 받지 않고 측면으로 받도록 배치함으로써 기후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협재를 비롯한 제주의 북서부지역의 가옥의 배치를 살펴보면,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본도와는 달리 겨울철 북서풍의 찬바람을 더욱 강하게 받았을 것으로 여겨지는 가파도의 경우에는 이러한 환경적 요인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가파도에서 먼저 촌락이 형성되었다는 상동의 경우에는 마치 제주도의 북서부지역처럼 겨울철 혹독한 북서풍에 시달렸을 것으로 여겨진다. 아무리 가파도와 인접한 제주도의 모슬포가 바람이 세어서 사람 살기 어렵다고 모슬포라고 하였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나무도 있고, 오름도 있어서 가파도 만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 모슬포의 바람이 세다고 하는 것은 여름 남풍이 세다는 것이지, 겨울철 북서풍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왜 가파도의 집들은 차가운 겨울의 북서풍을 받으면서도 남동향의 배치를 고집하였는지 그것은 의문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남동향을 선호하는 배치는 가옥의 후면이 북서쪽을 향하기 때문에 겨울바람에 매우 취약한 배치가 아닐 수 없다.

결론적으로 필자의 의견을 말하자면 이는 가옥의 배치와 형태가 자연환경적인 요인으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판단된다. 이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가파도와 모슬포간의 문화적 연관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가파도에는 예전부터 모슬포에서 배가 왕래를 하였고, 때문에 그곳에 거주하기 시작한 섬사람들은 모슬포와 문화적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처음 집이라는 것을 지을 때에도 모슬포의 가옥이 모범답안과 같은 역할을 하였을 것이며, 또한 집을 짓는 기술자를 모슬포에서 조달하였을 것이다. 실제로 지금도 집을 지을 때는 모슬포의 목수가 일을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향을 보는 정시(지관) 역시 모슬포인의 도움을 받는다고 하니, 주택의 형태도 모슬포지역의 형태를 따르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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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모슬포의 가옥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고, 이중 어떠한 형태가 가파도의 주거형태에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게 되었는가하는 것이 필자의 관심사가 되었으며, 또 모슬포와 달리 적용된 부분은 무엇인가하는 점도 궁금해진다. 전술한 협재와는 달리 모슬포가 위치한 제주도 남서부지역에는 북서풍의 영향이 심하지 않았고, 배치에 있어서 바람의 영향을 고려하여 서향 혹은 남서향을 하기 보다는 채광에 유리한 남향의 배치를 지향하는 경우가 흔한 일이었다. 특히 기존 선행 연구자들에 의해 조사된 가옥들의 평면을 보면, 예례동과 덕수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평면과 그 구조가 매우 흡사하였으며, 모슬포에서 조사한 집의 형태도 기본적으로 동일한 공간구성형식을 가지고 있다. 이는 신석하의 분류에 의하면, 3칸형 중에서 부엌내형으로 볼 수도 있으며, 부엌내의 마루가 공간으로 구획되어 쳇방으로 발달한 4칸형의 구조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를 지금의 평면구조로는 4칸형으로 보이나, 대개의 민가들이 공간을 확장한 상태여서 원래의 구조 역시 4칸형이었는지는 고증이 필요하다. 다만 현재 가파도의 민가에서 쳇방의 공간분화가 대부분 명확한 것은 틀림이 없다. 때문에 공간구조만으로 본다면, 가파도 민가의 공간구성은 4칸형 민가의 형태를 하고 있다하겠다. 이는 제주도 민가가 3칸형이 많다는 점과 가파도에서 집짓기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또한 놀라운 일이다.

