莫春者 春服旣成 모춘자 춘복기성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관자오육인 동자육칠인 / 浴乎沂 욕호기 / 風乎舞雩 풍호무우 / 詠而歸 영이귀 / 夫子喟然嘆曰 부자위연탄왈 / 吾與點也 오여점야
“늦은 봄 음삼월에 흩날리는 봄옷을 갖추어 입고, 원복 입고 갓을 쓴 성인 5,6인, 십대의 동지 6,7인을 데리고 저 남쪽 기수(기수)에서 목욕을 한후, 기우제를 올리는 무우단위에서 바람 쐬고 노래를 읊으며 돌아오리이다.” 공자께서 들으시고 “아, 나는 점(點:증석)과 같이 하겠노라.” … 김용옥, 논어3권, 296쪽 해석참고.
논어 ‘선진’편에 나오는 글이다. 예전에 이 글을 읽으면서 공자가 생각했던 이상사회의 모습이 이런 것이었을까 생각을 했었다. 공자가 활동하던 시기는 춘추시대로 중국이 여러나라로 나뉘어서 서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던 시기였다. 아마도 당시에 이렇게 한가하게 소풍을 가듯이 놀면서 풍류를 즐길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건축사에서도 이상사회에 대한 상상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던 시절이 있었다. 하우드의 전원도시, 쇼의 이상도시, 가르니에의 공업도시 등 등 많은 스케치들이 미래사회가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을까하는 생각으로 그려진 그림들이었다. 그러한 이상사회의 모습은 그대로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이후의 도시계획에 많은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반드시 실현할 수 있는 것만을 전제로 계획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과 같은 것이어도 한번쯤은 상상을 하고 그것을 그려보기도 한다. 어쩌면 이상사회에 대한 상상은 건축가만의 영역이 아니고, 문학, 예술, 사회학 등등 전반에 걸쳐서 나름대로의 이상향을 이야기하게 되는 것일 것이다.
재미있게도 논어의 전편에 걸쳐서 공자는 이렇게 한가한 이상향을 이야기 해 본적이 없다. 그리고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없다. 모든 논리는 실천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 공자의 기본 태도이다. 게다가 얼마나 치열하게 현실참여를 하려고 하였는지는 논어의 수많은 구절에서 볼 수 있다.
김용옥은 이 글을 증석을 증자의 아버지라고 여기는 증자학파의 편집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럴수도 있겠다. 증석의 말에 쉽게 수긍해버리는 공자의 태도가 이제까지 읽어왔던 논어 속의 공자와는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책속에 있는 내용의 진위를 따지는 것은 나 같은 건축사가 할 일은 못된다. 어찌되었거나 내게 중요한 것은 이상사회에 대한 접근 태도이다. 사실 내게는 증석의 그 태도가 별 감흥이 없다. 세상이 혼탁한데 갑자기 기수에서 동료들과 목욕하고 정자에서 기타치고 노래부르다가 돌아오고싶다니? 그렇게 현실과 동떨어져서 자신만의 행복한 시간을 추구하는 것이 군자가 취할 태도였을까? 동의하기 어렵다.
건축을 함에 있어서도 이상적인 공간을 추구하던 시절은 근세와 근대의 사회적 격변기에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가능성이 많은 그 시절에 다가올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들에게 이상사회는 허무맹랑한 그림이 아니라, 노력해서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지였다. 물론 증석의 말도 그렇게 추구하려는 목적지였겠지만, 오직 개인적인 꿈에 불과한 것이었다. 건축사는 최소한 도달할 수 있는 꿈이라는 것을 입증하면서 꾸어야 한다. 현실과 떨어져서 꾸는 꿈은 그 꿈을 대신할 건축주를 힘들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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