이는 주거건축의 유형이라는 것이 환경이 달라진다고 해도 쉬 변하지 않는 문화적 지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건축의 형태가 환경에 의해 지배되기도 하지만, 인문적 배경 속에 스며있는 건축의 선험적 형태는 금방 수정되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점이다. 때문에 매서운 북서풍이라는 자연적 요인에 대한 대응이 있기 전에, 제주도 남서부지역의 주거건축이 가지고 있는 남동향 지향의 성격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남동향의 배치를 하고 있는 4칸형식의 평면을 가지고 있는 안거리의 모습은 모슬포 민가의 영향을 받은 보편적인 가파도 주택의 평면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이외에도 가파도와 모슬포지역 주거공간에서의 공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 특징이 몇 가지가 있다. 전술한 배치와 공간구성의 특징에 이어 두 번째로는 ‘장팡(장항)’의 위치가 집의 뒤쪽이 아닌 측면으로 설정되는 것이 보편적이며, 이는 가파도에서는 거의 절대적이다. 때문에 흔히 제주민가에서 여성들의 공간이며, 신앙의 공간이라고 회자되는 ‘안뒤’라는 공간의 성격이 정지(정제)가 있는 측면의 공간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이를 폐쇄한 모습도 간혹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위치가 그러하기 때문에 그곳을 ‘안뒤’라고 하지 않으며, 그 말 자체를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 현지의 목소리였다. 필자가 현지에서 면담한 바로는 가옥의 뒤쪽의 공간을 일컫는 말에 대해 특별한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를 확인하기 어려웠으며, 한사람으로부터 ‘마룻뒤’라고 불렀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대체적인 정황으로 볼 때, 가옥뒤의 공간이 생활공간으로 적극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는 장팡이 측면으로 발달한 것과도 관련이 있으며, 타지에 비해서 가옥뒤의 공간이 생활공간으로 이용하기에 부적합한 이유가 있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세 번째는 제주민가의 중요한 특징으로 거론되는 수장공간인 ‘고팡’이라는 것이 물론 큰구들 뒤에 만들어져 있는데, 이를 ‘고팡’이라고 부르지 않고, ‘안방’ 혹은 ‘알방’이라고 불렀다. 서귀포지역에서는 ‘고팡’을 간혹 ‘안팡’이라고 부르는 이도 있었다고 하는데, 그 발음의 차이를 차지하고, 통상적으로 제주민가의 수장공간을 ‘고팡’이라고 불렀다는 상식이 이 일대에서는 적용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네 번째는 안거리와 밖거리의 배치가 거의 대부분 ‘ㄱ’ 의 형태로 배치되며, ‘二’자 형태의 마주보는 배치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가파도에서는 거의 절대적인데, 간간이 마주보는 배치를 선택한 덕수리와 모슬포와 비교할 때, 매우 특징적이며, 또한 가로의 여건상 북쪽에서 마당을 진입하는 경우는 거의 볼 수 없다. 이는 모슬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남측의 마당으로 진입하는 경우가 선호되기는 하지만, 부득이한 경우 북측에서 마당으로 진입하는 경우도 생기게 마련인데, 가파도의 경우에는 북측가로에서의 진입을 거의 볼 수 없다. 특히 동서방향으로 진입하는 골목길이 놓이는 경우, 택지의 입구를 항상 골목길의 북쪽으로만 선택하고 있어서 이러한 진입방향의 설정은 매우 의도적인 것으로 된다. 이는 제주의 남서부지역과 비교해 보아도 가옥의 진입에 있어서 북쪽을 피하려는 의지가 보다 더 강한 것으로 여겨진다.

제주 남서부지역의 건축형식과 비교해 볼 때, 가파도의 주거형식은 분명 그곳의 문화적 연관성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만, 그중에서도 가파도에서 선택된 주거유형이 남서부지역 평면과 배치의 다양한 패턴에도 불구하고 왜 특정한 유형만을 집중적으로 선택하였는지는 또한 흥미로운 연구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가파도의 주거건축은 제주도 남서부지역의 주거건축의 형태와 동일한 패턴으로 이해하면 족한 것인가? 이점에 대해서는 가파도만의 특수성에 대하여 논의하면서 이들이 환경에 대응하여온 모습을 반추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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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파도민가의 특수성

3.1 가파도 민가의 변화모습

가파도 민가의 기본적인 공간유형은 제주남서부지역의 민가와 유사성을 갖는다고 하였지만, 새마을 운동 이후 민가의 개조와 변형의 과정에서는 이곳의 척박한 환경과 인문환경의 변화의 특수성과 맞물리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변형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는 초기에 도입된 제주남서부지역의 민가와 이곳의 삶과의 융합과 상호 적응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처음 입어본 옷이 몸에 맞지 않고 어색하다가, 점차 몸에 맞게 옷을 고쳐 입으면서 자신에게 잘 맞는 옷으로 변해가는 과정과 같은 것이다.

첫 번째로 가파도의 주거공간에는 가옥의 측면에 장팡을 두는 대신에 뒤쪽공간은 생활공간으로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이 주거유형은 대개 정지에서 측면에 장팡이라는 외부공간으로 연결되고, 또 마리(마루)에서는 마룻뒤(뒷마당)으로 출입할 수 있는 문을 만드는 것이 통상적이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이 문화적으로 상속받은 평면의 형태는 매서운 북서풍의 바람에는 취약한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마룻뒤 공간으로 열린 출입문이 차가운 북서풍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기후적 차이는 주택을 개조할 때, 북쪽으로의 출입문을 창문으로 바꾸어버리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현지조사에서 개조하지 않은 주택에서는 뒤쪽으로의 판문이 보이는 반면에 개조된 주택에서는 문을 내지않고, 창문으로 대치해버린 경우를 적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또한 이러한 이유가 마룻뒤(안뒤)를 적극적인 생활공간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고 보아진다.

눈에 띄는 두 번째의 변화는 집의 개량화 과정에 드러나는 편리성의 추구가 더욱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그 대표적 사례는 ‘안방’ 혹은 ‘찬방’을 주방화하여서, 완전히 내부공간화하는 모습이다. 이는 근대화과정에서 제주의 어느 곳에서든 발견할 수 있는 주부공간의 기능적 변화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주목할 수 있었던 것은 화장실을 실내공간에 끌어들이는 태도이다. 이번 확인한 5채의 가옥에서 2채의 경우가 안거리 실내로 들어온 화장실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특히 고령의 할머니가 살고 있는 상동의 가옥에서는 ‘안방’에 양변기를 설치한 모습을 확인하였다. 제주본토 경우 대개 화장실을 개조한다는 것은 기존 통시의 위치, 혹은 그 옆에 별동으로 외부에 짓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새로이 집을 짓지 않고는 실내로 좀체로 들여놓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는 가파도민의 편리함을 우선하여 추구하는 독특함을 보여주고 있다.

489번지의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내부공간을 개보수하였던 사례인데, 현재 거주자는 아직 나이가 많다고는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 두 분만이 살고 있고 자식들은 모두 타지로 출가한 상태여서 방을 줄이고 마리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개보수가 이루어졌다. 구들 하나를 없애서 거실(마리)을 넓게 만들고, 구들과 안방(고팡)을 터서 방을 크게 하여서,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주방과 거실이 하나가 되고 방하나가 딸려 있는, 오피스텔의 공간구조를 연상케하는 형태로 변형하였다. 이는 이미 공간구성에 있어서는 4칸형 민가가 갖고 있었던 공간구성과는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일 정도의 커다란 변형이지만, 특징적인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간을 외부로 확장하기 보다는 내부공간을 거주인원에 맞게 기능적으로 변용하고 있는 방식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다른 두 집에서 보았던 안방(고팡)을 화장실 공간으로 만들었던 경우와 같은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두가지의 인문환경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고 여겨지는데, 하나는 고령화와 한집에서의 거주인원의 감소로 인하여 내부공간에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외부에 화장실을 추가로 만드는 것 조차도, 이곳에서는 쉽지 않은 공사과정을 요구하는 열악함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인프라의 열악함은 공간활용을 극대화하고 재료를 최소화하는 기능적인 방향으로 빠르게 선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3.2 사라지는 가파도 민가

가파도 민가의 특수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실상 가옥의 형태를 이해하는 것보다는 가옥을 만들고 유지하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가파도의 여건이라는 것이 건축재료로 자급자족하여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바닷가와 땅에서 얻을 수 있는 돌과 흙뿐이었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초옥의 기본 재료인 새와 목재를 모두 본토에서 구해야 했으며, 또한 기술자 역시 본도에서 초청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경제적인 넉넉함도 없었던 그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최소한의 공력으로 재료를 얻을 수 있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환경은 매우 건축재료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절약하는 태도를 지향하게 하였고,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본토에서는 쉬 이해할 수 없는 집짓기의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건축재료의 적극적인 재활용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상동의 서쪽지역은 현재의 상동지역 보다 더 일찍 마을을 이루었던 곳이었다. 이들의 집자리는 항공사진으로 보면 더욱 뚜렷이 알 수 있는데, 현장을 가보면 집이 있었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고, 마치 조그만 밭을 보는 것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어떻게 이렇게 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을까. 가파도에 처음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는 1842년이라고 해야 지금부터 168년 전이고, 이곳의 집들이 빈집이 되기 시작한 게 기껏해야 백년정도일 것이다. 아무리 재목이 썩어서 없어진다고 해도 이렇게 흔적도 없이 집의 모양이 사라질 수 있을까? 이는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의 재목과 돌을 새집을 집을 고치고나 개축할 때 적극 활용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본도에서도 좋은 목재를 구하기 어려울 때는 기존 건물에서 목재를 빼어서 부재로 사용하는 경우들이 있었으며, 가파도의 경우에는 건축재료 자체를 자연에서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폐가의 건축재료를 재활용한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때문에 사람이 살지 않는 가파도의 민가는 더욱 빠르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집을 사라지게 하는 것. 그것은 현대건축물이 관심을 두지 않았던 중요한 주제이다. 현대도시의 문제 중의 하나는 슬럼화되는 도시를 재 구축하고 정비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때문에 도시가 노후되면 그곳을 재 정비하기 보다는 새로운 도시를 만들고 도시의 중심을 옮겨버리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오래된 구 도심은 마치 거대한 쓰레기통과 같은 모습으로 변해버리는 것이 스티로폴과 콘크리트처럼 썩지 않는 재료를 선택한 현대적 기술의 한계인 것이다. 빈집들이 많이 보이는 가파도가 아름답게 보일 수 있는 것은, 이렇듯 빈집들은 스스로 사라지면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 가파도민들의 건축재료을 재활용하는 생존의 방식도 한 몫을 하고 있다고 보여지는 것이다.

3.3 가파도 돌담의 의미

제주에서는 돌담을 왜 쌓게 되었을까. 바람을 막기 위한 이유도 있고, 외부 침략을 대비한 방어적인 성격도 있고, 경계를 표현하기위한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돌을 소재로 사용한 것은 당연히 땅에서 돌이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아마 제주의 밭담의 경우는 위의 이유 이외에도 밭을 경작하기 위해 돌을 치우는 과정에 의한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이중에 담을 높게 쌓는 이유로는 외부 침략에 대비한 방어적 성격과 바람을 막기 위한 방풍적인 성격이 강한 요인일 것이며, 만약 그게 아니라고 한다면, 멀리서 돌을 날라오면서까지 높게 쌓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집 둘레로 돌담을 쌓는 것은 집을 짓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주거환경을 만드는 과정이다.

가파도의 돌담은 첫눈에 보기에도 본토의 돌담과는 그 형상이 다르며, 때문에 돌담이 주는 인상적인 느낌은 뭐라 형용하기 어렵다. 왜 그런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가파도의 돌담은 일단 돌을 다듬어서 사용한 경우가 거의 없다. 그 크기가 크건 작건 자연에서 획득한 그대로의 돌을 사용 하였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가파도의 돌담 중 특히 해안쪽의 돌담은 밭에서 캐어낸 것이 아니라, 바닷가에서 가져온 돌들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담장의 재료로 사용된 돌은 그 형태가 모난 돌이 없이 마구리가 둥글 둥글하게 되어있다. 그것은 가옥의 담장을 이루고 있는 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때문에 그 외관이 본토의 돌담과는 다른 형태와 느낌을 주고 있으며, 그것은 가옥의 외관도 마찬가지로 그런 느낌을 아니 받을 수 없다. 둥글 둥글한 돌을 쌓는 것은 모난 돌을 쌓는 것보다 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렇게 가파도의 돌담은 특별한 기술을 요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필자가 서술하려고 하는 가파도 돌담의 특징은 이게 전부이다. 바닷가에서 둥글 둥글한 돌을 짊어지고 날라서 돌담을 높게 쌓았다는 점이야 말로 가파도 돌담의 가장 큰 특징이다. 문제는 이 사실이 형태적 차이 이상의 의미를 돌담을 통하여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쌓기 어려운 가파도 돌담이 높게 쌓여진 이유에는 전술한 것처럼, 방어의 의미가 아니면 방풍의 역할 때문일 것이며, 아마도 방풍을 감안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렇게 방풍을 위해 돌담을 높게 쌓아야 했던 이유에는 가옥의 형태도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이는 가파도의 주거형식이 전술한 바와 같이 모슬포의 것을 답습하면서 남동향을 하였지만, 이 남동향의 배치가 북서풍의 매서운 바람을 인위적으로 막아야하는 이유가 되어버린 것이다. 어찌보면 그들이 선택한 주거유형이라는 것이 가파도의 자연과는 잘 맞지 않는 형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가옥의 뒷면이 북서향을 향하고 있고, 북쪽마당으로 출입문이 있는 제주 남서부지역의 주거형식은 돌담을 적당히 쌓아서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도무지 주위의 돌을 끌어 모으는 것으로는 양이 차지 않았던 그들은 해안에서 돌들을 힘들게 나르기로 한 것이다. 이는 제땅에서 나오는 돌을 가지고 돌담을 쌓는 노력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노동력이 요구되는 것이며, 선택된 주거형식을 개선하기 위한 힘든 노력이었던 것이다.

세계사에서는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이루어낸 많은 문명들이 있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지금 가파도에 산재해 있는 고인돌 역시 조그만 섬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문명의 유적지이며, 이는 이 섬이 갖고 있는 생명력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가파도의 돌담도 이러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자기 땅에서 끌어 모은 돌이 아닌, 해안에서부터 등짐지고 날라서 쌓은 길고 높은 돌담은 타지에서 볼 수 있는 돌담과는 또 다른 문화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6. 맺음말

이번 가파도 민가에 대한 개략적인 고찰은 몇 개의 샘플링을 통한 사변적인 접근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분석이 가능한 것은 현지에서의 면담을 통하여 얻은 정보를 토대로 한 것이었으며, 면담의 내용과 사회적 현상을 비교하여 추론을 확장하여 본 것이다. 가파도 주거환경에 대한 고찰에서는 이들의 가옥이 문화의 전파와 현지의 적응을 통한 변형의 과정을 보여주는 일례를 살펴보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가파도의 민가의 형태가 제주 남서부지역의 민가와 그 형식을 같이 함에도 불구하고, 가파도만의 특징적인 변화를 겪고 있음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그들이 답습하려했던 제주 남서부지역 건축형식이 그들이 직면한 자연환경과 적합하지 않은 부분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가옥배치와 돌담의 관계이다. 이는 밭에서 캐어낸 돌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밭담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과는 차원의 다른 생존을 위한 피어린 노력이고, 자연에 대한 도전과 극복의 과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돌을 다듬으면서 쌓을 만큼 가공에 정성을 들일 여력이 없을 만큼의 적은 노동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먼거리에서 수많은 돌들을 날라서 높은 담장을 쌓아왔던 것이다.

아쉬운 점은 이번 가파도 주생활의 조사연구가 그들의 생활을 엿보기 보다는 주로 가옥의 형태적 측면을 위주로 하여 접근한 측면이 있었다. 현재 주생활에 대한 조사연구의 어려움은 가파도 주민의 구성에 있어서 젊은 층이 매우 적은 상태이며, 어린이들을 만나기가 또한 더욱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들의 주생활을 이해하기 위해 생활모습 자체를 관찰하고 조명하는 데 많은 부족한 면을 가지게 되었다. 차후의 연구에서는 가옥을 통한 삶의 모습을 조명하는 것이 아닌, 삶의 모습을 통한 가옥의 형식을 조명하는 방향으로의 접근이 다시금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김홍식, 『한국의 민가』, 한길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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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배는 짓고, 집은 사라'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집을 짓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저희는 홈페이지를 통해서 건축설계와 관련한 정보를 최대한 제공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집을 만드는데 저희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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